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1장


‘무언가 변했어.’
당장이라도 홍련과의 일전에 개입하려던 아이즈는 잠시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소토의 보호를 받으며 뭔가를 준비하던 마리아의 분위기가 일변했기 때문이었다.
무엇이 변했다 특정할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변한 것은 확실했다.
지금 마리아의 모습은 마법사라기보다는 마력을 분출하는 기사에 가까웠다.
마리아의 몸에서 자연스레 기운이 흘러나왔다.
마리아는 굳이 그것을 갈무리하지 않았다. 흐르면 흐르는 대로, 새나오면 새 나오는 대로. 그저 기운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둘 뿐이었다.
‘그냥 마력이 아니야.’
집중해서 살펴보니 그제야 보였다. 마리아의 기운은 단순한 마력이 아니었다.
‘영력인가.’
마력과 영력으로 추정되는 기운이 융합된 기운이었다.
‘방법을 찾은 건가.’
근래 마리아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프로스에게 가르침을 받은 이후 마리아는 끊임없이 마력과 영력을 융화시키는 시도를 해 왔다. 다만 여태까지는 빛을 보지 못한 게 사실이었다.
한데 지금 이 순간. 홍련을 눈앞에 두고 마리아는 벽을 넘어섰다.
마리아와 홍련 사이에 개입하려던 마음이 사라졌다. 일단 두고 볼 생각이었다.
변화한 마리아가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홍련을 상대로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물론 마리아가 위험할 것 같으면 곧장 끼어들 생각이었지만.
“……뭘 한 거지?”
마리아의 변화를 알아차린 건 아이즈만이 아니었다. 수준 높은 마법사로서 마리아의 마력 성질이 변화했다는 걸 깨달은 홍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
홍련의 물음에 마리아는 대꾸하지 않았다. 굳이 답할 이유가 없었을뿐더러 새로운 기운에 적응하기도 바쁜 까닭이었다.
‘따뜻해.’
새로웠다. 마치 마력을 처음 느꼈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낯설지만 온화한 기운을 느끼며 홍련을 바라봤다. 여전히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그녀는 이내 상관없다는 듯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뭘 했는지는 모르지만 변하는 건 없어.”
진리를 추구하는 마법사의 확신은 곧 하나의 사실이 되곤 한다.
세상의 어떤 마법사보다 긴 세월을 살아온 홍련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마리아는 덤덤했다. 이번만큼은 홍련의 확신이 빗나갈 것이었다.
“뼈 덩굴.”
주변을 잠식한 홍련의 마력이 그녀의 의지에 따라 현상을 일으켰다.
곳곳에 널브러진 시체가 바들바들 떨리더니 뼈가 튀어나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리 솟아난 뼈들이 가시덩굴마냥 엉키며 마리아를 향했다.
살을 찢고 나온 뼈들이 뒤엉키며 다가오는 광경은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전방위에서 다가오는 뼈 덩굴은 분명히 위협적이었다. 뼈 자체가 날카롭기도 했고 음험한 기운을 품고 있기도 했다.
무엇보다 마리아가 기존에 사용하던 마법으로는 쉽게 방어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영(靈) - 보호 결계.”
화악-.
마리아가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원형이 그려졌다.
이윽고 원형의 안쪽에서 빛이 뿜어졌다.
아주 환하지는 않은 빛이었다. 은은하다 하는 게 맞을 정도.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따뜻함은 봄날에 내리쬐는 태양의 것과 마찬가지였다.
끼기기긱.
성큼성큼 마리아에게 다가서던 뼈 덩굴이 움직임을 멈췄다. 정확히 원형의 테두리 바깥에서였다.
원 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테두리 주변을 맴도는 뼈 덩굴에 홍련의 눈이 커졌다.
“뭐야. 뭘 한 거야.”
이들과의 첫 전투에서 당한 ‘음차원 에너지 간섭’ 같은 게 아니었다.
눈앞의 마법사에게선 일전의 녀석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음차원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았으니.
하지만 분명한 건 상대에게 흑마법에 저항할 수단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입술을 깨문 홍련이 다른 대책을 강구했다.
범위형 흑마법으로는 타격을 입히기가 힘들 것 같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빛의 원형 때문이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원형 안쪽의 공간 자체가 흑마법에 대한 저항력을 지닌 것으로 보였다.
‘파괴력을 집중시켜야 해.’
다른 걸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시체가 가득한 전쟁터라는 유리한 환경을 싸움터로 삼았지만 활용할 수가 없었다. 무수히 많은 사자를 일으킨다 한들, 단 하나도 저 원을 뚫고 마법사를 어찌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다크 스피어. 뼈 포탄.”
홍련의 주변에 여러 줄기의 흑마력이 뭉쳤다.
한눈에 봐도 열 개가 넘어가는 많은 수의 창이 마리아를 노렸다.
동시에 사위에 널린 뼈 덩굴의 모습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섞여 있던 뼈들이 한데 모여 합쳐지더니 굵고 커다란 뼈의 창을 이루었다.
“위험하군.”
마리아와 함께 원형 안쪽에 있는 소토가 난감한 기색을 표했다.
안쪽 공간이 특별하단 건 느낄 수 있었지만 저 정도 화력을 온전히 막아 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 이유였다.
‘나서야 하나?’
지금 상태론 힘들지만 거인화를 한다면 어찌어찌 버틸 수는 있을 터다.
그러나 그다음은?
흑마법사의 공격이 단발성으로 그칠 가능성은 적었다.
한편, 여러 고민을 하며 불안감을 품은 소토와 달리 마리아는 평온한 기색이었다. 오히려 옅은 미소를 머금을 정도였다.
‘할 수 있는 게 많아.’
생각했던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할 수 있는 게 다양했다.
당장 자신들을 감싼 보호 결계뿐만이 아니다.
“영 - 벼락 비.”
꽈르릉.
대기가 크게 진동하더니 굉음이 울렸다. 동시에 벼락 줄기가 떨어졌다.
쾅! 쾅! 쾅! 쾅!
벼락은 하나가 아니었다.
벼락의 비라는 이름처럼, 빗줄기마냥 세차게 내리꽂혔다.
포탄처럼 쏘아질 준비를 마쳤던 거대한 뼈창이 벼락을 맞고 가루로 변했다.
일반적인 뇌력으로는 힘든 일이었지만 영력의 힘이 담기자 손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천적이군.’
그 모습을 눈에 담은 아이즈가 판단을 끝마쳤다.
이 싸움, 마리아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홍련은 한 단계 진화한 마리아를 이길 수 없었다. 마리아가 새로이 닿은 경지가, 그 방법이, 홍련이 사용하는 흑마법과 상극에 있는 까닭이다.
마치 자신이 사용했던 음차원 에너지 간섭과 같이.
‘음차원 에너지 간섭과는 다른 방법이지만.’
비록 상극인 범위나, 방향성은 다르지만 홍련에게 천적이 될 수 있다는 건 같았다.
쐐애애애액-
빗줄기처럼 떨어지는 벼락 사이로 홍련의 다크 스피어가 마리아를 노렸다.
상상 이상의 에너지를 담은 공격이었지만 마리아는 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빠르게 다가오는 다크 스피어를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볼 뿐이었다.
슈와아아악-
금방이라도 마리아의 몸을 뚫고 지나갈 것 같던 다크 스피어였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빛나는 원형. 보호 결계 안에 들어온 여러 다발의 다크 스피어의 힘이 약해지더니 이내 소멸한 것이다.
“말도 안 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완성된 마법을 소멸시켜 버리다니.
상대방의 마법을 캔슬시키는 것만큼이나 대단한 일이었다. 심지어 마법을 펼친 이가 자신이 아닌가.
벌어진 일을 부정하는 홍련을 보면서, 마리아는 슬슬 끝낼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오래 유지하긴 힘들어.’
기꺼이 힘을 빌려 준 영들이 시시각각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다. 영력을 토대로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그들의 존재가 없어졌다.
전쟁터의 많은 영혼들이 도와줬기에망정이지, 싸움터가 전쟁터가 아니었다면 무릎 꿇는 건 자신이었으리라.
‘최고의 마법을.’
생을 다하고도 자유를 빼앗긴 이들을 위해.
그런 상태에서도 자신을 도와준 그들을 위해.
마리아는 최고의 마법을 실현하고자 했다.
“이익. 어디 한번 이것도 버텨 봐.”
동시에 홍련도 마법을 쌓아 올렸다.
요동치는 마력의 크기가 심상치 않은 게 최고위 마법임을 알 수 있었다.
홍련 또한 이번 공격에 모든 걸 건 것이다.
‘뇌신의 분노로는 안 돼.’
기존의 필살기를 고찰한다. 일발의 파괴력은 강하지만 그뿐이다.
보다 창의적이고 효과적이며, 범접할 수 없는 마법이 필요했다.
‘…….’
생각에 생각이 이어지고. 이윽고 마리아가 결정했다.
‘신의 감정을 빌릴 게 아니야.’
뇌신의 분노를 바랄 일이 아니다.
“연쇄 폭발.”
먼저 마법을 선보인 건 홍련이었다.
파괴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폭발 마법이 일어났다.
사방에 널브러진 시체들이 터졌다. 뼛조각이 위협적으로 날아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공간 자체가 폭발하며 대기가 진동했다.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흔들렸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위력. 얼핏 세계가 흔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크윽…….”
그 여파에 빈센트가 중심을 잡으며 신음을 흘렸다. 동시에 걱정스러운 눈으로 폭발의 중심에 있을 마리아 쪽을 바라봤다.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