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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START UP!
좀비도 환생으로 쳐주나요 3권
우름 장편 소설
목차
챕터 8(2).
챕터 9.
챕터 10.
챕터 11.
챕터 12.
외전.
세상을 바꾸는 START UP!
챕터 8(2).
“비비! 아침부터 비비를 보다니 오늘 일진이 좋군요. 같이 앉아도 되죠?”
어제, 서선우와 말하느라 늦어진 탓에 방에는 이안이 먼저 돌아와 있었다.
험한 짓은 당하지 않았는지, 어떤 것들을 했는지 물었지만, 그는 좀체 속 시원히 말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 잠이나 자라며 이불을 뒤집어씌웠다.
그뿐이면 다시 대화를 시도했겠지만, 그가 이불 위로 날 결박하듯 꽉 안아 왔기에 말을 이을 수 없었던 게 패착이다. 그 답답한 듯 안전한 듯 묘한 얽매임에 잠시 기댄다는 게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려서.
“아니, 우리끼리 이야기하던 중인데요.”
이 쉘터는 햇빛이 지고 뜨는 것을 볼 수 없다 보니 잠도 어찌나 많이 잤는지. 일어났을 땐 다음 날 아침 배식 시간이었다.
이안을 졸졸 따라가며 다시 어제의 일을 알려 달라 조르는데, 갑자기 다가온 제이드가 눈치 없이 큰 목소리로 인사해 왔다.
얼마나 해맑은 인사였는지 내 조름에도 콧방귀만 뀌고 꿈적 않던 이안의 표정이 구겨졌을 정도다.
“하하! 이참에 룸메이트 친구도 소개해 주면 되죠!”
대놓고 쫓아내는 분위기 속에서도 제이드는 물러서지 않고 내 옆에 앉았다. 왠지 배식 홀의 웅성임이 조금 줄어든 것같이 느껴지는 건 착각인가.
“이미 누군지 알잖아요.”
“그래도 비비의 소개를 받고 싶은걸요.”
아니 그렇지만 이안이 소개받기 싫어하는 것 같은데. 저 사나운 눈길을 보고도 통성명을 하고 싶은 건가?
“뭐…. 그러면 간단하게 하죠. 이쪽은 이안, 이쪽은 제이드.”
“안녕하세요, 이안.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역시나. 제이드가 호기롭게 손을 내밀었지만 이안은 잡지 않았다. 이제 그만 가라. 난 실험에 대해서 이안하고 말하고 싶다고.
“말씀은 무슨, 뭣 같은 소문이나 들었겠지.”
하지만 의외로 이안이 제이드를 완전히 무시하지 않았던 탓에 대화가 이어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아직 많이 겪어 보진 않았지만 제이드 성격상 저렇게 말한다고 물러날 것 같지 않았다.
“전 뒤에서 하는 소문 같은 건 안 듣습니다. 제가 듣고 판단하죠.”
“흥.”
“들었다는 건 뒷소문이 아니라 비비가 직접 해 준 당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안 당신을 많이 좋아하나 보더라고요!”
고개를 모로 돌린 채 대놓고 제이드를 등지려던 이안의 고개가 내 쪽으로 휙 돌아온다. 아니 내가 딱히 서동요 기법으로 이안이랑 비비랑 사귄대요~ 말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새파란 눈으로 쏘아보는데.
그냥 제이드의 고백을 거절할 겸해서 말한 것뿐….
“당신 덕분에 어제 제가 차였거든요! 하하하!”
“…….”
“…….”
아 진짜, 첫눈에 반했다느니 보자마자 들이대더니 대화에 거침이 없는 사람이다. 이안이 삐딱하게 틀었던 자세를 완전히 제이드와 내 쪽으로 돌리며, 앞으로 몸을 살짝 숙인다.
고작 그 작은 자세로 위압감을 줄 수 있는 이안도, 그 기세를 나 몰라라 하하 웃고 있는 제이드도 놀라웠다.
끼이익-!
“알아.”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건지 알 수 없어 눈치만 보는데, 이안이 대뜸 제 옆의 빈 의자를 요란스레 잡아 끌어내며 제이드에게 짧게 답했다.
하지만 그 새파란 눈빛은 쭉 내게 고정된 채였기에, 나는 바로 그의 의도를 눈치챌 수 있었다.
“식판 좀 받아 줘요.”
안 그래도 벗어나고프던 찰나다. 나는 재빨리 반대편으로 내 식판을 밀고 일어서서 이안의 옆자리로 이동했다. 한순간에 우리의 맞은편에 덜렁 남게 된 제이드가 순간 벙 찐 표정을 한다.
하지만 이내 쾌활한 웃음을 회복했다.
“와, 비비. 제 이야길 했어요? 그래도 고백이 효과가 전혀 없진 않았네요.”
이야, 이걸 이렇게 받아넘기네. 긍정왕이 따로 없어. 그러니까 이 좀비 세계관에서도 밝은 웃음을 유지하는 거겠지.
“전혀 없는데요. 전 이안이 좋다고요.”
“그렇지만 이안이랑 사귀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따지자면 그렇긴 한데….”
“에이, 비비. 실연의 슬픔은 실연한 자가 제일 잘 알아요.”
아니 이안도 나한테 마음이 있어 보인다고 말할 수도 없고! 평소 둘만 남으면 마음껏 말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안의 의사를 남 앞에서 넘겨짚어 말하긴 좀 그렇다 보니 의도치 않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사귀지만 않을 뿐이지 분명 우리 사이에 뭔가가 있는데.
남 앞에선 뭐라고 딱 정의할 말이 없구나 싶어 괜히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내렸다. 그런데 갑자기 다가온 큰 손이 내 입을 턱 막듯이 누른다.
“오리 같은 입 집어넣어.”
“치….”
이안의 손이었다. 아직은 이 남자가 내 것이다! 소리칠 수 없다는 사실조차 짜증 나는데 왜 표정까지 관리하고 그런담. 내가 더 삐죽 입을 내밀자 이안은 쭉 펼친 손바닥으로 아예 내 얼굴을 가려 버렸다.
왜. 내가 이러는 게 부끄러워?
“이안.”
“뭐.”
“내가 당신 좋아하는 거 알죠?”
“…알지.”
이안의 시선이 아주 잠깐 제이드 쪽으로 향했다가 돌아온다. 방금 좀 뿌듯해 보였던 것 같은데 착각인가.
나는 그대로 이안의 옆구리에 팔을 쏙 넣어 엉겨 붙으며 최대한 예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그러면 저랑 이 자리에서 당장 사귈 생각 없어요?”
“와, 비비. 이렇게 나오기예요?”
“…….”
당황한 듯 침묵하는 이안 사이로 흑흑 과장된 가짜 울음소리를 낸 제이드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오로지 이안에게만 매달려 그를 바라보는데, 그의 목울대가 티가 나게 꿀꺽 넘어가는 것이 보였다. 귀여워라.
“나는….”
“크하하하! 이 자리가 제일 핫하구먼!”
그 순간, 누군가가 테이블 위를 쾅! 내려치며 이목을 끌었다. 진짜 육성으로 욕 나올 뻔했네. 그냥 지나갈 것이지 왜 끼어들고 난리야?
“쉘터장님!”
“나도 좀 앉지! 다들 이쪽만 바라보고 있길래 무슨 일이라도 터졌나 했는데 사랑싸움이었구먼!”
갑작스레 등장한 해럴드가 내가 박차고 나온 제이드의 옆자리를 꿰찼다. 동시에 은근슬쩍 우리의 이야기를 엿듣거나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도 샤샤샥 사라지는 게 느껴진다.
나야 이런 소문은 다 퍼져도 상관없는데. 물론 제이드랑 얽히는 것 말고 내가 이안한테 침 발라 놨다는 것 말이다.
“사랑, 좋지! 이 팍팍한 쉘터 속에서 좋은 소식이구먼!”
“아니 쉘터장님. 좋은 소식이라뇨. 전 비비한테 두 번이나 차였다고요.”
“들어 보니 골키퍼 없는 싸움이던데 남자가 고작 두 번 가지고 그러나? 하하하!”
“물론 제가 포기한단 말은 아니고요.”
쿵짝이 잘도 맞네. 진짜 보기 싫다.
“잘 어울려 보이는데 두 분이 사귀시죠?”
“예? 비비는 장난도 귀엽군요.”
“장난 아닌데요. 저희는 올라가 볼 테니 두 분 좋은 시간 보내세요.”
이렇게 말해 놓고 이안이 날 따라 일어나 주지 않으면 완전히 망한 건데.
하지만 다행히 이안은 내가 이끄는 대로 몸을 일으켜 줬다. 좋았어. 둘만의 공간으로 가자. 오늘 아침은 너무 늦게 일어나기도 했고 식판 가져왔다 돌려 놓기도 귀찮아서 그냥 홀에서 얼른 해결하려고 한 건데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지.
“둘 다 새 모이만큼 먹은 것 같은데 더 먹으면서 이야기하지 않겠나?”
“됐어요.”
“이런, 어제 분위기가 워낙 살풍경해서 같이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올라갈까 싶었는데 아쉽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돌아보려는데 이안이 내 어깨를 잡아 다시 돌려세운다.
하지만 우리의 행동보다 해럴드가 말하는 게 더 빨랐다.
“2차 임상도 슬슬 시작해야 하니 한 번 더 연구실로 와 달라고 하더군. 다만 이번엔 비비도 함께 말이야.”
“…백신 확인이나 2차 임상에 비비가 왜 필요해.”
“글쎄, 나야 그런 쪽으론 문외한이니 뭘 아나? 하지만 서선우가 말하기론 백신 개발 자체가 비비를 통해 이루어진 거라고 하던데 그러면 당연히 그녀가 필요하겠지.”
“와, 비비. 멋지네요.”
눈치 없이 끼어드는 제이드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내 어깨를 꽉 잡아 오는 이안의 손등을 토닥였다. 왜 말 안 해 주나 했더니 어제 연구실에 있던 내내 날 데려오라고 시달렸나 보구나.
“비비가 없어도 서선우와 연구원들이 알아서 이후의 일을 처리할 거야. 그보다 경비 강화와 좀비에 대해 말할 것이 있으니, 자리를 이동하는 게 좋겠군.”
변이 좀비에 대해 말할 생각인가? 꼭 필요한 이야기긴 하지.
더욱이 이안은 이 이야기를 빌미로 해럴드를 다른 쪽으로 유인한 후 나를 먼저 방으로 내려보내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해럴드가 생긴 것과는 달리 이런 수작에 넘어가는 작자가 아니었다는 거다.
“그래. 그럼 나도 실험실에 가도록 하지. 물론 자네 여자 친구도 함께.”
음흉한 눈빛이 날 훑자 이 상황을 관망하던 제이드조차 살짝 굳어지는 게 보인다.
“아. 고백을 거절했으니 여자 친구는 아니겠군. 불쌍한 비비. 울지는 말게나.”
저 눈깔을 확 찔러 버리면 소원이 없겠네.
“뭐야? 사람 불러 놓고 자리에도 없네.”
연구실로 오는 동안 의외로 해럴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쉘터에서 지내는 건 어떤지, 음식은 잘 먹고 있는지 등 상투적인 질문을 두어 번 던졌을 뿐 그마저도 단답이 돌아오자 같이 입을 다문 것이다. 이 불편한 침묵에도 끝이 있었다는 게 다행이다.
“어, 이안. 비비!”
“단테.”
문을 열고 들어가자 확실히 이전 쉘터와는 다른 낯선 연구실이 펼쳐졌다. 단테에게 인사하는 척하며 빠르게 눈을 굴려 주위를 살펴보니 연구원들의 얼굴들이 하나같이 익숙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해럴드의 쉘터 사람이 연구 중간에 동참하거나 그런 건 아닌가 보구나. 그럴 만한 인재가 아예 없었거나. 그렇다면 서선우와 공생을 받아들인 것도 이해가 된다.
어느 정도 안정성을 갖추고 먹고살 만해지니까 명성과 권력이 탐나지 않았을까. 그러던 차에 백신을 개발할 수 있는 서선우가 연락해 왔을 것이고.
“백신 경과 보러 온 거예요?”
“아뇨. 이안한테 정말 후유증이 없나 직접 듣고 싶기도 하고… 거기다 절 불렀다면서요.”
나와 이안이 들어옴과 동시에 은근하게 우리를 바라봐 오는 연구원들의 시선을 느끼며 단테하고만 대화를 나눴다. 사실 서선우처럼 직접적으로 심한 실험을 한 연구원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저들이 서선우의 아랫사람들이란 걸 생각하니 마냥 편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그들이 인류의 회복에 지대한 공헌을 할 영웅들이라는 사실에서 오는 괴리감 역시 그저 좋을 수만은 없었다.
“예? 비비를요? 이안은 불러 달라고 한 건 맞지만 비비까지 올 필욘 없었어요.”
“선우가 이 아가씨까지 데려오라고 하던걸? 선우는 어딨나?”
단테의 의문 어린 표정을 보자마자 해럴드 쪽으로 몸을 휙 돌리자, 그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의뭉스러운 자식.
“아, 잠깐 쉬러 갔었는데 곧 올 겁니다. 시간이 거의 다 됐어요. 비비, 온 김에 이것 볼래요? 이안을 많이 걱정했잖아요. 경과가 아주 좋아요. 아무런 후유증도 없이 깨끗해서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한 더 이상은…”
“그만. 비비 먼저 내려가.”
단테는 이 상황의 묘함을 눈치채지 못한 듯 내게 이안의 기록지 같은 걸 들고 오며 보여 주려 했고, 나는 홀린 듯이 그 자료를 받아 들 뻔했다가 가로막혔다.
이안의 단호한 행동에 정신을 차린 나도 불필요한 장소에 내가 머물 필요 없다는 걸 깨닫고 문 쪽으로 향했지만, 해럴드가 막아서며 웃어 보인다.
“선우가 곧 온다는데 두 번 오락가락 고생하지 말고 그냥 기다리지 그래? 같이 오라고 했다니까?”
“문 막지 말고 비켜요.”
“아니 해도 너무하는군. 이렇게 대놓고 사람 말을 무시하고 거짓말로 몰아도 되나? 내가 나름 당신들 머물 곳, 먹을 곳 제공하는 사람인데 말이야.”
“뭐 토해 드려요? 비키라고요.”
이안이 무력행사를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단호하게 요구하며 시선을 맞췄다. 능글맞게 웃는 척하던 해럴드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위압적으로 날 내려다보았지만, 이 정도에 졸 내가 아니다.
그를 밀어낼 기세로 성큼성큼 다가가는 나와 꿈적도 하지 않는 해럴드로 인해 날카로운 분위기가 형성되는 순간, 문이 열렸다.
“문 막지 말고 비키지.”
“아, 선우! 이런, 들어오게 들어와.”
더 빨리 행동했어야 하는데. 절대로 비켜서지 않을 듯 서 있던 해럴드는 반색하며 문밖의 서선우를 안으로 들였다. 빌어먹을 문. 연구실 문이 또다시 탁 닫힌다.
“내가 쉬고 온다고 다들 쉬라고 한 기억은 없는데 말이지.”
서선우가 중앙으로 걸어 들어오며 차갑게 내뱉은 말에 연구원들이 허둥지둥하며 하던 일을 재개했다. 무표정하게 다가온 그는 나와 이안, 단테가 서 있는 곳에 와서야 멈춰 섰다.
“난 왜 불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