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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1장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국경과 가장 가까운 도시 호른을 다스리는 슈타인 자작은 마리아가 담은 전쟁이란 단어에 미간을 찌푸렸다.
“전쟁? 확실한가?”
슈타인 자작은 어디와의 전쟁이냐 물을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이곳 호른은 제국과 국경이 맞닿은 곳.
이곳에서 전쟁이라 함은 당연히 제국과의 싸움이었다.
“이미 군영이 꾸려진 상태입니다. 수준 높은 기사도 있었고요.”
아이즈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러자 슈타인 자작이 의문 어린 눈빛으로 마리아를 바라봤다. 이 청년은 누구냐는 뜻이었다.
하지만 마리아가 아이즈를 설명하는 것보다 아이즈가 자신을 소개하는 게 한 발 빨랐다.
“반갑습니다. 아이즈라고 합니다. 바스테트 백작가와 연이 닿아 마리아와 동행하고 있습니다. 위명이 자자하신 자작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성으로 향하면서 필요한 정보는 전해 들었기 때문에 인사를 건네는 아이즈의 모습은 무척 자연스러웠다.
이곳의 지명이 호른이란 것도, 눈앞의 인물이 슈타인 자작이란 것도, 얼마 전에야 안 것이지만 이전부터 알던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 녹아있었다.
게다가 은연중에 바스테트 백작가와의 친분을 드러내며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기까지 했다. 슈타인 자작이 신분에 민감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군영이라. 확실한 정보인가.”
“확실합니다. 하이트.”
“제 눈으로 확인한 병력의 수는 약 일천이었습니다. 군영의 규모로 보았을 때 병사들이 더 충원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이즈의 부름에 나선 하이트가 목격한 것을 보고했다.
슈타인 자작이 턱을 쓸며 침음을 흘렸다.
‘상당히 구체적이군. 게다가 바스테트 가문의 후계자가 쓸데없는 말을 할 이유도 없지.’
슈타인 자작의 머릿속에선 이미 계산이 끝난 상황이었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건 어떻게 책임질 거지?”
“…….”
책임 소재를 명백히 하자는 말이었다.
자작이 보인 태도에 입을 다문 아이즈의 미간이 마약하게 찌그려졌다.
‘지금 장난하자는 건가?’
전쟁이다. 그것도 무려 대륙 제일이라는 제국과의.
한시라도 빨리 준비를 해도 모자란 마당에,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하지만 아이즈는 뭐라 대꾸할 수가 없었다. 아이즈에겐 무언가를 책임질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바스테트 가문에서 전적으로 책임지겠습니다.”
그때, 마리아가 나섰다.
슈타인 자작이 눈을 빛냈다. 감당할 수 있겠냐는 눈빛이었다.
전쟁은 가벼운 안건이 아니었다. 이들이 전한 정보를 토대로 전쟁을 준비했으나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결코 가볍지 않은 책임을 물을 게 뻔했다.
어쩌면 바스테트 백작가가 왕의 신임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
가주도 아니고 아직 후계자에 불가한 이가 감당할 수 있는 결정이냐는 의미를 담아 슈타인이 으압했다.
“호오. 바스테트 백작가에서? 그렇다면 좋네. 수정구를 빌려주지.”
“하나.”
그러나 마리아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건 저희만이 아닐 겁니다. 전쟁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말이죠.”
그 말의 의미를 깨닫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무리 중앙 정계에서 밀린 인사라지만 슈타인 자작 또한 잔뼈가 굵은 귀족. 이러한 화법에는 익숙했다.
“후. 다른 증거는 없나. 나라고 이러고 싶어 그러는 게 아니란 걸 이해해 줬으면 싶군.”
어깨를 으쓱해 보인 슈타인 자작이 한 발 물러서는 스탠스를 취했다.
그때 아이즈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가볍게 손을 들었다.
“뭐지?”
“제국의 기사 하나와 맞붙어 그의 수급을 취했습니다. 혹 아시는 기사일까 싶어서.”
“제국의 기사를 내가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귀족도 아니고 일개 기사에 불과한 이를.”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몸을 돌린 자작이었으나, 이내 다시 원상태로 몸을 돌린 그였다.
“하아. 수급이 어디에 있기에 그러한가. 한번 확인은 해 보지.”
일말의 가능성도 없는 이야기지만 혹시, 정말로 혹시 지금의 선택으로 무슨 책임 요소가 생길까 싶어 한 말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아이즈가 도깨비 보따리에서 로이드의 수급을 꺼내 내밀었다.
대뜸 튀어나온 사람의 머리에 슈타인 자작이 기겁하듯 물러섰지만 그 또한 살인 경험이 있는 사람이자 귀족으로서 곧장 체면을 차리고 머리를 확인했다.
“음?”
이상하게 익숙한 인상이었다.
“혹시 이 기사의 이름을 아는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로이드…… 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로이드?”
로이드의 목을 취할 때 울부짖던 병사들의 목소리를 떠올린 아이즈의 대답에 슈타인 자작이 관자놀이 부근을 긁었다.
로이드. 로이드.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는 정체.
무언가가 있는 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머리가 간질거리진 않았을 것이다.
한참 머리를 굴리던 슈타인 백작의 뇌에 번쩍, 불똥이 튀었다.
“로이드?! 기파의 로이드!”
어떻게 그 이름을 모를 수가 있겠는가.
제국과 국경을 맞댄 영지의 주인으로서, 나름 제국의 위험 인물들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슈타인 자작이었다.
“이 머리의 주인이 정말 그 로이드라고? 제국 십대 기사의 일원인 기파의 로이드?”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제국 십대 기사들의 수준은 하나같이 마스터에 달하거나 이미 마스터에 이른 인물들.
그런 그들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선 자신의 영지의 전력을 퍼부어도 부족함이 있었다.
한데 그런 인물의 머리가 지금 자신의 눈앞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로이드를 쓰러트렸다고? 자네가?”
“네. 뭐.”
아이즈는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제 실력을 숨길 법도 했지만 지금은 상대를 설득하는 게 더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선 어느 정도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스스로를 드러내도 되겠다는 판단이 선 상태였다.
“허어. 믿을 수 없군.”
앳된 얼굴의 청년.
바스테트 가문의 후계자와 같은 또래로 보이는 그가 제국 십대 기사의 일원인 로이드를 죽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로이드의 머리가 자신의 눈앞에 있는데,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한편 놀란 것은 슈타인 자작만이 아니었다.
아이즈가 포드를 구출하며 싸운 상대가 제국 십대 기사였다는 사실에 한 번, 그리고 그 기사를 죽였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란 이들이 있었다.
마리아와 하이트였다.
하지만 놀라움을 표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아이즈가 누구를 쓰러트렸느냐가 아닌 앞으로의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아이즈의 강함이 규격 외란 건 알고 있었기에 충격이 덜한 덕도 있었다.
“여기 있네.”
로이드의 수급을 돌려준 슈타인 자작이 자신의 책상으로 가 수정구를 들고 왔다. 장거리 통신용 수정구였다.
“바스테트 가문만이 책임질 일이 아닌 것 같군. 내 사과하지. 자네들을 믿지 못하고 있었네.”
“괜찮습니다. 누구나 그러했을 겁니다.”
마리아는 순순히 슈타인 자작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가 나쁜 마음으로 했던 말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정구에 손을 올리고 마력을 불어넣자, 곧이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이 마력은. 마리아인 게냐?”
“반갑지만 시간이 없어요. 제가 드리는 정보를 왕궁에 전해주세요.”
“음?!”
수정구 너머 목소리의 주인공. 호리오는 마리아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척 중요한 정보임을 알아차렸다.
“말하거라.”
“국경지역의 호른 영지에서 전해요. 제국이 전쟁을 준비 중이에요. 현재 천에 달하는 병사들이 국경 인근에 소집됐고, 그들이 꾸린 군영의 크기로 보아 더 많은 병사들이 소집될 것으로 보여요.”
“음.”
수정구 너머 호리오의 탄식이 들려왔다.
마리아에게서 정보를 들은 호리오는 그 나름대로 상황을 판단하는 중이었다.
‘병사가 천. 많이 잡으면 이천. 그 정도로 전면전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국지전을 노리는 건가? 아니면.’
가장 적은 피해가 일어나는 것은 국경을 조금 넓히고자 하는 목적에서 일어날 국지전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피해가 일어날 것은 국지전을 시작으로, 그 병사들이 선봉에 서 시작될 침략 전쟁이었고.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오히려 중대사에 가까운 사안. 이 정도 사안이면 곧장 왕궁에 알려야 했다.
“확실한 정보냐?”
“네. 그리고 한 가지 더. 제국이 준비했던 병력에 기파의 로이드란 기사가 있었어요.”
“기파의 로이드? 제국의 신성을 말하는 거냐?”
마법사인 호리오지만 기사의 세게에 완전 무지한 것은 아니었다.
기파의 로이드란 칭호만 듣고, 제국 기사의 정점이자 초인의 세계에 발을 들인 남자를 곧장 떠올린 것은 그러한 이유였다.
“한데 있었다니?”
“....지금은 없어요. 아이즈와 싸웠거든요.”
“아이즈와?”
그 의미를 깨닫는 건 어렵지 않았다.
‘벌써 그 정도로 성장했단 말인가!’
기파의 로이드는 마스터에 오른 강자였다. 그런 그와 싸워 패배하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상대를 처리했다면 아이즈의 강함이 마스터를 넘었다고 생각하는 게 옳았다.
‘정말 대단하구나.’
제 손녀인 마리아도 천재 중에 천재였지만 과연 아이즈에 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잠시 부유한 상념을 정리한 호리오가 수정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 외에 전달 사항은?”
“없어요. 생기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알았다. 난 곧장 폐하께 소식을 전하마.”
“네. 부탁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