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손견의 아들이 되었다 04권
삼국지 손견의 아들이 되었다 04권
삼국지 손견의 아들이 되었다
· 04 ·
© 메이키
삼국지 손견의 아들이 되었다 04권
· 차례 ·
Chapter 01. 전쟁의 서막 - 2
Chapter 02. 덕양 전투
Chapter 03. 낙성 전투
Chapter 04. 마초의 복수 - 1
삼국지 손견의 아들이 되었다 04권
Chapter 01. 전쟁의 서막 - 2
서천의 장수들은 앞다퉈 부릉으로 향했다. 처음엔 손검의 병력이 오는 것을 기다리면서 시간이나 끌어보자는 속셈이었지만, 공적 앞에선 그런 것이 없었다.
더군다나 한 사람도 아니고 여섯 명의 장수가 있으니, 그만큼 눈치 싸움이 생길 수밖에 없거니와, 운 좋게 장로의 목이라도 벤다면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이 되니 양보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이 향한 곳은 백룡산(白?山)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양쪽에 협곡이 있고, 그 사이로 갈지자로 뒤틀린 길의 모습이 마치 용이 몸부림치는 모습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예상대로 오고 있습니다. 세 시진 뒤면 도착할 겁니다.”
정찰을 나갔던 양임이 그리 전하니, 장로는 칼을 뽑아 들고 외쳤다.
“전에 당한 패배를 열 배로 불려서 갚아주도록 하겠다. 전군에 공격 준비를 하라 일러라.”
그렇게 군사들을 독려하니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드높았다. 그것도 모르는 서천군은 서로 먼저 가겠다며 속도를 내어 오니,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었다.
이 위험을 감지한 건 장임이었다. 평소 이 근방의 순찰을 자주 돌던 그는, 이곳의 지리가 매복을 놓기에는 최적이라고 전부터 생각해 왔었다.
허나, 실제로 경험해본 적은 없어 일단 향하긴 했지만, 생각할수록 꺼림직했다. 장로도 이 같은 지형을 모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 것이다. 이에 가장 가까이에 있던 오의에게 다가갔다.
“아무래도 백룡산으로 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닌가 싶소. 여긴 내가 몇 번 와본 적이 있는데, 매복을 놓기 좋은 곳이오. 장로가 아무것도 안 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제 살길 찾느라 바쁜 놈들이 무슨 그런 짓을 벌이겠소? 그런 시답잖은 소리나 할 거면 돌아가서 강주의 수비나 보시구려.”
오의는 장임의 말을 듣고도 코웃음을 쳤다. 장임은 그 말을 듣자 문득 지금쯤이면 근처에 와 있을 손검이 생각났다.
그가 마음이 변해 비어있는 강주를 치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큰일이 벌어지는 셈이었다. 이에 장임은 혼자 강주로 향했다. 장임이 진짜로 돌아가버리자 오의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이를 알렸다.
“그 사람, 맨날 화만 버럭버럭 내고 그럴듯한 자세만 잡더니 오늘은 왜 그리 좀생이가 된 거요?”
등현이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장임의 판단이 옳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방에서 함성이 울려 퍼지더니, 화살과 함께 바윗덩이가 굴러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매복이다!”
깜짝 놀란 그들 모두가 전열을 가다듬긴 했지만, 모든 화력을 집중한 첫 공격에 군사들의 3분의 1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지금이다! 내려가서 공격해라!”
서천의 장수들이 당황하는 사이, 양임과 양백이 좌우에서 군사를 몰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어떻게든 싸워보려 했지만, 장졸들의 공포심은 좀처럼 수습이 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장로와 염포까지 합세하니, 유장군은 그야말로 개미지옥에 빠진 셈이오, 좁은 곳에 몰아넣어져 몰살당하는 형태가 되었다.
“겁먹지 마라! 저들은 정신 나간 종교 집단일 뿐이다! 내 뒤를 따라라!”
냉포가 그리 외치며 적군 사이로 뛰어드니, 그것을 본 다른 장수들도 용기를 얻어 그 뒤를 따랐다.
“싸워라! 물러서면 죽을 뿐이다!”
“적들의 기세부터 꺾어라! 저들은 패잔병이다!”
이에 장로군도 드센 기운을 내뿜어 대적하니, 그 싸움의 격렬함은 엄청났다.
그렇게 싸우는 도중, 화살 하나가 날라 와서는 등현의 이마에 정통으로 꽂혔다. 그는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와 함께 이마를 감싸며 말에서 굴러떨어졌다.
마침 근처에 있던 뇌동이 깜짝 놀라 그에게 다가갔지만, 이미 축 늘어진 등현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을 본 유장군은 죽기 살기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등현의 죽음이 오히려 사기를 올려준 꼴이 된 셈이었다. 포위된 상태인데도 어찌나 잘 싸우는지 결국 두터운 포위망의 한쪽이 뚫리고야 말았다.
그것을 본 유장군이 너도나도 그리로 몰려드니 서로에게 밀치고 밟혀 쓰러지는 자들의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빨리 퇴각해라!”
말을 탄 장수들이 먼저 그리로 달아났고, 장로군은 놓치지 않겠다고 화살을 쏘며 뒤쫓아왔다.
하지만 지그재그 모양의 길이 방패 역할을 해주는 바람에 지옥 같은 백룡산을 빠져나오는 데는 성공했다.
“난전 중에 등현이 죽었소.”
뇌동이 다른 장수들에게 그리 말하니, 모두들 슬픔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 모두 크고 작은 상처들을 입고 있어, 누구 하나가 더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장로군이 생각보다 잘 싸우는군. 나도 큰일 날 뻔했소이다. 오늘 몇 번이나 죽음의 문턱을 오르내렸는지 셀 수조차 없소.”
냉포가 피로 범벅이 된 갑옷을 벗으며 말했다. 너덜너덜해져서 이젠 쓸 수도 없는 갑옷이었다.
“그러게 말이오. 아무래도 저들을 가볍게 보면 안 될 것 같소. 일단 강주로 돌아갑시다. 거기서 다시 군을 재정비해야겠소.”
뇌동이 그리 말하니, 그들 모두가 서둘러 강주로 향했다. 그 시각, 장로군도 본진으로 돌아와 있었다.
“오늘은 정말 아까웠다!”
장로가 가슴 깊이 아쉬움을 드러냈다. 싸움에는 이겼을지언정, 유장군의 장수들이 어찌나 잘 싸우는지 결국 그들 대부분을 놓친 것이 한으로 남았다.
“그들은 강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사기가 꺾였으니 이젠 뭘 할 수도 없을 겁니다. 서둘러 강주의 숨통을 조이는 것이 옳을 줄로 아뢰옵니다.”
염포가 그리 말하니, 장로도 그 말을 따라 다시 강주로 향했다. 그러나 이들의 뒤로 짓쳐들어오는 한 떼의 무리가 있었으니, 그것은 근처에서 기회만을 엿보던 손검의 군사였다.
“이제 때는 왔다! 이미 한 차례 싸움으로 체력이 떨어진 이들이니 순식간에 끝내버려라!”
선봉에 선 태사자가 그리 외치며 달려드니, 장로는 깜짝 놀라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저들은 손검의 군사들입니다! 저 늑대 같은 놈들이 지금까지 상황만 지켜보다 이제서야 움직이기 시작한 겁니다! 서둘러 응전하셔야 합니다!”
좀처럼 크게 소리치지 않는 염포가 저토록 다급하게 외칠 정도니, 그 상황의 긴박함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더군다나 손검의 군사들은 지금까지 쉬고 온 터라 사기가 최고조에 이르러 있었다. 반대로 종일 싸웠던 장로의 군사들은 피로가 풀리지 않은 터라, 이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느냐! 내가 상대해 주겠다!”
잔뜩 성이 난 양백이 나가서 싸웠지만, 태사자에겐 어림도 없는 상대였다. 불과 다섯 합도 버티지 못하고 도망쳤다.
장로는 북쪽 파서(巴西) 방향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여기도 이미 매복해 있던 군사들이 있었으니 서황이었다.
“장로야! 서황이 여기서 기다린 지 오래다! 어서 와서 목을 바치거라!”
“저런 쳐 죽일 놈이 있나! 뭐 하느냐! 저것들을 막아라!”
장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며, 휘하의 부장들에게 그들을 막으라 소리치고 정작 자신은 제일 먼저 꽁무니를 뺐다. 그 뒤를 염포와 양임, 양백이 모두 따르니 겨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서황 또한 무리하게 뒤따르지 말라는 방통의 지시가 있어, 그들이 버리고 간 기치며 군수품들만 입수해서 돌아갔다.
장로는 분통을 터트렸다. 죽을힘을 다해 싸움에 이겼건만, 정작 이득을 본 것은 손검이었다.
“백제성이나 임성 쪽은 이미 손검이 점령했을 겁니다. 빨리 파서로 가셔서 훗날을 도모하셔야겠습니다.”
염포의 말이 옳다 여긴 장로는 서둘러 파서로 향했고, 가면서 남은 군사들을 세어보니, 그 수는 만오천밖에 되지 않았다.
* * *
태사자와 서황을 보낸 나는 강주와 파서 사이에 영채를 구축하라 일렀다.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장로가 분명 파서로 향할 것이라 여긴 탓이었다.
“여기서 강주와 파서 모두를 살피면서 그들의 움직임에 대응하도록 하겠소.”
방통은 훌륭한 판단이라며 한껏 띄워주었고, 그러는 사이 태사자와 서황이 돌아와 장로군의 동향을 알렸다. 예상대로 그들은 파서 방향으로 도망쳤다고 했다.
“군사 수는 대략 만에서 이만 명 정도로 보였고, 군사님의 말대로 지쳐있던 상태라 간단히 쫓아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파서로 가서 장로를 끝낼 것이냐, 아니면 강주로 가서 유장군을 공격할 것이냐.
어느 때보다도 신중함이 요구되는 시점이었다. 이에 대해 방통이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이는 세 개의 세력이 어우러진 삼파전(三巴戰)입니다. 일단은 장로를 먼저 끝내시는 게 좋겠습니다. 유장군은 어차피 성에 틀어박혀 있고, 전날 부릉에서 진 탓에, 당장은 싸울 생각이 없을 겁니다. 게다가 명목상으로는 아직 우리와 동맹 관계이니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지도 않을 겁니다. 그러니 먼저 장로를 쳐 없애서 배후의 근심거리를 제거한 다음에, 강주로 가는 것이 옳은 순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 또한 방통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길게 끌 것 없이 장로부터 치기로 했다.
“하지만 유장군은 우릴 불신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 겁니다. 법정이나 장송이 내부에서 하는 행동을 저들이라고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저들이 허튼짓하지 않도록 편지를 보내 살살 달래두도록 하십시오. 또한 이곳에 수비 병력을 남겨두어 그들이 혹시라도 뒤를 칠 경우에 대비하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방통의 철두철미함에 만족감을 표했다. 정확하게 내가 생각하는 것과 일치했던 것이다.
나는 붓을 들고 강주로 편지를 보내는 한편, 세작들을 풀어 장로의 위치를 파악하게 하니, 이미 파서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렇다면 오래 끌 것 없이 내일 아침에 가도록 하겠소. 장로의 군사들을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겠소이다.”
그렇게 지시를 내리고 쉬고 있는데, 허저가 군막을 열고 들어왔다. 함께 전투에만 나서면, 늘상 나를 찾아오는 허저였다.
허나, 호탕하게 웃던 평소와는 달리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그가 조심스레 꺼낸 말을 들어 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동안 공자님을 지켜봤는데, 아직 실전에서 활약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혹시라도 큰일이 생길 수 있으니 가급적 후방에만 두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허저는 손권의 기량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고만 말했지만, 자세히 말하라 하니 머뭇거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괜찮으니 말해 보시오. 사실 나도 조금 들은 것이 있소.”
“…진짜로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싸움은커녕 짐이나 안 되면 다행인 수준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허저는 계속해서 내 눈치를 살폈다. 아무려면 주군의 동생인데 이런 말 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늘상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 성격 또한 잘 아니까 있는 그대로 얘기한 거겠지. 나는 표정 변화 없이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나도 그건 알고 있었소. 하지만 나나 형님이나 지금의 권이보다 어린 나이에 전투를 경험했소. 만약 내게 불상사가 생긴다면, 권이가 그 뒤를 봐야 하는데 아무런 경험도 없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비극이지 않겠소?”
“그렇기야 하지만, 공자님이 잘못되시면 그것도 그것대로 큰일입니다. 주공께서는 이제 남은 혈육이 얼마 없지 않으십니까.”
깊이 생각해 보면 허저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나는 생각해 보겠다고 말한 뒤, 손권을 불러오게 했다.
“형님과 함께 전장에 나서다니 꿈만 같습니다. 제가 할 일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말씀해 주십시오. 뭐든 하겠습니다.”
손권은 무척이나 들떠있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빼지 않고 일단 하겠다는 마음가짐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 자신감은 좋다.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도 전장을 경험해 봐야지. 하지만 첫 싸움에 널 주장으로 삼을 수는 없으니, 누구든 일단 따라가 보는 것이 좋을 듯하군. 혹시 평소에 생각해둔 사람이 있느냐?”
문득 나는 손권의 눈에는 누가 가장 좋게 보이고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손권은 손씨 가문 중에서도 유별난 데가 있었다. 군주라기보단 장수로 봐야 하는 아버지나 형님하고는 완전히 반대쪽에 있었으며, 장수와 책사를 겸하는 나와 같은 느낌도 아니었다.
무예는 평범한 편이고, 병서를 읽는 것도 그저 그런 수준. 하지만 용모만큼은 무척 특이했는데 네모진 턱에 입이 컸고, 눈에서는 정기가 흘러넘쳤다.
거기다 눈동자는 희한하게 푸른색을 띠니, 보는 사람마다 손권을 기이하게 여길 정도였다.
성격 또한 나나 형님과는 많이 달랐는데, 도량이 넓고 어질게 아랫사람을 대했거니와, 무인을 좋아하고 선비를 높일 줄 아는 면이 있었다.
부하들을 오로지 부하들로만 대했던 아버지, 형님이나 나에게 충성하는 사람만 가려 쓰는 나와의 차이점이 이것이었다.
그런 탓에 손권은 알게 모르게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물이 되어 있었고, 그 비범한 성품은 역시 손씨 가문의 인물로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를 들었다.
나 역시도 그런 아우를 아꼈다. 허저 말대로 몇 안 남은 혈육이기도 하거니와, 나에겐 없는 면을 가지고 있으니 배우는 자세로 손권을 바라보곤 했다.
그런 손권의 입에서 과연 누구의 이름이 나올까, 라고 생각하며 손권의 입을 바라보았는데.
“저는 유평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그는 성품이 온화하고, 맡은 임무를 목숨을 다해서라도 해내니 본받을만합니다.”
서황이나 허저를 예상했던 내 생각과는 다르게, 주태를 따라가고 싶다고 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오히려 주태가 더 어울릴지도 몰랐다.
다른 장수들은 약간씩이나마 거친 면이 있는데 비해, 주태는 늘 침착하니까. 손권 자체가 그렇게 나대는 성격은 아닌지라,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원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좋아, 그렇다면 조만간 그와 함께 가게 해주겠다. 허나, 절대 무리하진 말아라. 너는 아직 경험이 없다. 이번 싸움은 결코 만만하지 않으니, 그리 알고 각오를 단단히 하도록 해라.”
손권은 그리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물러났다. 나는 그런 아우의 모습이 낯설었다. 아직도 칭얼대던 예전 모습이 선한데, 벌써 저렇게나 성장해서 함께 전장엘 나가다니.
잠시 옛 생각에 빠졌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뺨을 두세 번 쳤다. 한가하게 감상에나 빠질 때가 아니다. 나는 방통을 불러 뭔가 들어온 소식이 있는지 물었다.
“장로군이 일부 병력을 가맹관(?萌關)에 보냈다고 합니다. 이는 파서에서의 싸움이 여의찮으면 그쪽으로 후퇴를 하겠다는 건데, 이러면 싸움은 길어질 수 있습니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가맹관은 양쪽에 협곡을 둔 천혜의 요새로, 수비하기는 최고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상당히 피곤해지겠는데. 산세가 험해 가맹관 뒤쪽으로 군사를 돌릴 수도 없으니 아무래도 첫 싸움에서 승부를 보는 것이 좋겠구려.”
“맞습니다. 하지만 파서 또한 수비벽이 두터우니,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픈 싸움이 될 겁니다. 서천의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며 지구전으로 나올 생각인 것 같은데, 본격적인 싸움이 벌어지기 전에 뭔가를 해놓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방통과 작전 구상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태사자가 들어와 장로군의 세작 하나를 잡아 왔다는 것을 알렸다.
나는 직접 그자를 보겠다고 말하며 들이라 하니, 겁에 잔뜩 질린 남자가 들어왔다. 나는 겁먹지 말라고 이른 뒤, 장로군의 허실을 묻자 놀라운 대답이 나왔다.
“가까운 시일에 양백이 군량을 운반해 오기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군량 수송대의 본대에 앞서 안전한 길을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내 표정에서 덕이라도 느꼈는지, 순순히 그렇게 대답했다. 말투나 행동거지를 보니 소심하고 겁 많은 성격이다. 또한 음성의 떨림으로 보아 거짓이 아니다.
“양백은 하찮은 용맹만으로 간신히 목숨이나 연명하고 있는 자라고 들었소. 허면, 누굴 보내는 것이 좋겠소?”
나는 은근히 방통의 안목이 궁금해 그같이 묻자, 방통은 곧바로 서황의 이름을 댔다.
“공명은 무예도 무예지만, 어떤 임무를 맡기면 늘상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주니 뭔가 물꼬를 틀어야 하는 이런 상황에서는 더없이 좋습니다. 그를 통해 뭐라도 하나 만들어 보기로 하시지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우리 군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방통은 장수들의 면면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나 역시도 그리 생각하오. 허면, 공명을 불러서 이같이 이르고 나간 김에 장로군의 동태까지 살펴보고 오라 하시오.”
그렇게 서황을 보낸 후, 나는 잠시 바람이나 쐴 겸, 밖으로 나갔다. 이미 하늘은 어두웠다. 그런데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져서 보니 빗방울이었다.
나는 외투를 걸친 뒤, 영채를 걸었다. 하늘은 시커멨다. 먹구름에 가려 달과 별이 보이지 않았고, 차디찬 빗줄기만이 얼굴에 떨어지고 있었다.
말없이 비를 맞던 나는 순간 떠오르는 것이 있어 사람 하나를 불러서 뭔가를 지시하기 시작했다.
* * *
조금씩 내리던 비가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수송대를 지휘하던 양백은 인상을 찌푸렸다. 가뜩이나 산이 많아서 나아가기 힘든데, 땅까지 질퍽해지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비가 더 오기 전에 서둘러라!”
양백이 손바닥으로 비를 가린 채 말했다. 그렇게 해도 손가락 사이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비를 막아낼 순 없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버틸 만큼만 오던 비는 이제 거친 바람과 함께, 후두둑, 후두둑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대지를 강타하고 있었다.
정확히 양백이 싫어하는 날씨였다. 폭풍우가 오는 것만 같은 차가운 바람과 비의 냉기는 뼛속까지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