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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1장


나는 이미 퀘스트 조건을 달성한 상태였다.
이를 증명하듯 메시지가 떠올랐다.

[퀘스트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본래는 퀘스트가 완료되어 보상이 주어져야 했다.
그러나 게임을 하며 이 퀘스트에는 히든 퀘스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물론 모든 난이도에 적용되진 않고 오직 신 난이도에만 존재했다.

[퀘스트 조건이 변경되었습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열 개 이상의 랜드마크를 확보하십시오. 7/10]
[성공 시 숨겨진 보상이 지급됩니다.]

예상한대로 히든 퀘스트가 주어졌다.
히든 퀘스트를 얻는 방법은 간단하다.
퀘스트가 주어지기 전에 이미 그 조건을 충족하고 있을 것.
다만 여기에는 함정이 숨겨져 있었다.
내친김에 히든 퀘스트까지 바로 완료하려는 욕심을 부려 미리 열 개 이상의 랜드마크를 보유한다면 히든 퀘스트는 나타나지 않는다.
두 가지의 조건만 충족시키면 히든 퀘스트를 얻을 수 있다.
보통은 지금 시점에서 다섯 개 이상의 랜드마크를 보유하고 있지 못할 테지만.
남들보다 앞서가고 있다는 사실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언제 어디서 나랑 비슷한 경쟁자가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니까.
“뿌아앙!”
갑자기 해태가 등을 흔들어 댔다.
왜 그러나 봤더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해 있었다.
인적이 없는 골목에 착지한 후, 해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수고했어.”
“꾸르르.”
손길이 닿아 기분이 좋은지 목을 긁는 소리를 냈다.
“까악!”
블루는 자기도 잊지 말라는 듯이 조용히 어깨에 앉아 있다가 짧게 울부짖었다.
나는 블루의 머리 역시 쓰다듬어 준 후 골목을 나와 영천시장이 있는 사거리를 내다봤다.
영천시장 앞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 주변에는 감시하는 사람들로 잔뜩 깔려 있었다.
‘못해도 백여 명은 되겠는데?’
보이지 않는 인원까지 생각하면 수백 명에 달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다 같은 편이 아니고 여러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지만, 서로를 견제하고 있다는 게 훤히 보였다.
직접 현장을 보고 나니 왜 김오묵이 이곳을 건드리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괜히 작은 거 하나 먹으려다가 수많은 적을 만드는 꼴이다.
“블루, 영천시장 안에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고 와.”
“가아악!”
블루가 정찰을 하러 간 사이, 나는 인벤토리 가방에서 가면을 꺼내 들었다.
영천시장을 차지하게 되면 수많은 적이 생기게 될 텐데, 굳이 얼굴이 알려 봐야 좋을 게 없었다.
이내 정찰을 하고 돌아온 블루가 나에게 보고했다.
‘안은 완전히 비어 있단 말이지?’
다만 영천시장을 지키는 가디언들은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쯤 제거되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지만,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가디언들이 있는 편이 나았다.
랜드마크를 차지할 때는 방해물이 되겠지만 차지한 뒤에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줄 테니 말이다.
3등급에 불과한 가디언이 과연 도움이 될까도 싶지만, 그것은 영천시장의 가디언을 모르는 놈들이나 떠드는 얘기였다.
이곳을 전진기지로 삼은 이유는 가장 공략하기 쉬운 곳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디언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 때문에도 있었다.
보통 공격 스킬을 가진 가디언들과 다르게 영천시장의 가디언들은 회복과 버프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곳을 공략할 때는 그 스킬들이 디버프가 되어 날아오지만, 같은 편이 되었을 땐 회복과 버프로 바뀐다.
회복과 버프는 전투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만큼 없어서는 안 될 요소였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왜 플레이어들은 그런 사실을 알고도 이곳을 내버려 두었는가?
저들은 절대 알지 못한다.
김오묵도 게임을 해 본 플레이어로 추정되지만, 아마 이 사실에 대해서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쉽게 내줬지.’
영천시장의 가디언이 가진 회복과 버프 스킬을 얻으려면 특정한 조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첫 번째로 영체를 살려 둔 채로 랜드마크를 차지할 것.
두 번째로 랜드마크를 차지하고 난 뒤에도 영체를 살려 둘 것.
보통 영체를 죽여야 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이곳의 영체는 봉인을 시키든 속박을 하든 어떤 식으로든지 살려 둬야 했다.
영체를 죽이는 순간 가디언들의 회복, 버프 스킬도 사라질뿐더러. 이곳을 유지할 수 있는 힘마저도 사라진다.
흡수 합병이 아닌 기존 체계를 유지할 시 랜드마크가 소멸하지 않고 유지되는 방법은 살아 있는 영체의 영력을 뽑아다가 쓰는 것이다.
‘그게 쉽진 않지.’
그러나 쉬운 길을 걸어가는 것보다는 어려운 길을 걸어가는 게 공략의 묘미이지 않는가.
그리고 이것도 해내지 못하면 고인물이라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것이다.
“블루, 해태. 준비해.”
내가 사거리로 뛰어드는 순간 수많은 견제가 들어올 것은 확실했다.
하나, 내가 영천시장으로 진입하는 걸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나는 해태의 등에 올라탄 뒤 사거리 끝에 웨이브 스킬을 명령했다.
뜬금없이 허공에 거대한 해일이 발생하자 모든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그 틈을 타 영천시장을 향해 달려갔다.
뒤늦게 내 존재를 알아챈 세력들의 추격이 시작했다.
추격자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여유롭게 웃었다.
‘너무 느려.’
그들이 아무리 빨리 달려도, 내 그림자조차 밟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에 여유가 있는 것과 행동의 여유는 달랐다. 행동으로는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언제나 방심은 금물이다.
방심이 불러온 패배가 얼마나 뼈아픈지는 프로게이머 시절 덕분에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느덧 내 눈앞에 영천시장이 보였다.
나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몸을 굽혔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문턱을 넘었다.
그리고 곧바로 돌아서서 블루에게 외쳤다.
“블루, 입구를 얼려!”
“까악! 까악!”
블루가 머리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곧 차가운 냉기가 블루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런데 냉기의 양이 평소와는 달랐다.
냉기로 가득 채워진 주변에는 정적이 흘렀다.
몇 초가 흘렀을까?

[블루가 ‘아이스 브레이크’ 스킬을 사용합니다.]

침묵을 깨는 메시지와 함께 영천시장의 입구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나는 입구 너머를 쳐다보았다. 저 높은 얼음의 벽 뒤로, 다가오는 적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하지만 곧 그마저도 얼음에 가려져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완벽하게 틀어막은 입구를 보며 블루에게 감탄했다. 여태껏 블루가 다양한 형태의 얼음을 형성하긴 했어도 이렇다 한 임팩트를 보여 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발동시킨 고유 스킬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더구나 게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광경이기에 신선하고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넋을 잃은 채 바라보던 것도 잠시.
들려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내 눈앞에 펼쳐진 영천시장은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느껴졌다.
마법사들이 차린 카페 거리에 나온 것처럼 길가에는 커피잔이 공중을 떠다니고 있었고, 각 커피잔에서는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뿜어져 나온 증기는 허공을 자유롭게 떠다니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띈 건 음식과 빵, 그리고 그 재료들이었다.
이들은 마치 생명을 부여받은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컵에 든 떡볶이가 춤추듯 소스를 흘리며 다가오고 있었고. 바게트 빵은 지팡이처럼 둥둥 떠 있었다.
참깨는 한 덩어리가 되어 작은 산을 이루었다.
나는 이 광경에 넋을 놓았다.
그때, 어두운 시장 골목에서 무언가가 나를 노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파란색으로 빛나는 불빛 두 개가 점점 이쪽으로 다가온다.
곧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물고기의 물갈퀴와 인간의 상반신을 결합한 세이렌이었다.
세이렌 곁에는 횟집 수조에 있던 살아 있는 바다 생물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사나웠지만 이내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온화하고 상냥했다.
“환영합니다.”
그녀는 손을 뻗어 물방울을 형성해 내게 날려 보냈다.
향기로운 바다 냄새가 은연히 퍼졌다.
“이곳이 당신의 안식처가 되기를.”
세이렌은 상냥한 말투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것에 속으면 안 됐다.
세이렌의 정체는 다름 아닌 영체. 그녀는 사람들을 홀려 죽이는 잔악한 여인이었다.

[세이렌의 유혹을 튕겨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