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급 배우가 상태창을 숨김 02권
폐급 배우가 상태창을 숨김 02권
폐급 배우가 상태창을 숨김
· 02 ·
© papapa
폐급 배우가 상태창을 숨김 02권
· 차례 ·
Chapter 01. S-
Chapter 02. 종영
Chapter 03. 결심
Chapter 04. 시상식
Chapter 05. 예능
Chapter 06. 연구
Chapter 07. 새 촬영
Chapter 08. 방영
Chapter 09. 결말
Chapter 10. 전속 모델
폐급 배우가 상태창을 숨김 02권
Chapter 01. S-
야음을 틈타 움직이던 살수들이 비명을 지른다.
관아의 무사들은 고함을 지르며 역도들을 잡아들이고 있었다.
한양의 밤이 이토록 밝게 타오르는 일이 있었던가?
횃불로 환히 밝혀진 거리는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밤의 흔적을 그리고 있었다.
그렇게나 소란스러운 한양 땅 어딘가.
이곳만은 마치 별세계라도 되는 듯 고요하고 적막하기만 했다.
양우는 검을 쥔 채로 낮게 말했다.
“끝일세.”
횃불에 전경이 드러난다.
고즈넉한 화실에는 온통 수묵화가 그려져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남자가 등을 보인 채로 붓을 놀리고 있었다.
우아하고, 정적이었다.
“이제 그만하지.”
양우의 말에 사내의 붓질이 멈춘다.
유려한 선의 미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싱긋 웃는 모습에서는 그 어떤 그늘도 보이지 않는다.
“이리되었습니까.”
“반역죄다.”
“그리 말하시겠습니까.”
“반역이 아니란 말이더냐?”
불빛에 일렁이는 안기우의 표정은 여전히 미소였다.
한데 그놈의 밤그림자가 문제일까.
저 표정이 미소로 보이지 않았다.
아주 진득하고 어두운 감정이 그늘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정적이 감돈다.
그저 앉은뱅이 화공일 뿐일진대 어찌하여 그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이 기백이란 무엇인가.
배다른 형이다.
소월의 스승이다.
양우에게 안기우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는 사랑으로서 그를 질투했고, 인간으로서 그를 동정했다.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는 그래서였다.
“…자네가 암수라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일세. 인명부를 내게 넘긴다면 조용히 살 수 있네. 소월이를 위해서라도 그리하시게.”
양우는 소월의 눈물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안기우가 모든 음모의 중심에 있음은 자신만 입 다물면 되는 일이다.
기반을 잃은 그는 이제 무엇도 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건넨 제안.
하나, 무용했다.
“…뿌리가 없다 하여 썩어 문드러져야만 하겠습니까.”
그의 언어에 공간을 장악하는 힘이 깃든다.
분명 조곤조곤한 말투일진대 짓씹는 듯한 어조로 들린다.
“날개가 없다 하여 하늘을 바라만 보아야겠습니까. 천지신명께서 그리하라 하시니, 저는 따라야만 하겠습니까.”
격정적이다.
그럼에도 정적이다.
그의 모든 언어는 그 삶이 쌓아온 증오이자, 타들어 가는 목마름이었다.
그 순간 양우는 직감했다.
이자에게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목을 치시지요. 비루한 최후일지언정, 굴복하지는 않을 터이니.”
그가 눈을 감았다.
양우는 짙은 고뇌와 망설임의 끝에서야 안기우의 목을 베었다.
촤악, 핏물이 흩뿌려졌다.
안기우가 쓰러졌다.
양우는 최후를 맞이한 그를 내려다봤다.
입맛이 씁쓸해졌다.
죽음을 맞이한 그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후련하고 평온해 보였기에.
돌아서는 양우의 뒤로, 안기우가 마지막으로 그렸던 날개 없는 새에는 흩뿌려진 피로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어느 무엇보다 붉고 생동감 넘치는 날개가.
* * *
『#Scene34.
·
·
·
…기우가 편안히 눈을 감는다.』
빙글빙글 연습실을 돌며 대본을 읽고 내용을 확인했다.
우소원은 새끼 오리처럼 내 뒤를 졸졸 따라 걸었다.
대본을 읽은 횟수가 10번이 넘었다.
내가 나오는 부분은 특히 두 배로 더 읽었다.
그 끝에서 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하란 건데?”
그러니까, 대본이 뒤지게 난해했다.
콩!
“아야.”
내가 갑자기 멈추자 우소원이 내 등에 머리를 박았다.
나는 이마를 문지르는 우소원에게 물었다.
“소원아.”
“응.”
“조곤조곤 말하면서 짓씹는 어조는 뭐지?”
“몰라.”
“격정적인 감정을 토해내는 데 정적인 건?”
“…몰라.”
그래, 천하의 우소원도 모른다.
이건 우소원조차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대본이었다.
다만 우소원이 이것을 내게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와 달랐다.
“그냥 하면 되는 건데.”
“그러니까 어떻게?”
“그냥.”
“…에휴, 말을 말자.”
머리가 아파왔다.
쪼그려 앉아 머리를 쥐어 싸맸다.
우소원이 내 머리카락을 쭉쭉 당겼으나 그런 것에 신경 쓸 정신도 없었다.
‘이게 S-급?’
A+이상이 있다는 게 증명됐지만, 전혀 좋은 소식이 아니다.
그럴 수밖에.
‘달라.’
액터 스테이터스가 이르는 기술 등급은 어디까지나 이것을 ‘개념적으로 명확히’ 규명하는 형태였다.
한데 S등급 단위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추상, 그리고 감각.’
한없이 추상에 가까운 묘사를 현실로 끄집어내는 것이 S급이다.
즉, 끄집어내야 할 건 캐릭터의 행동이나 언어가 아닌, 감정이었다.
‘그걸 어떻게 하는데?!’
차라리 우소원처럼 메소드로 연기하면 저 언저리의 감정을 토할 수 있겠지.
애초에 감정을 써서 연기를 하는 쪽이니까.
‘근데 난 그거 못한다고!’
내 연기는 모든 게 계산이다.
내 캐릭터 해석은 심리학 기반의 분석이고, 장면 해석은 ‘어떻게 보일지’에 관한 고민이고, 그걸 보조하는 게 액터 스테이터스란 말이다.
그런데 감정을 담으란다.
“미치겠네, 진짜…!”
울면 울고 웃으면 웃는 거지, 이놈의 대본이 이르는 말은 숫제 ‘울면서 웃어주세요’다.
아니, 그것보다 더 심하다.
울면서 웃는 거야 눈물 흘리면서 웃으면 되는 거지만, 이건 ‘눈물 흘리면서 눈물 참아주세요!’ 수준이다.
문득 원망이 차올랐다.
“아! 말숙이 누나!!!”
나한테 왜 이러는데!
무난하게 갈 수도 있던 거잖아!
하던 대로 가도 되는 거였잖아!
절망과 비탄에 빠져있길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