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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START UP!
좀비도 환생으로 쳐주나요 1권
우름 장편 소설
목차
챕터 1.
챕터 2.
챕터 3.
챕터 4(1).
세상을 바꾸는 START UP!
챕터 1.
“으으…….”
이 목소리 뭐야?
“끅. 흑.”
코피가 멈추질 않아서 잠깐 눈 감고 쉰다는 게 아예 잠들어 버린 것 같은데 큰일이다. 사람들 오기 전에 일어나서 세수라도 해야 하는데.
“좀, 움, 직……여라…….”
신입의 의욕이 과해 과로를 한 건 사실이지만 이 좀비 같은 목소린 너무 심한데. 오늘은 아아메 대신 따뜻한 걸 좀 마셔야겠다.
“큼. 크흠. 아직 새,벽……인, 가하.”
완전히 가 버린 목소리를 풀기 위해 혼잣말하며 무거운 코 밑을 훔쳤다. 현기증에 시야가 돌아오지 않은 건지 아직 해가 뜨지 않은 건지 어둑한 가운데 가루처럼 부스러져 떨어지는 코피가 느껴졌다.
“윽. 더,러……. 어억!”
쿠당탕!!
심각하네, 진짜. 아직 시야가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지만 이 꼴을 누가 볼까 무서워 앞을 더듬으며 움직였다. 하지만 익숙하게 만져져야 할 내 책상과 파티션 대신 허공을 갈랐고, 다리에 뭔가 걸려 바닥을 굴렀다.
잠이 덜 깼나. 제대로 구른 것 같은데 하나도 안 아프…….
“으아악!”
서류철이라도 떨어뜨렸었나 싶어 본 바닥엔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아직도 시야가 불분명함에도 끔찍한 모습이 확연하다.
“악! 사, 사람, 살…… 케헥. 켁! 살려 줘!”
정신없이 뛰쳐나가려는데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앞뒤 볼 것 없이 네발로 기며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는데 누군가의 다리가 앞을 가로막는다. 살았…….
“악!! 악, 뭐,야!!”
사람이 네발로 발발 도망갈 뿐만 아니라, 지척에 시체까지 있는데 왜 구경만 하는 건가 싶었다. 공포에 질린 와중에도 짜증을 담아 위를 바라보자, 입가에 피를 잔뜩 묻힌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 차릴 틈도 없이 내 주변을 둘러싸는 다리가 더 많아진다. 본능적으로 ‘이것’들이 내 비명에 모여들고 있음을 깨닫고 숨을 죽인 채 몸을 납작 엎드리고 기었다.
“……욱……우웩.”
‘그것’들은 날 쳐다볼 뿐 공격하려 들진 않았다. 회사 사무실이 아닌 게 분명한 낯선 공간의 출구를 향해 열심히 기어 나가자마자 참고 있던 구역질이 쏟아졌다.
일어서려 해도 다리가 자꾸만 풀린다.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질질 끌고, 중간에 또 토하고를 반복하며 1층에 도달했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가서……!
“어?”
그리고, 힘들게 도착한 건물 1층의 커다란 거울에서 정신을 차린 후 처음으로 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좀비?”
‘그것’들이 왜 나에게 관심이 없는지 알 것 같다.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고 핏발과 핏줄이 선 내 모습 역시 그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 * *
“자,고 일……어났더, 니 좀비,로 빙의한 썰 푼다.”
누가 봐도 흥미로운 서두였지만 누구의 주목도 끌지 못했다. 듣는 이가 같은 좀비들뿐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나와 달리 이성이 없어 보였다.
“이, 크흠. 상하다…… 빙의한 게 맞,는데.”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어 건물 밖으로 나가 봤다가 현실에는 없는 소설 속 기업명을 보고 깨달았다. 이곳이 유명한 아포칼립스 현판소 안이라는 걸.
현실의 난 정말로 과로사한 걸까? 그리고 소설 <좀비물에 도덕은 필요 없어!>에 환생한 거고?
“좀,비로 빙의한 것도 환……생이 맞나.”
어쩐지 말이 잘 안 나오더라. 아니지. 말이 나오는 게 더 신기하다.
왜 난 이성도 있고 말도 할 수 있지?
좀.도.필 속 좀비들은 죽은 후 좀비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려 이성을 잃고 피와 살점을 갈구하며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뿐이다.
클리셰처럼 타액과 피로 감염되긴 하지만, 여타의 좀비 영화와는 다르게 꼭 머리를 쏘지 않아도 죽는 ‘일반 사람’이다. 그렇기에 이성을 잃는다는 것과 굵게 돋은 혈관 등이 비 감염인과의 구분점이었다.
“에휴…….”
처음엔 내 모습을 보고 좀 다친 것뿐이지, 감염이 안 된 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손등이나 눈가에 굵게 돋다 못해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혈관이나 새하얗게 질린 안색은 누가 봐도 감염인이다. 무엇보다 다른 감염인들이 날 공격하지 않는 게 제일 큰 증거였다.
그들은 이미 감염된 피와 살점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이성, 이 있,고 말이…… 나, 오냐고!”
“그래서 싫어?”
“그건 아니…… 뭐?!”
애초에 과로사할 만큼 바쁜 사회 초년생이 유명 소설이고 뭐고 볼 틈이 어디 있었겠는가.
회사 사람들하고 너무 대화가 안 통해서 X튜브로 영화 스토리 요약 숏츠를 본 게 다였다. 아는 거라곤 큰 줄기 정도뿐.
답답함에 앉아 있던 무너진 건물 잔해를 두드리며 일어서는데 뒤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굴 보니 좀비 맞네? 통증도 못 느끼는 것 같고.”
놀라서 돌아보니 무장을 한 남자가 내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총 끝에 이상한 게 달렸는데, 소음기인가? 남자의 뒤편으로 아까 전 내 주변을 무심히 스쳐 지나가던 좀비들이 죽어 널브러진 게 보였다.
그의 시선이 건물 잔해를 내리치느라 찢어진 내 손으로 향했다가, 얼굴로 올라온다.
“게다가 말도 하고, 이성도 있고?”
“……초, 총…… 내리고 말, 해요. 좀비 아니에…… 우웨엑.”
그래도 변명은 해 보려 했지만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내장까지 다 토할 듯한 핏덩이를 쏟아 내자 침묵이 감돌았다.
나는 멋쩍게 입가를 닦으며 남자, 아마도 이 세계의 주인공인 이안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이 건물 이안이 종종 찾아오는 도피처 같은 곳이라 내가 간판 보자마자 현실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
“그 꼴을 하고선 좀비가 아니라는 말이 잘도 나오는군.”
“아,니니까, 잘도 말, 하죠.”
“목소리가 조금만 덜 쉬었어도 고민해 볼 텐데 말이야. 아무리 자기 피라지만 비리지도 않나 봐?”
“퉤퉤.”
아, 쓰읍. 그러고 보니 보통 사람이라면 구역질만 해도 자기 토사물을 뱉어 내기 바빴을 텐데 나는 핏덩이를 토하고도 남은 걸 계속 삼키고 있었구나.
총 대가리를 피해 슬쩍 몸을 틀며 침을 뱉는 척하고,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살려 주,세,효.”
“흥미롭긴 한데, 굳이?”
코웃음을 치는 남자의 얼굴이 음산하게 무너진 아포칼립스 세계 속에서도 빛이 난다. 자식. 주인공이라고 얼굴 잘난 거 봐라.
“식량 구할 때 모, 몸빵으로?”
“편하긴 하겠군. 하지만 그거론 부족해. 괜히 편한 길 택하려 들다 감염되는 사람들 본 게 한두 번이 아니거든.”
이안이 날 살피는 동안, 나도 이안을 천천히 살폈다.
X튜브 숏츠의 시작은 갑작스러운 좀비 사태에도 빠르게 적응한 이안이 집을 탈출하는 장면이었다.
탈출하여 방황하던 그가 제약 회사를 운영하던 이복형이 그 자리에 쉘터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형과 부모님을 확인하러 가는 것이 중간쯤이다.
그렇다면 내가 아는 내용을 이용해서 그에게 빌붙는 게 낫지 않을까?
“쉘터 연,구에…… 도움,이 될, 거에요.”
“……!”
이안의 형이 오너로 있는 제약 회사는 좀비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어 내는 곳이자 바깥과 달리 시설이 최대한 보존된 곳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보단 좀비 백신도 개발하고 기본 시설까지 갖춰진 곳이 좀 더 빨리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겠지?
“어차피 좀,비 실험체 잡, 켁, 아가잖아요.”
“……좀비들 사이에도 소문이 나나 보지? 네 동료들이 나에 대해 뭐라고 캑캑거리던가?”
철컥.
내 말에 이안은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더니, 겨냥만 하고 있던 총에 장전을 하고 나를 위협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여유로운 척을 그만두고 진짜 경계를 한다는 데서 오히려 내 무리수가 먹혀들어 갔음을 깨달았다.
“이성이 있는 좀비가 더 실험, 하기 좋, 지 않겠어, 요?”
참고로, 좀.도.필이 영화화될 정도로 흥한 이유는 갑작스러운 좀비 사태에도 머뭇거림 없이 시원한 액션과 탈출을 보여 준 이안의 활약 때문도 있지만.
“당, 신 형님도 더 좋,아할, 거예요.”
액션이야 초반 화제를 이끈 견인차 구실을 했을 뿐, 다른 흥행 요소는 주인공과 이복형의 미쳐 버린 관계에 있다.
말하자면 물밑에서 패러디로 형제의 애증 서사가 흥했다는 것.
“그러……니 나,를 쉘터,에 데려다줘,요.”
지금으로선 치료제를 개발해 줄 연구소는 선한 제약의 쉘터뿐이다.
그리고 이안은 고압적이며 냉혹한 이복형을 미워하면서도 하나 남은 핏줄을 버리지 못해 그의 변견 노릇을 하고 있고.
……뭐가 더 있었던 듯도 한데 하필 형제의 과거 회상 부분에서 졸았더니 확실친 않다. 부모님이 어떻게 되었더라?
아니 뭐, 이복형제의 서사가 다 거기서 거기겠지.
중요한 건 이안이 쉘터에서 일하고 있다는 거고, 그의 형은 체력적으로 우수한 이복동생을 이용해 연구를 진행하고 쉘터 보호를 하고 있다는 거다.
물론 갈수록 도덕심을 버린 탓에 연구를 돕던 이안이 심적으로 무너지며 관계가 파탄나지만. 그건 극후반부의 일이니까.
“너……. 정체가 뭐야.”
찡긋. 복잡한 생각을 미뤄 두고 경련이 일어나는 눈 한쪽을 감아 윙크를 날렸다. 아무리 그래도 초면인 여자 뒤통수에 총을 겨누고 말이야.
“내 이,름은 영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던데, 나는 좀비 밭을 굴러도 살고 싶었다. 하지만 최소한 사람으로 굴러야 살 만하지 않을까?
이안과 같이 좀비 몰이 몸빵도 해 주고 연구에 피도 좀 제공하면 백신 다음에 만들어질 치료제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기필코 이 형제 버스에 탑승해야 한다.
“좀비죠.”
* * *
“어이, 비비. 더 빨리 못 걸어?”
“억!”
“통증도 없으면서 엄살은.”
내가 빙의한 소설의 제목은 <좀비물에 도덕은 필요 없어!>다.
알고 보면 역설적인 제목이었지만 이안의 시점에서 과격하게 진행되던 초중반부까진 그는 외강내강을 넘어서 인성 터진 불도저처럼 나왔다.
사실은 개복치처럼 여린 내면을 숨기려던 가시 같은 것이었지만…….
만화 명대사 흉내 한번 낸 죄로 손목을 묶여 노예처럼 끌려가고 있자니 여린 사람이라는 의견이 가짜 아닐까 싶어진다.
“그 표정은 뭐야. 재갈까지 물려 줄까, 우리 비비?”
“개 취, 급 마요.”
다른 세계의 숏츠 영상으로 봐서 당신을 알아요 따위의 말을 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수상쩍을 정도로 이안의 상황을 잘 아는, 그리고 이성이 있는 좀비로 포획돼 쉘터로 이송되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이안은 좀비에게 사람 이름은 과분하다며 ‘비비’라는 이름을 지어 줬는데.
“개가 더 낫지. 귀엽고, 충성스럽고. 비교할 걸 비교해.”
“……콱 물, 어 버릴, 까 보다.”
“역시 재갈을 채워야겠어.”
어울리지 않게 제법 귀여운 애칭을 지어 줬다고 생각해서 내버려뒀건만, 좀비 무비의 줄임말이었다. 좀비인 김영화. 좀비 무비. 비비……. 참 나, 어이가 없어서. 소싯적에 라임 좀 맞춰 봤나 봐?
“아아, 아! 하지 마,요! 안 문다고요! 저,기 마트, 좀 봤, 어요!”
빈말이 아닌지 팽팽하게 당긴 재갈용 천을 들고 다가오는 이안을 피해 도망가려 했지만 손을 묶은 끈 탓에 소용없었다.
겨우 고갯짓으로 내가 그를 따라가지 않고 멈춰 서 있던 이유를 말했지만, 그는 콧방귀만 낄 뿐이다.
아, 진짜. 이 남자가 사실 여리고 순한 사람이라며 울던 독자들 다 나와 봐. 아닌 것 같으니까.
“이 근방이라면 너보다 내가 더 잘 알걸.”
“이, 미 먹을 거, 다…… 털,었……어요?”
“아니. 네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못, 털었,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