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세상을 바꾸는 START UP!
좀비도 환생으로 쳐주나요 2권
우름 장편 소설
목차
챕터 4(2).
챕터 5.
챕터 6.
챕터 7.
챕터 8(1).
세상을 바꾸는 START UP!
챕터 4(2).
“…….”
정답인 듯 대답이 없다. 그들은 입만 꾹 다문 채 완벽하게 나를 에워쌌다. 가장 앞에 선 연구원이 하얀 가운 소매를 걷어 팔을 내민다.
“……아프지 않게 물어 주세요.”
“하!”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코웃음을 쳤지만 내 목소리도 공포로 떨리는 게 느껴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건 피카X 고문보다 더 최악이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상황이다.
난 이 세계에 빙의될 때부터 이성이 있는 감염자였다. 타액이 상처로 튀는 것 등만 조심한다면 누군가를 감염시킬 일은 없을 거로 생각했다. 아니, 애초에 생각한 적도 없다. 내가 그럴 의지가 없으니까!
“물기 싫으시면 피를 주시든가요.”
“참 당당하네.”
“……다음 실험이 시작되기 전에 끝내고 싶어요. 최대한 비비 님의 편의를 봐준 건데 해 주지 않으신다면…… 강제적인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 호칭부터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어야 했다.
비비 ‘님’이라니 웃기지도 않아.
“다가오지 마…… 잡지 마! 놔!”
“입부터 막아요. 소란 피우면 큰일 나니까. 피는 다른 데서 내면 돼요.”
“대체 왜 이러는…… 큽, 읍!”
천 같은 것이 우악스럽게 입안으로 욱여넣어진 것과 동시에 내 몸도 바닥으로 짓눌렸다.
발버둥을 치고 있는데도 실감이 안 될 정도로 나는 꿈쩍도 할 수 없었다. 그만큼 거센 힘으로 네 명의 남자들이 내 사지를 누르고, 작은 메스를 꺼낸 연구원이 다가와 무릎을 꿇는다.
“더 이상 이렇게 갇혀서 기약도 없는 미래를 기대하며 공포에 떨기 싫어요.”
“으읍!”
“차라리. 차라리 좀비가 되는 게 더 낫겠다고요. 이런 세상에 인간으로 살아가는 건 지옥이야!”
연구원의 목소리가 히스테릭하게 높아진다. 있는 힘껏 고개를 돌려 봤자 보이는 건 맛이 간 듯한 눈빛의 남자들뿐이다. 다들 그녀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이 번질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운이 좋으면 비비 님처럼 이성이 있는 감염자가 될 테고, 운이 나빠 그냥 감염자가 된다 해도……. 지금보다는 편할 거예요.”
그게 무슨 미친 소리냐고! 두려움을 견딜 수 없어서 이성을 송두리째 포기한다는 경악스러운 말에 동조하는 이들이 무섭다. 나를 통해 감염자가 되려고 하는 비감염자들.
사악-
“흐읍……!”
통증은 못 느낀다. 하지만 너무도 서늘한 감각이었다. 이 상황 때문일까? 공포에 질렸기 때문일까? 연구원이 들고 있던 메스로 내 손바닥을 길게 그어 상처를 내는 게 소름 끼치도록 분명하게 다가왔다.
“어떡하지? 우리도. 상처를 내야 하나? 내 상처에 저 피를 뿌리면 되는 거 아냐?”
“마지막 고통이라고 생각하면 까짓것.”
이 와중에 토론하는 그들의 말에 놀라 재빨리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깊게 베었는지 핏물은 속절없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 흐른다.
“으으읍! 읍!”
그리고 그 순간, 목표에 정신이 나가기라도 했는지 내가 협조해 줄 거라고 여긴 건지 문도 닫지 않고 들어온 이들 덕분에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오는 게 들렸다. 이안인가? 이안이 돌아왔나? 아직 다른 사람들은 정신이 없어서 눈치 못 챈 것 같으니 얼른 이 미친 짓을 멈추게 해야…….
“…….”
“읍-!!”
“왜 이리 갑자기?! 좀 제대로 눌러! 문도 좀 닫고!”
그러나 마주친 건 다정한 푸른 눈이 아닌 서늘한 검은 눈이었다. 그래도 형제랍시고 몹시도 이안을 닮은 그 얼굴이 문 너머로 언뜻 보였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경악 어린 내 발버둥에 수상함을 느낀 이들이 뒤늦게 등 뒤를 돌아보며 열린 문을 주시했지만 이미 서선우는 인기척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환영이라도 본 건가? 이 상황을 보고도 외면했다고?
“그냥 핥아! 점막 접촉이면 상관없을 거야! 핥아서 먹어!”
그사이 완전히 미쳐 버린 듯한 이들이 내 주먹 쥔 손을 먼저 채 가겠다고 흔들어 댔다. 그러곤 허공으로 튀는 핏방울을 먹기 위해 허겁지겁 입을 벌린다. 이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지옥 같은 날들도 끝이야! 걱정 없이 쉘터 밖으로 나갈 수 있어!”
그러다 한 명이 아예 내 손을 억지로 펴 열렬한 구애라도 하듯 손바닥에 입을 맞춘다. 양껏 마셨다고 생각했는지 미친 듯이 웃으며 자신의 변화를 기다리는 동료를 보며, 다른 넷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악몽이다.
“아하, 아하하!”
“이봐, 감염까진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 걸리기 전에 쉘터를 나가야 해!”
미친 듯이 웃고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도 이성을 챙긴 이가 있긴 했다. 물론 그래 봤자 입가를 내가 흘린 피로 칠갑했지만. 흥분에 씨근덕거리는 숨으로 어깨까지 들썩이기 시작한 연구원이 자기 몸 이곳저곳을 살피며 답한다.
“얼마 안 걸려. 통계대로라면 완벽히 감염되기까지 넉넉잡아도 5분이 안 되니까 그냥 지금 바로 빠져나가는 게 좋겠…….”
“웃기지 마!”
남자는 잔뜩 흥분한 탓에 날 잊어버린 듯 뒤돌아섰다. 그 틈을 노려 남자의 허리춤에서 총을 빼앗아 겨누며 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순간 멍하게 멈춰 선 이들 덕분에 우리의 위치는 금방 역전되어 내가 그들을 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형국이 되긴 했지만……. 수적으로 불리하다는 게 걱정되었다.
“당신들은 여기서 못 나가.”
그러나 걱정을 따질 때가 아니다.
“애초에 감염을 원하면 밖으로 나갔어도 되는데 나한테 온 걸 보면 죽을 위험까지는 감수하기 싫은가 보지?”
“……비비 님.”
그들의 안광이 또 질척하게 내려앉는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내가 만든 감염자들을 세상에 풀어놓을 순 없어.
“전에도 봐서 알겠지만 난 감염자는 안 봐줘. 당신들이 나가려고 한다면…… 죽일 거야.”
이 사람들이 나처럼 이성을 지닌 감염자가 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밖에는 좀비들만 있는 게 아니라 숨어 있는 비감염자들도 있었기에 오히려 더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또 다른 변이 좀비가 될지 모른다.
“비비 님. 비비. 당신을 처음 봤을 땐 무서웠고, 실험을 시작하면서는 불쌍해 보였지만, 어느 순간부턴 부러워지기 시작했어요.”
“나오지 마. 쏜다고 했어.”
탕-
제발 이 총소리를 듣고 누구라도 왔으면 좋겠다. 내 피로 감염되려 했던 만큼 죽음이나 고통에 대한 공포는 큰지 바닥을 쏜 총에 멈춰 서긴 했지만, 저들을 오래 막을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러다 문뜩……. 불공평하단 생각도 들더라고요? 누구는 밖에도 못 나가고 가족도 못 찾으러 가는데. 실험하면서 장갑에 구멍이라도 날까 봐 공포로 머리가 다 빠질 지경이었다고요.”
탕- 탕-
개소리는 들어 줄 필요 없다. 나는 입구로 다가오는 다른 사람들의 발치에 총을 연달아 쏘았다. 하지만 움직이려는 사람 수는 다섯이고, 연타를 할 만큼 내 실력이 좋진 않았다.
그냥 다리나 발 정도는 맞힐 생각으로 쏴야 하나?
“그런데 당신은 두려워하는 게 없어. 좀비에게 공격받을지 모른다는 공포도 없고, 식량과 물자를 구하는 데 자유로우니 쉘터의 서선우 씨에게 복종하지 않아도 되고.”
“그게 부러워서 감염자가 되었다는 소리라면 듣고 싶지 않은데.”
누구는 낫고 싶어서 가혹 행위에 가까운 백신 실험에도 군말 없이 참여하고 있는데.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이러고 사느니 좀비로 사는 게 낫겠단 생각은 그전부터 했어요. 당신이 기폭제가 되었을 뿐이고…… 비비. 당신한테 악감정은 없지만.”
“뭣……!”
키득거리며 웃는 연구원의 양옆에서 튀어나오듯 달려온 남자 둘이 내 팔을 잡아 총을 뺏는다. 방심하진 않았다. 긴장하고 있었음에도 저들이 빨랐을 뿐.
이만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저 좀비가 되고 싶다고?
“한 번쯤은 당신한테도 공포를 느끼게 해 줘도 좋을 것 같아요. 그래도 나름 연구원이었으니까 궁금한 것도 있고요.”
“놔!”
“이쯤이면 저도 감염이 진행되고 있겠죠? 제가 지금 당신을 물면 어떨까요? 재감염이나 변이가 이루어질지, 이미 바이러스 항체가 있어서 소용없을지 궁금하지 않아요?”
“미친, 이 쉘터 연구원은 다 매드 사이언티스트뿐이야?!”
말하는 투만 봐선 서선우에게 복종했던 나날들이 분했던 것 같은데 저 매드사이언티스트 기질은 똑 닮았다. 밑에서 일하면서 저 이상한 호기심이 옮기라도 한 건가.
“놓으라고…… 했어!”
“억!”
결국은 허리를 최대한 뒤틀어 옆 남자의 고간을 가격했다. 한 놈만 노린단 심정이었는데 고꾸라지는 옆 남자를 보며 내 반대편 손을 잡고 있던 남자도 움찔한 덕에 재빨리 뿌리치고 물러설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방 밖으로 나와 버렸고 총도…….
터억-
“이건 또 뭐야.”
“이안!”
분명히 연구원 일행을 방에 두고 나왔음에도 등 뒤로 누군가의 몸이 닿았다. 파다닥 놀라 떨어지려 하던 내 어깨가 꽉 붙들렸다. 그리고 눈물겹도록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잔뜩 화가 나서 그르렁거리는 것조차 반갑다.
“씨X, 손이 왜 이래? 저 새끼들은……. 하.”
설명조차 필요 없었다.
얼마나 깊게 베였는지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내 손바닥을 본 이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곧이어 방 안의 사람들을 노려본 그는 그자들이 하나같이 입가에 피 칠갑을 하고 있는 걸 보고 기가 막힌단 듯 웃었다.
“미안해요. 못 막았어요. 이미 감염이 진행되고 있을…….”
“네가? 네가 뭐가 미안해. 저놈들이. 미친 거지!”
빠악!! 퍽!
“끄억……!”
“컥.”
아까 남자들이 날 잡으러 튀어나오던 속도와는 비교가 안 된다. 단숨에 앞으로 뛰어든 이안이 내 발차기의 통증에서 벗어나 간신히 일어나는 중이던 남자의 고간을 다시 걷어차고, 멍하니 옆에 서 있던 다른 남자의 면상을 날렸다.
나는 펀치 한 방에 사람의 치아가 빠지는 장면이 만화로만 가능한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감염 증상 보이려면 먼 것 같은데!”
퍽. 퍼억!
“미친것들은 그 전에 다 잡아 족치면 그만이야!”
총도 필요 없었다. 그냥 맨손으로 단번에 다섯을 때려잡은 이안이 고통에 쓰러진 사람들을 쓰레기 몰듯이 방 한쪽으로 몰아넣고 두리번거렸다.
“이안, 이거요!”
나는 이안의 침대를 덮었던 얇디얇은 이불을 내 것이라도 되는 양 찢어서 끝을 묶어 건넸다. 뭐라고 하면 나중에 내 이불 주지 뭐.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것들이 미치긴 단단히도 미쳐서……. 하, 죽으라고 물자 사다 날랐더니. 좀비가 되려고 해? 니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건 내 덕이거든?”
“끄으으…….”
뻐억-
“아프냐? 시X, 아플 때 많이 맞아 둬라! 아직 감염 진행되려면 멀었네! 비비, 거기 잡고 굴려.”
급조된 이불 로프에 다섯 사람이 돌돌 말려 묶인다. 연구원이 누렇게 뜬 얼굴로 동공을 떨며 나를 바라봤다.
“왜, 왜……? 5분이 지났을 텐데……! 덜 먹었나?”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나는 흘릴 수 없는 투명한 눈물로 일렁이는 눈동자가 다시 공포를 담고 내 손바닥에서 흐르는 피를 바라봤다.
“제기랄! 이게 뭐야! 감염은 언제 되는……. 끄억. 억.”
“넌 더 맞아라.”
결국 치아가 털리고도 입을 놀린 죄를 진 남자가 기절하고 나서야 나머지 넷이 조용해졌다. 그들은 이안의 등장과는 별개로, 늦어지는 감염에 뭔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듯했다.
“하아…….”
그리고 복도 저 멀리서, 사람들이 내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내 다음 타임 실험 때문에 데리러 오는 건지, 이 사달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한시름 놓은 듯해서 주저앉아 숨을 내뱉었다.
산발이 된 머리를 쓸어 올리는 손이 벌벌 떨리는 게 내 눈에도 보인다.
“……비비. 너 손.”
“아.”
맞다, 나 아직 손에서 피 나지. 머리카락 피로 떡졌겠네.
“미안해.”
“미안해요……. 예?”
도대체 난 이안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뭔가. 너무 그에게 기대고만 있는 것은 아닌가 자괴감이 드는데, 사과의 말이 겹쳤다.
“네가 왜?”
“이안이 왜요?”
또 겹쳤다. 이안이 장난하지 말라는 듯 험악한 시선으로 쏘아 보며 방구석의 치료 상자에서 붕대와 지혈제를 꺼내 들었다.
“아. 가까이 오지 마요. 제가 할 테니까 만지지 마요. …… 감염자를 늘리고 싶진 않거든요.”
일단 저 사람들이 바깥을 돌아다니게 두는 건 막았지만, 내가 내 피로 감염자를 만들게 된 건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