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표가 보여
화살표가 보여
[10권]
Chapter 10
화살표가 보여
Chapter 10
아시안컵 조별리그 2연승으로 조 1위, 16강 진출이 결정되었다.
말레이시아와 아직 한 경기가 남았고, 바레인과 요르단의 대결도 있지만.
우리가 이미 바레인과 요르단을 이겼기 때문에, 승자승 원칙에 따라 설사 우리가 말레이시아한테 진다고 해도 조 1위는 확정이다.
고로 16강은 한일전이 성사된 거나 다름없다.
그 경기를 위해 알베르토 감독은 로테이션을 쓰기로 했다.
경고 트러블이 걱정되는 이재우, 김대명, 기태용, 전준우, 김청운이 다 빠졌다.
당연히 주전 스트라이커인 나도 벤치에서 시작한다.
주전들 체력 보충도 할 겸, 백업 선수들의 경기 감각을 위한 알베르토 감독의 선택이었다.
“너 좀 들뜬 거 같다?”
“응? 뭐가?”
“모처럼 선발이니까. 얼굴이 신나 보여서 말이야.”
상민이가 헤실헤실 웃고 있다.
대표팀만 오면 거의 벤치에서 시작하던 상민이라, 오랜만에 선발에 의욕이 대단한 거 같다.
“오늘 제대로 보여 주고 온다. 지켜봐라. 너 공백 안 느껴지게 할 테니까.”
“나 없다고 네가 왕이 되는 건 아니야.”
“강없신왕! 소리 나오게 한다. 내가.”
동기 부여가 확실히 된 거 같네.
“못하면 16강부턴 쭉 벤치일 테니까, 제대로 뛰고 오든지.”
“무조건 골 넣는다!”
옆에서 지켜보던 지석훈이 웃었다.
“그래도 방심하지 마라. 말레이시아도 잘하더라.”
기태용도 거들었다.
“거기 감독이 김태곤이잖아. 우리를 너무 잘 알 거야.”
김태곤.
파울로 감독을 데려왔던 대한축구협회의 감독 선임 위원장이었던 사람이다.
내부 트러블로 결국 협회를 떠나 말레이시아 감독을 맡게 됐는데.
말레이시아 최초의 아시안컵 출전권을 따낸 만큼 국민적인 영웅이 되었다.
물론 아직 득점이 없어서 그 영웅 소리가 다시 쏙 들어갔지만.
우릴 상대로 만약 한 골이라도 넣으면 김태곤은 정말 영웅이 되는 거다.
-김태곤이 정말 감독 선임 시스템을 잘 만들었어. 그래서 알베르토도 예비 명단에 있었던 거고.
‘자산을 남겨 놓고 떠난 거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협회 꼰대들만 아니었으면 더 잘했을 텐데. 아쉬운 인물이야.
김태곤 같은 사람이 정말 많을 거다.
능력은 있지만 인맥을 중요시하는 꼰대들에게 밀려 빛을 보지 못하거나 좌천되는.
그런 사람들이 협회에 있어야 한국 축구도 발전하는데.
-참 신기하긴 해. 협회가 그따위로 일을 하는데 그래도 지석훈이 너, 이재우 같은 애들이 나오는 걸 보면 말이야.
‘시스템이 더 잘 되어 있으면 훨씬 더 많이 나왔겠죠. 우리 같은 선수가.’
-그러면 진짜 월드컵 우승도 꿈이 아닐 건데.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그러네.
지석훈, 이재우 같은 월클이 더 있다면 도전해 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일단 아시안컵부터 우승하고요.’
알베르토 감독이 우릴 모아 놓고 동기 부여를 해준다.
“말레이시아라고 방심하지 마라. 만약 내 눈에 그런 선수가 보인다면, 그는 앞으로 필드를 밟을 수 없을 거다.”
이런 말을 시작으로 정말 강력하게 선수들의 정신력을 강조했다.
이러면 방심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겠는데.
-이래서 감독 능력이 중요하다니까.
‘킹정합니다.’
이강혁 - 안지혁 - 이강민
신상민 - 윤장일 - 한태우
이상철 - 권수훈 - 박지우 - 황재우
주성철(G.K)
이강민과 키퍼 주성철을 빼놓고는 2차전 선발 명단 전원이 바뀌었다.
그런데도 강해 보인다.
부상 복귀한 이상철도 컨디션은 괜찮아 보이고,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땄던 권수훈도 능력은 있고.
박지우야 이재우 다운그레이드이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내가 직접 상대해 보기도 했으니까.
황재우는 최근 떠오르는 오른쪽 윙백 자원.
거기에 경험이 많은 윤장일과 점점 폼이 올라오고 있는 한태우에 신상민까지.
찰츠부르크의 안지혁이나 셀틱의 이강혁도 공격력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 와. 우리 백업 선수들도 저렇게 화려했었나?
- 이렇게 보니까 ㅎㄷㄷ하네.
- 주전이랑 별 차이 안 나는 거 같은데?
└그건 아님. 강건웅에 지석훈, 이재우, 기태용만 해도 차이 큼.
└그건 인정! 그 넷은 넘사지.
- 알베르토 로테이션 선택 굿! 솔직히 이기나 지나 별반 차이도 없는 경기. 주전들 쉬게 해주고, 백업들 경기감각 올리고. 너무 좋다!
└진짜 알베르토 진국임!
└이래놓고 지면 대차게 깔꺼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솔직히 이 멤버로도 말레이시아한테 지면 욕 먹어도 싸지.
경기 시작 전, 잠깐 팬들 반응을 봤는데 꽤 호의적이다.
물론 패배를 경험하고 싶지 않은 건 마찬가지.
말레이시아에게 졌다? 그건 팬들의 자존심도 무너트리는 거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이겨야 한다.
삐익-
알베르토 감독이 정신력을 강조하긴 했는데, 궁금하긴 하다.
어떤 경기가 나올지.
* * *
“이야. 오늘 상민이 펄펄 날아다니네.”
“보여 주겠다는 게 빈말이 아니었어. 흐흐.”
“내가 토트넘 선수다! 라고 보여 주는 거 같아.”
지석훈, 이재우, 기태용이 벤치에 앉아 웃으면서 경기를 보고 있다.
강없신왕 보여 주겠다더니 진짜 제대로 보여 주고 있다.
우릴 이기면 아직 조 3위에 대한 확률이 남아 있기에, 말레이시아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소 수비적이면서도 공격할 땐 빠르게 올라온다.
결국 골을 넣어야 이길 수 있으니까 말레이시아도 마냥 내려설 순 없다.
그 뒷공간을 상민이가 정말 잘 파고들고 있다.
좋은 패스만 들어갔다면 기회를 잡았을 만한 움직임이 있었다.
“태우도 점점 패스가 좋아지고 있고. 곧 골 터지겠다.”
지석훈의 예측은 정확했다.
전반 22분.
상민이가 안지혁에게 주고 침투.
안지혁은 한태우에게 내려 주고, 한태우가 다이렉트로 찔러 주자.
단번에 상민이가 혼자 기회를 잡았다.
“오!”
“이야.”
“제법인데?”
멋있게 키퍼까지 제치고 골을 넣은 상민이가 그 자리에서 포효한다.
한이 맺혔던 듯 저러는 걸 보니 괜히 웃음이 났다.
이후로도 상민이의 원맨쇼가 진행됐다.
미드필더 지역을 상민이가 거의 접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알베르토 감독도 흡족하게 보고 있는 게 보였다.
“지우 형. 한일전 때 밀릴 수도 있겠는데요?”
“그러게. 상민이 너무 잘하네.”
후반전에도 상민이는 펄펄 날다가 안지혁의 골을 도왔다.
“석훈이 형. 들어가서 상민이한테 공 좀 주라고 해요.”
“그럴 거다. 오늘 괜찮아 보이네.”
지석훈도 교체 투입되었다.
부상은 회복했고, 이제 경기 감각을 끌어올려야 하니까.
역시나 최상의 컨디션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석훈다운 플레이를 보여 준다.
그렇게 서서히 폼을 올리더니, 후반 42분에 상민이의 멋진 패스를 받았다.
침투하는 지석훈의 발끝에 완벽한 스루패스를 넣어준 것이다.
그런 일 대 일 기회를 놓칠 지석훈이 아니다.
출렁-
“키야! 일본 새끼들 벌써 질질 싸고 있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석훈이 형까지 살아났으니까 완전 겁먹었을 거 같은데. 크흐흐.”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스코어 3-0.
주전과 백업의 차이가 거의 드러나지 않을 정도의 경기력과 지석훈의 복귀는 일본에겐 분명 부담일 것이다.
“찬희도 다치지 말고 뛰고 와라!”
“네! 재우 형!”
이찬희도 이강민과 교체되어 투입됐다.
이로써 부상자들이 전부 복귀했다.
일본이 정말 떨겠는데?
“어?”
“아. 저걸 놓치냐. 수훈아.”
좋던 분위기에 실수가 나와 실점하고 말았다.
그런데 말레이시아 선수들이 엄청 기뻐한다.
“아시안컵 첫 골이라 엄청 좋아하네.”
“그 골을 우리 상대로 넣었으니까.”
“김태곤 감독님 기뻐하는 거 보니까, 뭐. 괜찮네.”
실점하면 항상 씁쓸하긴 하지만, 김태곤 감독이 기뻐하니 그래도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