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귀환 02권
투신귀환 02권
투신귀환
02
북창
투신귀환 02권
차례
제26장. 할아버지!
제27장. 끊임없는 자기 증명의 길
제28장. 저도 동행하고 싶습니다
제29장. 투신의 비급
제30장. 내가 그랬는데?
제31장. 상인이 살아가는 법
제32장. 강북의 후기지수들
제33장. 합비의 밤
제34장. 무인들의 오락
제35장. 주머니 속의 송곳
제36장. 투룡이 그 이름을 얻다
제37장. 쌓여가는 변화들
제38장. 인정, 그리고 보상
제39장. 잘 부탁드립니다
제40장. 다시 흐르는 시간
제41장. 나만의 길
제42장. 이심전심(以心傳心)
제43장. 복건 단목세가
제44장. 힘을 숨긴 사내
제45장.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
제46장. 물밑 작업
제47장. 수라의 피, 보살의 눈물
제48장. 도련님, 다시 봤어요
제49장. 집행관을 뵙습니다
제50장. 새 시대의 증명
투신귀환 02권
제26장. 할아버지!
“뭐? 휴가?”
왕소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들을 쳐다봤다.
“예. 제가 부탁드렸어요. 아버지께서도 흔쾌히 허락해주셨어요. 작년 팔순 잔치 때도 못 갔었잖아요. 이번에 저랑 같이 외가에 가시면 돼요.”
“아….”
왕소군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십일 년 전 칠순 잔치 때를 마지막으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본가.
원래라면 작년 팔순 잔치 때 본가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작년만 해도 한참 강천이 방황하던 때라 가고 싶다고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렜다.
오랜만에 아버지를 보면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문가에 있던 기영란마저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가끔 고향의 부모 때문에 며칠 정도 휴가를 받아 다녀오곤 했지만, 이번엔 무려 몇 달 동안 지낸다고 하니 가족들과 충분한 해후를 즐길 수 있으리라.
그동안 뜸했던 어릴 적 동무들과도 연락을 할 수 있을 테고.
“내가 아들 잘 둬서 호강하는구나.”
“아닙니다, 어머니.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앞으론 이보다 더 호강시켜드릴게요.”
“난 네가 건강하기만 하면 된단다.”
“그것도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저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 거니까요.”
“호호호. 그래, 그래.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바로 움직일 거냐?”
기영란은 본가에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전 바로 가면 됩니다.”
“그럼 조금만 기다려주려무나. 오랜만에 본가에 가는데 준비도 좀 해야 하고.”
“예. 어머니 준비되시면 말씀해주세요.”
어머니가 기뻐하고 설레는 모습을 보자 강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이 행복을 자신이 지킬 것이라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 * *
“만금장엘 가신다구요?”
“그래.”
“알겠습니다. 그럼 대원들을 준비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곽평이 그대로 몸을 돌리려 할 때였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어차피 이번에는 본가에서 무사대를 지원해줄 거다. 만금장에 도착하면 무사대는 적가로 복귀할 거고.”
“어… 그럼…?”
“그래. 너희들은 내가 다녀올 동안 수련에만 힘써. 이번에 다녀오면 본격적으로 순찰행을 떠나야 할 테니까.”
“순찰행 말씀입니까?”
“음. 그러니까 봉신가의 무사들에게 얕보이면 안 되겠지?”
씨익 웃는 강천의 말에 곽평의 얼굴이 굳어졌다.
“절대 그래선 안 되죠. 돌아오실 때까지 지옥훈련 들어가겠습니다.”
“좋군. 기대하지. 아, 그리고 가는 길에 약선원에 들러서 영약 받아 가고.”
“영약 말씀입니까?”
“음. 순검이 되면 가문에서 하급 영약이 지원되거든. 곽 대주 거랑 조장급, 일반 대원,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순검이 된 대원들별로 따로 지급이 될 거야.”
“감사합니다. 대원들이 무척 좋아하겠군요.”
“곽 대주는 싫고?”
“후후, 그럴 리가요.”
평소 무뚝뚝한 곽평의 얼굴에도 살짝 미소가 맺혔다.
돌덩이같은 사람도 미소 짓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 그게 바로 영약이다.
“그래, 갔다 와서 보자고.”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음.”
그렇게 순검대를 단속하던 강천에게 준비가 끝났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전해졌다.
* * *
적가가 위치한 남창에서 동쪽으로 육칠일 정도만 쭉 가면 항주(杭州)가 나온다.
항주는 중원 대륙의 동남쪽에 있는 절강성(浙江省)에서 가장 큰 도시다.
절강에서 가장 큰 강인 전단강(錢塘江)을 기고 있으며, 서쪽 편에는 서호(西湖)라는 유명한 호수가 있어 풍광이 수려하다.
옛 속담에 항주를 일컬어 상유천당하유소항(上有天堂下有蘇杭)이라고 했다.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는 뜻으로, 항주는 온갖 문물이 항주로 몰리는 번화하고 아름다운 고장이다.
또한 북경과 남북으로 이어져 있는 경항대운하(京杭大運河)의 기점이자 종점이기도 하여 수륙 운송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소금과 비단으로 만금을 거머쥔 거상들이 즐비한 곳이기도 하며, 고관대작들이 은퇴한 후 여생을 보내기로 유명하기도 했다.
남창에서 항주로 가는 길은 순조로웠다.
단주를 잃은 적랑단은 정비 중이었고, 따로 외부 임무가 없었던 적표단에서 호위를 맡게 되었다.
적표단주 적원태는 친가주파 인물로 강천 역시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중간중간 미리 객잔을 예약해서 편하고 안전하게 이동했고, 적가의 깃발을 높이든 그들에게 강남땅에서 시비를 걸 사람들은 없었다.
강천은 말을 타고 이동했으며, 내내 어머니의 마차 옆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그동안 소원했던 시간을 메워나갔다.
그렇게 강서와 절강의 경계를 통과해 어느덧 항주에 이르렀다.
항주의 명소 중 하나인 서호의 뇌봉탑(雷峰塔)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항주에 오긴 온 모양입니다. 뇌봉탑이 보이네요.”
“응? 네가 뇌봉탑을 아니?”
왕소군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열 살 때 마차를 타고 항주에 간 게 아들에겐 처음이자 마지막 항주행이었을 텐데 대뜸 뇌봉탑을 말하니 놀란 것이다.
“아…! 뭐 항주 서쪽으로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탑이니까요. 뇌봉탑이려니 한 겁니다.”
“으응….”
왕소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설명이 미흡했지만, 그냥 넘겨짚은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마부석을 향해 난 쪽문을 통해 뇌봉탑이 눈에 들어오자 금세 잊어버렸다.
왕소군의 눈이 살짝 떨렸다.
‘뇌봉탑… 정말 왔구나….’
감회에 젖는 왕소군을 보며 기영란 역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창을 통해 보이는 강천의 얼굴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도련님. 부디 우리 아가씨 지켜주세요.’
그녀 역시 후계싸움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후계싸움의 향방이 어떻게 갈리냐에 따라서 자신을 비롯한 모든 이들의 생사가 결정되리라는 것도.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죽음을 각오했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은 죽더라도 강천과 왕소군만은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이제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희망을 넘어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
왕소군과 강천을 번갈아 쳐다보는 기영란의 작은 주먹이 꼭 쥐어졌다.
그렇게 각자의 상념 속에서 만금장의 거대한 장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지! 어떻게 오셨… 어?”
정문을 지키던 수문위사가 얼빠진 소리를 내며 적가의 깃발을 쳐다봤다.
이미 왕소군이 온다는 것을 기별받았던 고참 위사는 이 행렬의 주인이 자신이 신참 위사였던 시절, 가문의 천금이었던 ‘아가씨’라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 아가씨!”
고참 위사의 목소리에 마차의 창을 통해 왕소군이 얼굴을 내밀었다.
“아…! 강 무인님! 오랜만이에요. 저 소군입니다.”
“아, 알죠, 알다마다요! 문을 열어라!”
고참 위사 강정호의 외침에 신참 위사가 사람이 드나드는 쪽문이 아니라 대문을 개방했다.
그그그극!
거대한 대문이 열리자 마차 두 대가 동시에 지날 수 있는 공간이 펼쳐졌다.
들들들들.
또각또각.
마차와 말이 안으로 들어섰다.
단순한 외부인었다면 하마하여 몸만 움직였겠지만, 왕소군이 어디 외부인인가.
“강 무인님. 그럼 또 봬요. 이번엔 좀 오래 있을 거예요.”
위사들이 있는 곳에서 잠시 마차가 서고, 왕소군이 강정호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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