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급 배우가 상태창을 숨김 08권
폐급 배우가 상태창을 숨김 08권
폐급 배우가 상태창을 숨김
· 08 ·
© papapa
폐급 배우가 상태창을 숨김 08권
· 차례 ·
Chapter 01. 제안
Chapter 02. 두근두근 병문안
Chapter 03. 시동
Chapter 04. 수능 유예림
Chapter 05. 돌아보기
Chapter 06. 전초전
Chapter 07. 전면전
Chapter 08. 천만 배우
Chapter 09. 에필로그 1 ? 국토대장정
Chapter 10. 에필로그 2 ? 프로포즈
Chapter 11. 에필로그 3 ? 결혼식
Chapter 12. 에필로그 4 ? 독립 (完)
폐급 배우가 상태창을 숨김 08권
Chapter 01. 제안
유성우, 또 질질 짜다!
초유의 사태라고 하기엔 정기 컨텐츠 급으로 자주 나오는 장면이었지만, 미남의 찌질한 눈물은 언제나 수요가 있는 법이다.
더군다나 그게 병신 같은 것으론 언제나 세 손가락 안에 들어오던 성우의 눈물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으리라.
평소라면 이쯤 성우의 이미지 소모를 걱정하며 당장 성우를 찾아가 매콤한 물리의 맛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말해 뭐하겠나, 성우의 소속사 대표직을 맡고 있는 ‘칼날비’ 윤선혜였다.
하지만 오늘, 바로 ‘김성곤과 구천용과 성준일과 서말숙’의 합작을 함께 비밀로 부쳐왔던 게 들킨 지금은!
“아니, 나도 말하지 말라고 해서….”
성우의 인간상성 윤선혜도 이런 성우의 찌질함에 쿠사리를 넣을 수 없었다…!
아니, 도리어 성우가 그 라인업을 얼마나 기대했을지 아는 만큼 미안한 마음까지 품고 있었다.
“너무해. 진짜 너무해!”
성우가 표독스럽게 눈깔을 세모로 뜨며 외쳤다.
선혜의 몸은 저 세모 눈깔에 손가락 찌르기를 시전하라 외치고 있지만, 마음의 부채감은 그 일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선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잖냐. 영화랑 관련된 정보는 엠바고가 풀릴 때까지 나도 말 못 해. 더군다나 너한테는 특히 말하지 말라고 하나 같이 얘기들을 하니까.”
쿠궁!
성우의 충격받은 표정에서 효과음이 보이는 듯한 기분이었다.
선혜는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너 싫어하는 거 아니야. 오히려 좋아하니까 숨긴 거지.”
“좋아하는데 왜 숨겨요…? 나랑 소원이는 비밀 없는데…!”
“그거야 너희 둘 얘기고.”
쩝, 입맛을 다시며 선혜는 화살을 돌려버렸다.
“궁금하면 물어보던가. 천용 아저씨 귀국한 것도 여태 모르고 있던 꼴이 된 거잖냐. 이것 때문에 숨긴 거였으니까 한 번 만나서 밥이라도 먹고 와. 영화 시작 전이라 아직은 한가해.”
성우가 부들거렸다.
하지만 선혜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게 다였다.
아닌 게 아니라, 왜 숨겼는지를 선혜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당사자들이 강력하게 원한 게 그것이었으니, 대표로서 그 의견을 수용해준 것일 뿐.
“그리고 하나 더, 네 작품도 슬슬 생각할 시기 왔어. 이제 개봉까지 했으니까 인터넷 방송은 그만두고 다음 작품 골라보자.”
대표로서의 피드백까지 모두 마친 순간이었다.
이 새끼는 뒷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 사이에 스마트폰을 켜 씩씩대며 전화를 걸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발까지 탁탁 바닥을 두드리는 게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는 가정주부 같다면 비유가 적절할까?
왜인지 싫고 소름끼치는 기분에 선혜가 목을 뒤로 쭉 뺐다.
그러던 중 전화가 연결됐다.
“여보세욧?! 천용 아재! 지금 어디서 뭐하고 있어욧!”
선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정말 한평생 저놈 기행을 봐왔지만, 이럴 때면 그저 ‘진짜 싫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 *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귀국 사실도 숨기고, 영화 캐스팅 사실도 숨기고, 다 숨기면서 자기들끼리 신나는 거 하는 건 너무했다.
핵심 촬영진 모두가 내 지인들인데 하다 못해 카메오 캐스팅 정도는 물어봐 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이번 일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이 일의 자잘못을 확실하게 따져 꼭 사과를 받아내야만 속이 시원하겠다!
하여 왜인지 만악의 근원일 것 같은 천용 아재를 찾아갔다.
전화해 보니 역시 하릴없이 쉬고 있었다.
―히야, 여윽시 한국 밥이 입맛에 딱 맞드라! 저녁에 감자탕 무러 갈 그니까 니도 함 온나! 이젠 살 얼굴 봐도 되겠드마!
내가 얼마나 속이 타들어가는지도 모르고 혼자 신나 있다 이거지.
일단 계획은 가자마자 새침하게 노려보는 거다.
말없이 노려보다보면 암만 눈치 없는 천용 아재라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는 하겠지!
암! 그럼 그때부터 내가 왜 실망했고, 얼마나 실망했는지 말한 다음 카메오 출연을 넌지시 부탁하면 되는 것이다.
계획은 완벽, 나는 엄격, 근엄, 진지한 얼굴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렇게 천용 아재를 봤다.
“성우야! 내 여 있다!”
저 멀리서 천용 아재가 껄껄 웃으며 손을 휘젓는다.
주변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본인이 슈퍼스타라는 자각이 없는 건가?
아니, 미국에서 하던 짓 생각해보면 남이 보든 말든 신경을 안 쓰는 쪽에 가깝겠지.
탁탁탁 걸어가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말없이 천용 아재를 지이이― 노려봤다.
그러자 보이는 게 있었다.
<<스카우터가 발동됩니다.>>
<<대상 : 구천용의 스테이터스를 관측합니다.>>
<<연기력 : S+>>
역시라면 역시일까.
깔끔하게 S+ 판정이 떨어져 있었다.
언제나 잊히지 않았던, <모형 정원>에서의 그 사람을 집어삼키는 연기력은 S+의 상징이란 거겠지.
새삼스럽게 놀라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어렴풋이 느끼던 것을 확실히 인증했다는 게 끝.
하여 그런 점을 제외하고 얼굴을 보면 그랬다.
‘안색 좋아졌네.’
한국밥이 좋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지 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펴져 있었다.
사람이 동글동글하게 쪘다는 말은 아니고, 전에는 말라 있던 것도 같았는데 지금은 딱 보기 좋고 건강하게 몸이 벌크업 되어 있다고 해야 하나.
얼굴선도 멋들어지게 정리가 된 게 돋보인다.
‘그래도 잘 지내서 다행이다.’
흐뭇한 기분이 일었다.
오랜만에 한국 와서 적응 못하는 건 아닌가 걱정 했….
‘아, 아차! 이게 아니지!’
번뜩!
눈에 힘을 줬다.
지금은 반가워할 때가 아니라 화난 걸 어필할 때니까!
다시 천용 아재를 노려봤다.
그러자 천용 아재가 껄껄 웃으며 내 잔을 채워주셨다.
“마 일단 한잔 묵고 시작해야지! 탕도 팍 끓고 있으니까 마 함 무바라! 쳐직인다!”
“…….”
감자탕 냄새가 좋긴 하네.
말없이 아재에게 잔을 받고 잔을 따라줬다.
그런 다음 고개를 돌려 첫 잔을 비우고 감자탕 국물을 호로록 마셨다.
근데 아재는 내가 화난 것도 안 보이나? 왜 이렇게 신나 있지.
“크, 내 니랑 술 못 먹어서 억수로 아쉬웠던 거 아나! 저 제작 발표되는 거만 천날을 기다렸다이가!”
“…….”
“마, 니도 내 보니까 좋재!”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가까스로 그렇다는 답을 참고는 다시 노려보기.
하지만 천용 아재는 강했다.
“아, 니 소원이랑 사귄다매! 내 느그들 다~ 그럴 줄 알았다이가!”
“뭔 소리야! 아재 우리 보면서 ‘느그는 평생 친구하겠다’라고 했잖아!”
“으잉? 내가 그랬나?”
“어? 어어어???”
날조는 역시 구평인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발언에 내가 벌떡 일어나자, 천용 아재가 껄껄 웃었다.
“마 잘 됐으면 됐지 별 걸 다 따지네! 앉으라! 사람들이 본다이가!”
“와! 와아아!!! 진짜 뻔뻔하네!!!”
어느덧 삐진 척해야 한다는 생각도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 * *
천용은 끅끅 웃으며 벌컥 화내는 성우를 봤다.
잘 지내고 있어 보이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일단 만난 직후부터 삐진 척을 하려는 게 못내 우스워 유쾌했다.
왜, 반가워서 어깨가 들썩이는 주제에 애써 세모 눈을 뜨니 그게 안 우습기가 힘들지 않겠나.
뭐 때문에 이러는지 알기에 곧장 그 얘기는 하지 않았다.
어떤 반응에도 웃고, 어떤 행동에도 웃으며 분위기부터 풀었다.
성우는 알지 모르겠다.
아내가 화나도 이렇게 풀어주진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애초에 아내는 이렇게 삐지지 않긴 한다).
여하튼 연애 얘기가 나오니 바로 무장 해제.
성우는 천용이 기억하는 조금만 찔러도 버럭 화내는 꼬맹이로 돌아왔고, 그렇게 식사를 원래 궤도에 올려둘 수 있었다.
천용은 감자탕 뼈를 한 손에 들고 그대로 고기를 뜯어먹었다.
성우는 이제 입이 풀렸는지 투덜투덜 섭섭하다느니 하는 본심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래도 난 아저씨 믿었는데! 귀국하면 나랑 하나 찍어줄 줄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