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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1장


하이트가 일이 이렇게 흐른 까닭을 간략하게 진술했다.
던전 탐험 중 파티원 간의 알력 다툼이 이런 모양새가 되었다는 진술을 들은 아이즈는 인상을 찡그렸다.
‘잘 처리한 건가.’
함께하던 동료를 배신한 걸로도 모자라 죽이려 했다.
뜻하지 않게 개입한 상황에서, 그나마 뒷맛이 씁쓸하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눈앞의 남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의 표정과 제스처, 태도 등을 보았을 때 그의 말이 마냥 거짓은 아니리란 판단이 섰다.
“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이트가 고개를 숙였다.
만약 앞에 있는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하퍼가 죽은 걸 알았다 해도 힘든 싸움이 됐을 터였다.
모험가들은 합도 잘 맞고 노련한데 반해 자신은 힘이 빠진 상황이었으니.
“괜찮으세요?”
“아. 네…… 괜찮아야죠.”
조심스레 묻는 마리아의 질문에 하이트가 착잡한 심정으로 미소 지었다.
밖에 나와 처음으로 겪은 일이 이런 일이라니.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으니 잘 정리하고 넘어가야 했다.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보답이라.”
아이즈가 고민에 잠겼다.
딱히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가 보답을 한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던전에서 나왔다는 보물을 받을까.’
도깨비 보따리에 있는 재화만큼은 아니겠지만,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그 또한 꽤 많은 양의 재화일 터.
하지만 아이즈는 이내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돈이라지만, 사실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또한 돈이었다.
고민에 빠져 있기를 잠시. 아이즈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굳이 내가 먼저일 필요는 없잖아?’
상대가 뭘 갖고 있는지 모른다면 상대측에서 줄 수 있는 걸 묻는 게 빨랐다.
이른바 선제시란 것이었다.
“우리에게 뭘 줄 수 있는지, 혹은 뭘 해 줄 수 있는지. 그것부터 듣고 싶은데.”
“일단 던전에서 나온 보물들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음. 보아하니 밀림에 익숙하지 않으신 것 같은데 길 안내라도 해 드릴까요? 이래봬도 레인저라서요.”
하이트는 아이즈와 마리아의 복색과 신발에 묻은 진흙 등을 토대로 상대가 이곳의 환경에 익숙하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런 그들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보답은 어쩌면 그들의 편의를 도모하는 일일지도 몰랐다.
밀림과 대수림의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외지인들에게 이 환경은 그 자체로 역경이자 고난이었으니.
“레인저?”
그게 뭐지?
하이트의 말에 아이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전 지식이 없는 아이즈로서는 레인저가 무엇을 뜻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대충 이해하기에는 직군의 의미인 것 같은데.’
마리아를 바라보자 마리아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레인저라면 이런 환경에 특화돼 있는 이들을 말하는 거지?”
“네. 이런 꼴로 자랑하는 것도 웃기지만 제가 한 실력 하거든요.”
하퍼의 피로 범벅이 된 두 팔을 들어 보이며 자조적으로 웃는 하이트였다.
“흠. 그게 사실이라면 제일 나은 선택지인 것처럼 보이기는 하네.”
아이즈 자신이야 체력적 한계가 없다지만 마리아는 아니다.
밀림을 통과해 대수림으로 향하는 것만으로도 마리아의 체력은 시시각각 깎여나가고 있었다.
“대수림으로 가고 싶은데, 안내를 부탁해도 되겠나?”
아이즈는 일부러 대수림에 힘을 주어 말했다.
혹여 상대가 나중에라도 딴소리 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대수림이라. 목적은 무엇인가요? 약초 채집? 몬스터 사냥?”
다른 이들이 대수림으로 향한다 했으면 기를 쓰고 말렸을 하이트였지만, 아이즈의 실력을 본 이상 그의 대수림행을 말리는 건 쓸데없는 간섭에 불과하단 걸 깨달은 상태였다.
이 정도 무력 수위라면 충분히 대수림을 논할 만했다.
‘물론 중심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를 따라 대수림 곳곳을 누빈 하이트지만 대수림의 중심부까지는 가 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 또한 대수림의 중심에는 가지 않았다.

그곳은 위험하다. 함부로 가선 안 될 곳이야.

굳은 표정으로 그리 말하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잘 지내고 계시겠지?’
부푼 마음으로 세상에 나왔다지만, 처음으로 겪은 일이 이런 일이었다. 세상에 이름을 날리겠다는 의욕이 팍 떨어진 것도 사실이었다.
“대수림으로 향하는 목적은 일단 탐색이라 해 둘까.”
홍련이 대수림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칠흑이 상대했던 몬스터와 주변의 풍경은 특징이라 할 만 했지만 그곳을 특정해 내는 건 힘든 일이 분명했다.
하이트는 무척 포괄적인 아이즈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목숨을 빚졌다.
까짓 그 정도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체면이 서지 않았다.
“저는 하이트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즈다.”
“마리아예요.”
그렇게 세 사람의 동행이 시작됐다.

* * *

반하임 외곽에 위치한 밀림 속.
하이트와 함께 머물던 그곳에, 감겨 있던 할머니의 눈이 천천히 뜨였다.
“만났는가.”
반개한 눈에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안광이 서려 있었다.
“그래. 인연의 굴레가 이렇게 구르는구나.”

* * *

아이즈와 마리아, 그리고 하이트.
세 사람은 반하임을 기점으로 대수림을 탐색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즈와 하이트는 서로가 서로에게 놀랐다.
‘빨라, 그리고 편해.’
아이즈가 하이트에게 놀라는 부분은 그가 합류하기 전과 후의 루트와 거기서 기인하는 차이점이었다.
이전에는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발을 내디뎠다면, 지금은 하이트가 안내하는 길대로 움직이는 중.
이 둘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존재했다. 심력과 체력 소모의 정도가 그것이었다.
진흙을 밟아 발이 빠지는 경우도 없었고 쓸데없이 몬스터 등과 조우하며 귀찮은 전투를 치르는 일도 없었다.
단적인 예로 마리아만 봐도 그 차이의 효과를 알 수 있었다.
마리아의 표정은 훨씬 편해 보였고, 땀도 그리 많이 흐르지 않았다.
‘이 사람은 대체.’
한편 하이트는 하이트대로 아이즈에게 놀라는 중이었다.
‘내 노하우를 죄다 흡수하고 있잖아.’
물론 아직까지 전체적인 조망과 길을 보는 눈은 당연히 자신이 더 낫다.
하지만 고른 땅을 고르는 법, 최단의 루트가 아닌 최적의 루트를 따르는 법 등 자신이 레인저로 쌓아 온 경험을 그대로 흡수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뿐이랴. 레인저로서 누구보다 뛰어나다 자신했던 ‘감지’의 분야에서도 밀리는 것만 같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을 느끼며, 탐색은 점차 속도를 붙여 나갔다.
광활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대수림이었지만 그 외곽을 탐색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아이즈도 홍련이 외곽에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출입이 가능한 곳에 근거지를 만들어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외곽을 훑은 것은,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함과 동시에 홍련을 상대할 방법을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이제부턴 함께하지 않아도 돼. 고생했어.”
외곽부의 탐색이 끝난 날. 반하임으로 돌아온 아이즈가 하이트를 바라봤다.
대수림은 크게 외곽부, 중간부, 중심부로 나뉘었다.
그리고 중간부부터는 위험한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곳이었다. 아이즈는 하이트에게 그곳까지의 안내는 바라지 않았다.
빚진 건 다 갚았다. 알게 모르게 아이즈가 얻은 것들을 생각하면 사실 그 이상으로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배려는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목적하는 바를 이룰 때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하이트는 아이즈의 배려를 조심스레 거절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가장 큰 것은 궁금증이었다.
‘대체 뭘 찾고 있기에.’
아이즈는 어마어마한 강자였다.
처음 만남에서도 느꼈지만, 대수림을 함께 탐색하며 그 확신은 더욱 굳어졌다.
그런 이가 찾고 있는 것. 그것도 외곽에서는 찾을 수 없던 것이 무엇일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못해도 평범한 던전이나 그것이 품고 있는 보물 따위를 찾는 건 아닌 게 분명했다.
“그런데 뭘 찾고 있는 겁니까? 이제 슬슬 말해 줘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걸 안다면 탐색의 갈피를 잡는 데 훨씬 수월할 텐데.”
“동굴을 찾는 중이야. 주변에 강한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곳에 있는.”
목적을 이룰 때까지 동행하겠다는 하이트에 아이즈가 정보를 공유했다.
정보를 들은 하이트가 미간을 찌푸렸다.
동굴은 분명 단서가 될 수 있었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대수림 속 동굴만 해도 열 곳이 넘어갔다.
그렇다면 강한 몬스터가 득실거린다는 정보를 활용해야 된다는 소린데.
“얼마나 강한 몬스터요?”
“적어도 트윈 헤드 오우거급.”
“……네?”
하이트는 제 귀가 잘못된 건가 의심했다.
방금 뭐라고? 트윈 헤드 오우거?
지상에서 가장 강한 생명체라 불리는 게 오우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