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나의 어둠에게 1부
-괴물을 사랑하는 완벽한 방법 4권-
지은이 | 홍유디
표지 일러스트 | 서나원
타이포 디자인 | 림재
발행처 | 다설
ISBN | 979-11-94229-89-6
ⓒ 2025, 홍유디
2025년 3월 6일 발행
정가 3,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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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할로우(Hollow) (2)」
다음 날, 집행관들은 아침 훈련을 하러 훈련장에 내려왔다가 문가에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훈련장 안에서는 기드온이 검은색 트레이닝복의 지퍼를 목까지 끌어 올리고 홀로 몸을 풀고 있었다.
그는 검은색 벨트로 오른손을 등 뒤로 고정한 채, 물구나무를 서서 왼손만으로 팔굽혀펴기를 하는 중이었다. 몸을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바닥에는 무수한 땀방울이 떨어졌다.
보기만 해도 기가 막히는 광경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샬리아님!”
기드온은 팔을 멈추고 고개만 돌려 문가를 쳐다보았다. 후배 집행관들이 모두 꼿꼿하게 서서 그에게 경례를 하고 있었다.
특히 가장 가운데에 서 있는 붉은 머리 남자는 누가 보면 사랑에 빠졌다고 오해할 만큼 존경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외쳤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136기 집행관, 세실 제뷰런이라고 합니다! 샬리아님을 이렇게 실제로 만나 뵙게 돼서 너무나 영광입니다! 시험장에서 본 그 기술은 정말 말로 형용하기 힘들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앞으로 저희도 쪼끄미가 위험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테니, 부디 저희에게도 샬리아님과 함께할 영광을 주십시오!”
그 말에 옆에 있던 녹서스가 당황해 팔꿈치로 세실의 옆구리를 세게 쿡 찔렀다. 좀 닥치라는 뜻이었다.
기드온이 살짝 멈칫하더니 물구나무를 선 상태에서 그대로 발을 내려 바로 섰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어두운 분위기에 집행관들은 모두 긴장했다.
이내 그가 낮게 물었다.
“……쪼끄미?”
“예! 제가 제나 리 후배님에게 지어 준 애칭입니다!”
세실은 신이 나서 얼른 대꾸했지만, 기드온은 잠시 말이 없어졌다. 할 말을 잃어버린 듯한 얼굴이었다.
그들은 어제 휴게실에서 그와 부대장들이 나눈 이야기를 대충은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게 아니라면 어젯밤 술주정뱅이에 망나니처럼 굴었던 그에게 존경을 표할 리 없었고, 제나를 안전하게 지키겠다는 말도 할 리가 없었다.
기드온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들키지 않으려고 했건만 이미 다 틀린 것 같았다.
그는 자신한테서 반경 10미터 정도 떨어지라는 말 대신 다른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난 신경 쓰지 말고 운동들 해.”
“예! 샬리아님!”
세실은 웃통을 훌러덩 까고 그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으로 몸을 단련했다. 녹서스는 옆에서 그런 그를 흘겨봤다.
그도 그럴 것이, 훈련생 시절부터 요령 피우는 데엔 달인이었던 세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딴 사람처럼 구는 이유는 분명 기드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인 것이 틀림없었다.
기드온은 묵묵히 바닥에 한 손을 짚고 다시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또 한 무리의 집행관들이 훈련장에 들어왔다.
“어? 쪼끄미다!”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윗몸일으키기를 하던 세실이 문가를 보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문가에 서 있는 신입 집행관들의 중심에는 양쪽 눈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뚱뚱 부은 제나가 서 있었다.
제나는 부은 눈 못지않게 뚱한 표정으로 타박타박 걸어오더니 기드온 옆에서 자세를 척 잡았다.
그와는 반대로 왼팔을 뒤로한 채 오른팔만으로 팔굽혀펴기를 하는 것을 보며 기드온이 물었다.
“뭐 하는 거야.”
“보면 몰라요? 멤버십 트레이닝이잖아요.”
기드온은 입을 다물었지만, 여전히 제나를 쳐다보는 시선은 거두지 않았다.
제나는 앞만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어제 말했죠? 이제부터는 제가 기드온의 오른팔이 될 거라고.”
“……그 말, 진심이었어?”
“그럼 그냥 한 말인 줄 알았어요?”
제나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기드온도 다시 앞을 바라보며 묵묵히 팔굽혀펴기를 했다.
제나는 그의 속도에 맞춰 열심히 오른팔을 굽혔다가 폈다. 어릴 적에 본부 앞마당에서 같이 팔굽혀펴기를 했었던 기억이 떠올라 기드온은 안 보이게 피식 웃었다.
그때는 낑낑대다가 발랑 자빠져 버리더니, 지금은 꽤 안정적으로 잘 따라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 손으로 해서 그런지, 역시나 점점 속도가 느려지며 팔이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또다시 제나가 철푸덕 쓰러지기 직전, 기드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나가 시선을 힐끗 들고 쳐다보자, 그는 이제 철봉으로 가 왼팔로 턱걸이를 하기 시작했다.
제나는 병아리처럼 쪼르르 그 옆으로 다가가 각오한 얼굴로 다시 자세를 척 잡았다.
기드온이 앞만 보며 말했다.
“양손으로 해. 무리하지 말고.”
“싫어요. 난 기드온의 수행관이니까 기드온이랑 똑같이 할 거예요. 어차피 숙소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팔 쓸 일도 없는데요, 뭐.”
“…….”
제나는 지금 그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한 것에 대해 앙금을 푸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때, 기드온의 옆으로 또 다른 누군가가 다가와 철봉에 철렁 매달렸다.
제나는 옆을 힐끗 보았다가 살짝 눈이 커졌다.
“카일룸?”
카일룸은 앞만 바라보며 그들과 마찬가지로 한 손으로 턱걸이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손은 기드온과 마찬가지로 왼손이었다.
카일룸은 일부러 기드온과 속도를 맞춰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그를 의식하고 하는 행동이라는 것이 대놓고 보였다.
두 사람은 겉모습부터 마치 흑백의 바둑알처럼 분위기가 정반대였다.
기드온도 카일룸이 덤비니 적당히 하지 않고 끝까지 갈 기세로 철봉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갑자기 둘 사이에 대결 구도가 생겼다. 제나는 끼어들지도 못하고 뒤로 주춤 물러섰다.
어딘가 전투적인 기세로 팔굽혀펴기를 하는 두 사람을 보며 주변의 집행관들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는지, 운동을 멈추고 구경했다.
기드온과 카일룸은 무표정했지만 얼굴에는 땀이 잔뜩 맺혀 있었다. 두께와 색이 다른 두 개의 근육질 팔이 역동적으로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제나는 두 사람의 소리 없는 기 싸움을 보며 옆에서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다 뭔가가 떠올랐는지 어디론가 쌩하니 달려갔다.
녹서스가 무리에서 중얼거렸다.
“카일룸 저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카일룸은 힘겨운지 점점 표정 관리가 되지 않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무리를 한 건 기드온 역시 마찬가지였다.
집행관들이 오기 전부터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었던 그는 시체병에 걸려 몸이 결코 예전 같지 않았다.
이대로 두 사람을 말리지 않으면 뭔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뒤에서 제나가 빽 소리쳤다.
“물……!”
두 사람은 멈칫하며 팔굽혀펴기를 하다 말고 뒤를 힐끔 쳐다보았다. 제나는 양손에 차가운 물이 담긴 물병을 들고 어색하게 웃었다.
“물 가져왔어요. 그만하고 어서 마셔요.”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얌전히 철봉에서 내려왔다. 제나의 말 한마디로 너무나도 쉽게 종료된 기 싸움이었다.
그들은 각자 물병을 받아 꿀꺽꿀꺽 끝까지 마셨다. 이것마저도 무슨 빨리 마시기 대결인가 싶을 정도의 속도였다.
카일룸은 손등으로 입을 닦고는 제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나, 운동도 끝났는데 그만 가자. 여기서 더 이상 할 일도 없어 보이는데.”
그가 제나를 끌고 가려는 그때였다. 기드온이 손을 덥석 잡았다.
“앗……!”
제나는 손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자기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터뜨렸다.
기드온의 눈이 살짝 커졌다. 제나의 가는 손목에는 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어제 그가 자고 있을 때 무심코 움켜쥐었던 손목이었다.
기드온은 무의식적으로 저지른 돌발행동에 자기도 놀란 눈치였다.
카일룸은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그에게 쏘아붙였다.
“어제는 그렇게 냉담하게 내치시더니, 오늘은 잡으시는 겁니까?”
그 말에 기드온은 손에 스르르 힘을 풀었다.
제나는 떨리는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마치 검은 고래와 흰 고래 사이에 낀 한 마리의 새우젓이 된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건방진 놈, 지금 그게 샬리아님께 무슨 버릇없는 태도야!”
녹서스가 성큼성큼 걸어와 카일룸의 손을 세게 내쳤다. 카일룸은 고개를 돌린 채 상처받은 얼굴로 대꾸하지 않았다.
녹서스가 무섭게 말했다.
“내 말 무시해? 샬리아님께 이게 무슨 태도냐고 물었어.”
“……죄송합니다.”
카일룸이 그제야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녹서스는 기드온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샬리아님. 후배 놈 대신에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저놈이 집행부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됐다. 그만해라.”
기드온도 씁쓸한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세실도 옆으로 다가와 앞만 보며 녹서스에게 말했다.
“제대로 교육시켜. 집행부 내에서 다름 아닌 샬리아님께 하극상이라니…… 대장님이 아시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
“그래야지.”
녹서스가 카일룸을 엄하게 보며 말했다.
“너, 따라와.”
그가 카일룸을 데리고 훈련장을 성큼성큼 나갔다.
그들이 나가자마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기드온은 수건을 목에 걸며 낮게 말했다.
“……제나 리. 식사하고 내 방으로 와.”
그도 뚜벅뚜벅 체육관을 나갔다.
* * *
제나는 찝찝한 기분으로 샤워를 끝내고 식당으로 올라왔다.
먼저 식사를 하고 있던 동기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제나를 쳐다보았다.
“제나! 여기야!”
에스헨더가 손을 흔들었다. 이제 동기들과 멀어져서 사이가 어색해질 줄 알았는데, 그들은 여전히 밝은 모습으로 제나를 반겨 주었다.
제나는 우울했던 기분을 잊고 웃으며 식판을 들고 날듯이 그들 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제나가 앉자마자 동기들의 표정이 걱정스럽게 변했다. 그들은 서로 말없이 시선을 교환했다.
제나는 시선을 들고 그런 그들을 힐끔힐끔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래? 나 뭐 이상해?”
클라우스가 말없이 제나의 식판을 검지로 가리켜 보였다.
그곳에는 평소에 제나가 먹는 양보다 훨씬 적은 양의 밥이 담겨 있었다.
어제 술을 먹고 하도 울고 잤더니 밥맛이 하나도 없어서 음식을 조금만 담은 것뿐인데,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그들은 제나의 상태가 무척 안 좋다고 판단해 버렸다.
제나는 살짝 충격을 받아 멍청하게 물었다.
“……내가 그렇게 돼지야?”
“그냥 돼지가 아니라, 아주 꿀돼지지. 먹을 것만 보면 좋다고 꿀꿀대니.”
이사벨라가 숟가락을 움직이며 태연하게 대꾸했다. 제나가 억울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는데, 옆에서 에스헨더가 물었다.
“제나야, 근데 정말 괜찮은 거야?”
에스헨더는 제나의 뚱뚱 부은 눈을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어제 키아라에게 들어서 대강 기드온과 제나의 상황을 알았지만, 그래도 제나가 어제 일로 상처를 받은 것 같아 그녀는 걱정이 되었다.
제나가 밝게 말했다.
“응, 나 괜찮아.”
“앞으로 같이 숙소를 못 쓰게 돼서 너무 아쉽다……. 너 없으니까 이사벨라가 옆에서 얼마나 시끄럽게 구는지 몰라.”
“뭐라고?”
이사벨라가 눈을 흘겼다. 제나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