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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한글로 살아남기 6권
유우리 퓨전 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뒤통수를 맞을 준비
#황제 오웬
#황녀
#아티팩트 전공의 희망
#암살자
#제 고향입니다만
1
#뒤통수를 맞을 준비
사악하기 그지없는 검은 빛깔의 데스 나이트, 에리온을 보며 테른은 침음을 삼켰다.
얼마나 많은 스켈레톤을 잡아먹었기에 저런 무시무시한 존재로 성장했을까?
보고만 있어도 오금이 저렸다.
‘아니, 비단 데스 나이트가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겠지.’
원래도 괴물 같던 에리온은 중간고사를 치르면서 더 괴물처럼 성장했다.
안주혁을 상대로 싸운 경험이 그녀의 수준을 한층 더 위로 높인 것이다.
과연 작금의 아카데미에서 에리온을 감당해 낼 수 있는 학생이 있을까?
‘나도 엄두가 안 나는군.’
콰아아앙!
한껏 에리온을 견제하던 테른은 들려오는 소음에 정신을 차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롬은 정의를 울부짖으며, 그들을 쫓아오는 중이었다.
“에리온, 우리끼리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일단 협력을….”
하지만 테른은 휘둘러지는 일검을 피해, 빠르게 몸을 비틀어야 했다. 스치듯 지나간 검이 땅을 두부 썰듯 베었다.
테른은 없는 혀를 찼다.
“…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네.”
그는 이리저리 회피 동작을 펼치며 생각했다.
‘하기야 당연한 건가?’
아직도 믿기질 않지만 에리온은 관리자를 무찌를 정도로 진화한 상태였다.
그런 무력을 가졌는데, 굳이 테른과 협력할 이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차라리 여기서 그를 처치하는 게 훨씬 낫지!
결국 최종적인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언제든 싸워야 할 처지였다.
-어쩌죠?
-걱정 마, 다 생각이 있어.
우려 섞인 레프탑의 질문에 테른이 답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앞뒤로 막힌 마당에 그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피하지 못하면 부딪치는 수밖에.’
더 경계하는 테른을 보며 에리온이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테른, 더 할 수 있겠지?”
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아니, 실제로 그녀는 이 순간이 즐거운 모양이다.
“…더 하기 싫은데. 끄응.”
에리온의 몸이 사라진다 싶더니 소름 끼치는 기운이 바로 옆에서 느껴졌다. 폭발적으로 가속한 에리온의 검격을 눈으로 좇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테른은 속담을 꺼내 들며 몸을 연기처럼 바꾸었다.
물론 이건 공간이동처럼 완전한 회피가 아닌, 연기로 화(化)해 공격을 피하는 마법이다.
즉, 눈에 보인다는 단점이 명확했다.
맥락의 틈을 찌르는 ‘단절’을 사용하는 기사들에겐 그다지 효용성이 없었다.
어휘력마저 뛰어난 에리온이라면 금방 마법을 파훼해, 테른을 벨 수도 있으리라.
실제로도 그러했다.
‘아니, 아직이다.’
테른은 안광을 번뜩이며 속사포로 주문을 외웠다. 중간고사를 치르며 성장을 한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개수는 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가는 날이 장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
한 세트로 깜지 마법을 뿌려 댄 테른은 뒤이어 의념을 집중해 주변의 화기를 모았다.
성화가 가득한 만큼, 그리고 테른이 화 속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만큼.
허공에 집적된 불덩이는 마치 운석처럼 가공되더니, 에리온을 향해 날아갔다.
성화여, 적을 불태워라!
투콰아아앙!
강렬한 연기를 일으키며 폭발하는 하얀 불꽃!
-해, 해치웠나?
-…네가 토드도 아니고, 뭐 하는 거야?
기다렸다는 듯 플래그성 발언을 읊는 레프탑을 보며 테른은 어이없어했다.
물론 레프탑의 발언이 아니었더라도,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이런 걸로 쓰러트릴 수 있었다면 테른이 여태 긴장하지도 않았겠지.
츠츠츠츳-.
‘역시 저게 있는 한 어지간한 마법은 소용없겠는데.’
테른은 에리온의 몸을 뒤덮은 망토 자락을 보았다. <신념의 망토>는 의지가 무너지지 않는 한 결코 부서지지 않는 아티팩트였다.
저걸 두르고 있는 한, 어지간한 마법은 모조리 면역이라고 봐도 된다.
‘물론 저게 없었어도 통하진 않겠지만.’
관리자의 성화를 온몸에 입고도 버텨 내는 걸 두 눈으로 봤다. 처음부터 이 공격이 통하지 않으리란 걸 잘 알았다.
“테른! 지금 이대로면 질 거야! 힘을 내야 해!”
문득 들려온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뻔뻔하게 응원하는 죠나의 머리통이 보였다.
누가 악령 아니랄까 봐, 죽지도 않고 저렇게 덩그러니 목이 잘린 채로 소리치고 앉았다.
‘아니, 혹시 일부러 져 준 건 아니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죠나가 당한 건 말이 안 된다.
허무해도 너무 허무하게 당하지 않았나?
테른은 한숨을 푹 내쉬며 죠나를 일별했다.
‘어쨌든 죠나 님의 말대로 지금의 나는 에리온을 이길 수 없다.’
아니, 애초에 테른은 에리온을 이겨 본 적이 별로 없다.
변경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녀와의 대련은 늘 비슷한 결말을 맞이했다.
테른은 그 사실이 크게 이상하지 않았다.
에리온은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닐뿐더러, 그 능력이 하늘에 닿았다는 천재였으니까.
그가 전보다 많이 성장했다지만, 역시 에리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근데 쉽게 지지도 않을 거다.’
테른은 집요하게 눈을 반짝였다.
‘슬슬 올 때도 됐는데.’
말했듯 테른은 이길 생각은 추호도 하질 않았다.
지지 않는 싸움을 하고자 마법을 만들었고, 그 결과로 충분히 시간을 벌었다.
테른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느꼈다.
“여기 있었구나!”
요란한 외침과 함께 드디어 제롬이 나타난 것이다.
테른은 그 순간을 놓치질 않았다.
“흐음?”
에리온이 제롬을 보고 놀라는 사이, 테른은 거두절미하고 공간이동을 했다.
뼈다귀 하나가 순식간에 이동해, 흉흉한 데스 나이트의 갈비뼈 사이로 안착한 건 그때.
“테른? 너…?”
당황하는 에리온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테른은 아예 무시하기로 했다.
여기서 마음만 먹는다면 데스 나이트의 몸도 뺏을 수 있겠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나보다 잘 싸울 테니까!’
제롬이란 난적을 앞에 둔 상태에선 그보다 에리온이 직접 싸우는 게 훨씬 낫다.
근데 놀랄 일이 있었다.
-테른… 치사하게!
테른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당황했다. 놀랍게도 그가 이동한 뼈다귀 속에는 이질적인 존재가 섞여 있던 것이다.
-레프탑? 너 어떻게?
-제가 누군지 잊었어요?
아카데미의 1학년 중 유일무이한 네크로맨서로, 이쪽에 가장 정통한 전문가였다.
눈치 빠른 레프탑은 테른의 낌새가 이상하단 걸 눈치채자마자 이런 묘기를 부렸다.
-나도 나지만 너도 참…….
황당해하는 테른을 향해 에리온이 소리쳤다.
“시끄럽고, 다들 내 몸에서 나가지 못해?!”
테른은 뻔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릴 신경 쓸 때가 아닐 텐데?
-맞아요! 적이 앞에 있어요!
“아니…!”
제롬은 데스 나이트의 몸에서 들려오는 세 개의 목소리에 헛웃음을 지었다.
“너희는 진짜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날이 없냐?”
제롬은 성화를 크게 불태우며 말했다.
“됐다, 그냥 다 같이 죽으면 될 일이지!”
“크읏……!”
에리온은 본격적으로 휘둘러지는 제롬의 검에, 사악한 마검을 맞대었다. 뼈가 아스러질 정도로 이를 악물어야 했다.
검이 교차하면서 충격파가 일어났다. 주변은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바뀌었다.
테른은 큰 소리로 외쳤다.
-잘한다, 잘한다! 우리 에리온이!
-파이팅! 파이팅! 이기는 뼈 우리 뼈!
“…그 입이라도 닫아 줄래!?”
짜증을 섞어 중얼거린 에리온은 이내 땅을 박차고 제롬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스크린을 올려다보는 교수들 사이로는 아주 묵직한 침묵이 감돌았다.
“…저래도 되나요?”
“저, 저런 식이어도 괜찮은 건가?”
“이걸 인정해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교수들은 하나같이 한 몸에 어우러진 세 마리의 스켈레톤을 보고 있었다.
대체 뼈다귀 하나만 다른 몸에 붙여 기생하겠다는 생각은 어찌 떠올렸는지.
“이론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