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급 배우가 상태창을 숨김 07권
폐급 배우가 상태창을 숨김 07권
폐급 배우가 상태창을 숨김
· 07 ·
© papapa
폐급 배우가 상태창을 숨김 07권
· 차례 ·
Chapter 01. 맞닿기
Chapter 02. 기쁨이 된 너에게
Chapter 03. 스캔들
Chapter 04. 작별
Chapter 05. 겨울 온기
Chapter 06. 환장의 게임 스트리밍
Chapter 07. 누군가에게 바친 영화
Chapter 08. 월드 클래스
폐급 배우가 상태창을 숨김 07권
Chapter 01. 맞닿기
알람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안 그래도 심란하던 차에, 이제껏 그 용도가 불분명했던 최초 S급 보상이 냅다 떠버리니 일순 숨이 흐트러질 정도였다.
그런 점을 제외하고 생각해 보면 그랬다.
하필 이 타이밍에 나타난 알림은 왜인지 나에게 사용을 종용하는 것만 같았다.
무언가를 알리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일단은 거부감이었다.
내겐 기적이나 다름없는 시스템인 것은 분명하지만, 항상 생각해온 건 이 힘에 휘둘리지 않고 싶다는 것이었으니까.
시스템을 사용하는 주체는 나여야만 했으니까.
그럼에도 이것을 냅다 치워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
“…자는구나.”
아직도 내 옷깃을 잡고 있는 우소원 때문이다.
“잘 자.”
아쉬움 가득한 저 목소리가 귀를 간질이기 때문이다.
“나….”
끝맺지 못하고 스러지는 저 말의 뒤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
“…….”
공간은 침묵으로 젖어 든다.
나는 온 신경이 우소원의 숨소리에 집중되는 기분을 느꼈다.
쿵, 쿵.
심장이 시끄럽게 뛰었다.
박동이 고막을 두드리는 것만 같았다.
‘아닐 거야.’
그렇게 생각하려 했지만, 인지하고 돌이킬수록 우소원이 보였던 행동들은 하나하나가 의구심을 진해지게 만든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답은 하나밖에 없다.
시스템이 저것을 사용하라 이른다면, 저것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 있다는 말이나 다름 없으니.
나는 기다렸다.
우소원의 숨소리가 안정되기까지.
내 옷깃을 붙잡은 손에 힘이 풀리기까지.
이윽고 우소원이 잠들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나는,
“…사용.”
아주 낮게 중얼거렸다.
띠링!
<<감정 동조화 티켓이 사용됩니다.>>
<<대상 : 우소원과 동조됩니다.>>
알람이 떴다.
나는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그렇게 일어나는 현상을 지켜봤고, 이윽고 의아함에 빠졌다.
눈이 깜빡였다.
‘…아무 일도 없는데?’
티켓이 사용되었으나 변화는 없었다.
* * *
선혜는 성우의 전화를 받은 순간 결심했다.
두 번 다시 성우에게 차를 빌려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또한 이런 상정 외의 스케줄을 만들어버린 성우를 기필코 응징하고 말리라고.
그런 다짐이 속을 불태우는 다음 날.
해가 뜨기도 전 새벽에 일어난 선혜는 곧장 회사로 출근했다.
급한 서류부터 일찌감치 마무리를 짓고, 기차를 예매해 부산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역에서 내려 해운대까지.
팔자에도 없는 바다 구경을 하게 된 까닭으로 시큰거리는 속을 붙잡으며 목적지에 도착한 선혜는….
“…너희 왜 그러냐?”
화도 내지 못하고 뻘쭘한 기분에 휩싸였다.
성우와 소원이 이상했다.
평소 같으면 성우가 “누니이이임!!! 나 무서웠어!!!” 하며 울며 달라붙어야 했고, 소원은 “가기 전에 반주 고?”라며 한 대 쥐어박힐 말을 했어야 했다.
한데 도저히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딱히 몸이 안 좋아 보이는 건 아닌데, 두 사람 분위기가 너무 축 처져 있는 것이다.
아니, 어색하다고 해야 하나?
“오셨어요. 누님.”
“대표님, 안녕.”
“어어….”
목소리가 잔잔하다.
소원의 시선은 바닥을 향해 있었고 성우는 그런 소원의 눈치를 봤다.
그러다가 소원이 흘긋 성우를 보면 성우는 모르쇠 하며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랄까.
도저히 이 둘에게서 나올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어색하고 간질간질한 기류가 흐르니 몸에 소름이 돋아온다고 해야 할까.
그런 감상을 떠나 생각해 보자면 그랬다.
‘이 새끼들 설마….’
옅은 술 냄새, 뜻밖의 1박 2일 여행, 그리고 어색한 기류.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곤 하나 선혜도 사람이다.
눈치라는 게 없지 않은 이상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사적인 영역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워낙 막역하게 지내고 사적인 시간이 더 긴 관계라곤 하나, 객관적으로 보자면 두 사람은 자신의 소속 배우.
배우에게 스캔들은 언제나 치명적인 법이었다.
선혜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아닐 거야.
절대 아닐 거야.
그렇게 생각하려 해도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눈빛은, 선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 기색을 알아차린 걸까.
“…아니야. 그런 거.”
소원이 먼저 말했다.
사뭇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선혜가 흠칫했고, 그보다 성우가 더 움찔했다.
소원은 고개를 휙 돌려 바닷가로 향하며 말했다.
“가자.”
뭔가 달랐다.
정상적이긴 하지만 어딘가 까칠하고 심기 불편한.
그걸 넘어서 화나 보이기까지 하는.
선혜는 소원이 저런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이라곤 추호도 생각지 못했다.
누군들 상상이나 했을까.
선혜가 소원의 눈치를 보며 말을 고르는 날이 오리라고.
“그럴까…?”
그래도 가기 전에 해운대까지 왔는데 국밥 한 그릇 먹고 가는 것 어떠냐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 * *
소원은 차창 너머로 흐르는 풍경을 봤다.
그래 봐야 고속도로와 산이 끝인 풍경이었으나, 그게 질린다고 차 안쪽을 보고 싶진 않았다.
왜 이렇게까지 기분이 가라앉는가.
그 이유를 말하자면 전날 밤을 돌이켜야 할 것이었다.
‘안 자고 있었어.’
성우는 어젯밤, 자신이 부른 순간에 잠에 들지 않았었다.
숨을 흠칫 들이마시고, 이내 몸을 긴장시키는 동작이 있었기에 그를 알 수 있었다.
늦게라도 답해주지 않을까.
기다리고 기다리며 오랜 시간 성우의 등을 노려봤다.
하지만 끝까지 답은 없었고, 기다리다 지쳐 잠들었다.
일이 그렇게 되어버리니, 일어난 후론 성우를 보는 게 싫지 않던가.
왜 답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은 건네지도 못했다.
혹여 돌아온 답이 자신을 무너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마디로 말해, 겁을 집어먹어서였다.
선혜의 기색을 살피고 먼저 부정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저렇게 자신과 거리를 두려는 성우에게 마음을 들키면 안 된다고 생각해 버리고 만 것이다.
소원은 주먹을 꽉 쥐었다.
입매도 꾹 다물렸고 눈빛은 침잠했다.
차가 터널에 들어왔다.
밖이 어두워지며 창으로 옆자리의 성우가 보였다.
자신을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고, 직후 성우는 흠칫하며 고개를 숙였다.
심장이 떨렸다.
밉고 좋은 마음이 함께 떠올라 괴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