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급 배우가 상태창을 숨김 04권
폐급 배우가 상태창을 숨김 04권
폐급 배우가 상태창을 숨김
· 04 ·
© papapa
폐급 배우가 상태창을 숨김 04권
· 차례 ·
Chapter 01. 상승세
Chapter 02. 잠시만요
Chapter 03. 걸어가기
Chapter 04. 스카우터
Chapter 05. 호러
Chapter 06. 이해하기
Chapter 07. 재벌
폐급 배우가 상태창을 숨김 04권
Chapter 01. 상승세
영화에서 호러 장르는 확실히 메이저에서 벗어나 있었다.
극히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고선 성적을 내는 것조차 힘들며, 설령 성적을 냈다고 한들 그것이 ‘호러 치곤’ 나은 성적이 대부분이다.
유일한 예외라 친다면 오컬트 장르와의 결합.
그조차도 한국에선 그리 좋은 성적을 낸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
“…이걸 네가 모르진 않을 것 같은데.”
선혜는 성우에게 되물었다.
이 선택이 맞냐고.
너무 큰 위험부담을 지는 것은 아니냐고.
본디 배우가 원하는 작품이라면 어떻게든 컨택을 도와주는 게 소속사의 일이라지만, 그 선택에 의구심이 든다면 재고를 권유하는 것도 소속사의 일이다.
선혜가 생각기로 지금은 후자의 경우였다.
성우의 상황은 특별했다.
드라마 연타석 성공, 그리고 개봉한 영화의 흥행가도 입성.
지금은 조금 더 메이저한 작품들을 골라 이 상승세를 이어가야만 했다.
작품에 대한 고집은 미뤄두고, 필모그래피를 화려하게 채운 후 휴식기를 가지는 게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란 말이다.
작품적 취향은 그 이후에 논해도 늦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구는 이유는 하나였다.
“원 히트 원더. 우리 업계에선 드문 일 아냐. 아니, 도리어 대부분의 스타가 원 히트 원더로 필모그래피를 마무리하곤 해. 네가 그 경우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어.”
물론 아주 근거 없는 선택이 아님은 알고 있다.
지금 선택한 호러 영화의 감독?
선혜도 알 정도의 거장이다.
한국의 호러라고 하면 지민형.
지민형 하면 한국 호러의 유일한 희망이다.
하지만 그것도 5년 전의 이야기다.
휴식기가 길다면 그만큼 작품의 성향이 달라지는 게 감독이라는 족속이다.
지금 시놉시스로 들어온 호러 영화가 선혜가 아는 그림과 다르다면?
꽤 머리 아픈 상황이 펼쳐지고 만다.
건네진 질문에 성우는 잠시 정적을 만들었다.
답은 그 이후에나 슬그머니 튀어나왔다.
“…감, 이라고 하면 안 믿겠죠?”
“당연하지.”
“그럼 ‘배역’이요. 이게 끌리는 이유가 배역인 것 같아요.”
배역이라, 선혜는 계속해보라는 듯 턱짓했다.
그러자 성우가 말했다.
“이 배역, 제가 잘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천용 아재도 하는 말 있잖아요. 대본이 평균 정도만 가도 배우의 연기력이 작품의 퀄리티를 바꾼다고. 그런 점에서 주인공 배역이 저한테 어울리는 것 같아요.”
제목은 확정되지 않은 영화다.
하지만 시놉시스만 본다면 주인공이 어떤 역할인지는 보인다.
“귀신에 홀리다가 미쳐가는 배역?”
“네, 그 배역이요.”
잘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여전히 불안한 구석이 있는 판단.
한데, 그것이 직후 이어진 말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간 유성우랑 먼 캐릭터니까요.”
선혜가 흠칫했다.
성우의 눈빛에 확신이 떠올랐다.
“누님이 항상 말하잖아요. 매체에 비치는 모습이 실제 연기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그런데 생각해봤어요. 저, 이제와서 무게 잡기엔 늦지 않았어요?”
놀라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그걸 아는 새끼가 이때까지 그랬단 말이야?’
라는 의문과,
‘저걸 스스로 생각했다고?’
라는 대견함.
뭐가 됐든 성우의 말은 이어졌다.
“그럴 거면 아예 다른 맥락으로 가는 거죠. 배역으로 절 볼 수 없게 실제의 저랑은 먼 배역만 맡는 거예요.”
들으면 들을수록 그랬다.
“그런 면에서 이번 호러 배역? 나쁘지 않죠. 아니, 괜찮죠. 무엇보다 제가 해보지 못한 장르, 배역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래요. 누님도 아시잖아요. 연기 바리에이션이 고정된 배우의 수명이 얼마나 짧은지.”
맞는 말이다.
‘이 새끼가 왜 맞는 말을 하지?’
그 상황 자체가 호러였으나 일단 제쳐두고 생각하면 성우의 의견은 지극히 타당했다.
선혜는 어느덧 성우의 의견에 동조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납득의 의지는 강해졌다.
하지만, 굴지의 엔터테인먼트 상록의 주인 윤선혜.
마냥 남의 의견에 수긍만 할 인간군상이었다면 이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다.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적어도 도전적인 장르와 배역을 소화할 생각이라면 이것이 ‘완전한 실패’가 되지 않도록 한가지를 엮어야 한단 말이다.
“…그럼 유성우.”
“네?”
“네 의견은 알겠어. 나름 생각도 한 건 알겠고. 그래도 아직 불안해. 이 실패가 네가 쌓은 레코드의 실패가 되지 않게 하려면….”
“무슨 말 하는지 알겠네요.”
바보같은 짓만 골라하지만 성우는 머리가 나쁘지 않았다.
도리어 아주 좋은 편에 속했다.
“메이저한 배역 하나 더. 고르는 드라마는 두 개여야 한다는 말 맞죠?”
“그래.”
한 번의 실패로도 조롱받는 게 배우다.
그렇다면 그 실패를 중화하기 위해선 그만큼의 성공이 필요하다.
어찌해야겠나.
도전 하나를 했다면, 안정 하나를 찾아 두 개를 찍을 수밖에.
“콜?”
“콜! 묻고 더블로 가!”
짝!
하이 파이브는 너무 방정맞으니 로우 파이브를 했다.
극적인 협상 타결이었다.
* * *
어느덧 개봉 4주차, 현재까지의 [모형 정원] 흥행 성적은 830만.
그에 세간은 평했다.
-와, 진짜 아슬아슬한데.
아슬아슬하다고.
다름이 아닌 1,000만 관객까지의 아슬아슬함을 말하는 것이었다.
본디 4주에서 끝나야 했을 영화 상영이 흥행으로 인해 2주나 늘었다.
이미 극적인 흥행 동원 분기점은 돌파한 셈이었고, 이제 남은 것은 완만한 그래프 상승인데 여기서 보여줄 퍼포먼스는 대충 짐작이 가능하지 않던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렇다.
-못 갈 정도는 아님. 근데 갈 수 있다고 확신할 정도도 아닌 것 같음.
170만 추가 동원은 이미 [모형 정원]이 일으킨 돌풍을 생각하면 딱 그 수준에서의 일이었다.
성우나 소원의 팬층은 그 상황을 보며 N회차 감상에 들어가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일반 관객은 그저 재미난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것에 관객 수 추이를 지켜보기 바빴다.
세간이 성우를 주목하는 게 지금이다.
모두가 그의 성공을 경악하며 환호하는 지금이다.
…그리고, 이곳에 그런 흥행 속에도 성우가 미운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제가요? 유성우랑요? 드라마를 또요?”
후덕한 인상의 남자.
그의 이름은 차용구.
…다름 아닌 성우 탓에 망했던 드라마 [미친 놈의 연애]의 감독이었다.
용구가 눈을 끔뻑거리자 드라마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투자사 측에서 강력하게 원하더라고. 웃돈을 얹어줘서라도 유성우 캐스팅 해달라고 하던데.”
“제발, 제발 이러지 맙시다. 거짓말이라고 해줘요….”
용구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국장님도 저랑 유성우 알잖습니까….”
문득 용구는 지난 일을 회고했다.
[미친놈의 연애]의 실패 이후 용구의 삶은 꽤 고단했다.
한 자릿수로 끝난 시청률 탓에 곤욕을 치르고, 이후 차기작을 컨택하는 데도 필모가 꼬여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곧 죽으라는 없다고 하던가.
용구는 그런 고난과 역경을 겨우 이겨내고 차기작 컨택에 성공했었다.
용구는 그런 내내 성우에 대한 원망을 잊지 않았다.
고작 차에 치여 죽는 장면 하나만을 남긴 배우.
그 외의 모든 장면을 말아먹은 배우.
그는 이미 유성우라는 이름 석 자가 불운의 낙인이 된 사람이었다.
하나 국장의 뜻은 변하지 않았다.
“왜, 유성우 요즘 잘하잖아.”
“그거야 그런데….”
연기력?
용구도 안다.
지금의 유성우는 용구와 함께 드라마를 찍었던 그 유성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