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93. 두려움이 존중을 만든다. (4)
94. 두려움이 존중을 만든다. (5)
95. 사람이 모두 사람은 아니다. (1)
96. 사람이 모두 사람은 아니다. (2)
97. 사람이 모두 사람은 아니다. (3)
98. 사람이 모두 사람은 아니다. (4)
99. 그래도 희망은 있어야 한다. (1)
100. 그래도 희망은 있어야 한다. (2)
101. 그래도 희망은 있어야 한다. (3)
102. 그래도 희망은 있어야 한다. (4)
103. 그래도 희망은 있어야 한다. (5)
104. 사람들 (1)
105. 사람들 (2)
106. 사람들 (3)
107. 사람들 (4)
108. 사람들 (5)
109. 사람들 (6)
110. 충돌 (1)
111. 충돌 (2)
112. 충돌 (3)
113. 충돌 (4)
114. 충돌 (5)
115. 충돌 (6)
93. 두려움이 존중을 만든다. (4)
“정말 별거 아닌 일이었어요. 그저 다 같이 공부하고, 각자 일을 하고 마친 뒤 서로 거리를 둔 채로 놀 때 벌어진 일이었죠. 다들 애초부터 조심하고 있던 지라. 서로 뭐라하거나 할 그런 처지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저쪽에서 먼저 한마디 한 게 문제였죠.”
“어떤 한 마디인데?”
[좋겠다. 나도 ‘기프트’ 갖고 싶은데...]
“흐으음...”
보면 정말로 특별한 말도 아니었다.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특별한 힘 같은 걸 동경하거나 하지 않은가?
영웅이라던가?
공룡이라던가?
특별하고 강한 존재를 동경하기 마련이다.
정호씨네 아이들의 경우.
특히 약탈자라던가 시달린 게 많았기에 그런 생각이나 마음을 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다만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냐, 상황이 어떻냐? 의 차이가 있지. 후우~’
“사실 발끈할 말도 아닌 그냥 동경으로 한 말이었는데, 거기서 발끈해버리는 바람에...”
“그래서 어떻게 처리했냐?”
“일단 정호 아저씨가 급히 와서 말렸어요. 다행이 아저씨를 제외하면 최강자잖아요? 그래서 사후청취 후에 허튼 소리한 것을 직접 허리 숙여 사죄하시고, 아이 교육을 제대로 하겠다고 하셨어요.”
슬기로운 대처로군.
자기 아이라고 감싸는 게 아니라 명백한 잘못을 한 것을 따지고 확실히 결자해지.
아포칼립스 커뮤니티가 내부에서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아는 분의 행동다웠다.
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일단 한번 봉합시키고 해결한 일을 다시 꺼내어서 또 상처주기 싫었던 것이리라.
“음, 좋은 판단이군.”
“묘하게 순수하게 납득하시네요? 막 내,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일이?! 하면서 발악하실 줄 알았는데.”
“나도 감추고 사는 게 있는데, 남이 뭐 감추고 싶은 게 있는 걸 배려해줘야지. 아무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다?”
역시 빨리 거처를 분리하는 방법밖에 없나?
하지만 이 추위 속에서 거처를 분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슈퍼듀퍼한 깡통들의 협조를 받으면 쉽게 분리할 수 있겠지만.
그건 기프트를 비밀로 하고 있는 지금으로썬 불가능한 일.
어쨌든 무언가 조치가 필요하다.
아이들 싸움이라 우습게 볼 수 없는 게.
그 아이들 절반 이상이 ‘기프트’ 유저인 만큼 분쟁이 생기면 진짜 극단적 사태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근데 그거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요.”
“걱정 안 할 수가 없잖냐? 에휴...”
“이미 해결책을 가져오셨으니깐요.”
“뭐? 내가 언제? 뭘? 건축 자재? 그걸로 집 새로 만드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아니?”
“아뇨. 보드게임이랑 놀거리 가져다주신 거요. 그거면 충분해요. 다들 예민해지는 건 추운데 갑갑한 상황 속에서 뭐라도 놀거리 같은 게 없어서 저러는 거에요.”
아, 그런 건가? 정말 그걸로 괜찮은 건가?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승아를 바라보는데, 그녀는 어께를 으쓱하며 말한다.
“실제로 오늘 아저씨가 뒹굴뒹굴 뒹구르르르 하는 동안에 싸웠던 애들끼리 모두의 마블~ 뚜루루~뜨~ 하면서 주사위 굴리면서 놀았죠.”
“...어? 그랬나?”
“네. 그랬어요.”
윽, 역시 쉬라고 한다고 그냥 쉬면 안 되는 거였나?
아이들 상태를 둘러보면서 돌아다녀야 했나?
라기엔 내가 일어나기만 하면 졸졸 따라붙고 드러누으라고 한 양반들 때문에 그렇진 못 했지.
“뭐, 너 믿고 그럼 해결 된 거라 본다. 일단?”
“예. 걱정마세요. 이상한 기미가 있으면 바로 알려드릴게요.”
“오케이.”
그렇게 아이들에 대한 분란 문제는 일단락?
아니, 애초에 내가 뭐 하기도 전에 일어났고, 다 해결되어버렸다.
이래서 사람이 중요한 거다.
이상한 사람들이었으면 자기 아이만 챙기니 뭐니 하고.
애미애비도 없는 것들이 하면서 분란 일으키고 난리 날 건데 말이지.
‘아, 하긴 [기프트] 가진 아이들에게 그런 태도는 하기 어려우려나?
그냥 아무 힘도 없는 아이라면 막 무시했겠지만.
지금 저 아이들은 [기프트]를 가지고 있기에 또 이야기가 다를 수 있다.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거니깐.
두렵지 않으니깐 하찮게 막 하는 거다.
세금도 거의 안 내는 비리비리한 노친네들이나 아줌마들이 공무원에게 막 대하는 이유가 뭐냐.
맨날 설설 기니까 두렵지 않아 더욱 기고만장해지는 거지.
“자, 이거 받아.”
“이건? 아, 그 정호 아저씨가 받은 그거네요? 휴대폰.”
“생각해보면 너한테도 연락망 뚫어놔야 할 거 같다. 애들은 애들 시선이 중요하니깐 말이지. 또 내가 나간 동안에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요청할 수 있잖아.”
뭐, 앵간한 건 이미 다 싹싹 긁어서 파밍 해뒀지만 그래도 필요한 게 있을 수 있으니깐 말이다.
또, 내부적 문제가 생겼을 때 소통 창구를 하나 더 늘려두는 게 도움이 된다.
그렇게 마석으로 작동하는 휴대폰을 주고서 시시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 뒤에 나는 적당히 틈을 봐서 지하창고에 물자 정리한다는 핑계로 내려와서 쉘터로 들어왔다.
혼자만의 공간.
속이 정말 편했다.
물론 아무것도 안 할 것은 아니고, 그 [바퀴벌레 거수]를 잡고 얻은 마석들을 바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다음 테크트리는 선택하셨습니까?]
“아니, 오늘은 파프니르 네가 아니라. ‘니드호그’랑 ‘히드라’, ‘티아메트’에게 용건이야. 진심으로 의료 테크 올려야겠더라.”
제대로 한번 번개맞고 누워보니깐 들었던 생각이었다.
지금이야 우리 유능한 깡통들과 의료용품을 파밍해 둔 걸로 살아난 셈이지만.
자칫하면 정말 죽을 뻔한 상황.
의료 테크를 더 미룰 순 없었다.
더구나 지금 우리 그룹 사람들도 나한테만 ‘파밍’을 맡겨둘 순 없다면서 파밍 나가려고 하고 있으니.
더더욱 준비해 놔야한다.
‘아포칼립스에서 구성원의 죽음은 필연 같은 거지만 그래도 대비할 수 있는 건 대비해야지.’
[그러면 우선은 농업 담당 기체 ‘라돈’을 제작하시고, ‘니드호그’에게 지하 농업 플랜트를 구성하라고 하시면 됩니다.]
“중요한 건 이제 마석 개수인데, 40만개로 되나? 아, 맞다. [히드라]도 업그레이드 해야하지?”
[맞습니다. 우선 가능한 대로 배분해보겠습니다.]
[바퀴벌레 거수]에게서 얻은 90만 개.
50만 개는 대구의 물자를 긁어모을 생각으로 화끈하게 [티아메트] 업그레이드로 투자해서.
남은 건 40만 개였다.
이걸로 다 할 순 없겠지만 필요한 걸 우선적으로 배분해야겠지.
“아, 원래라면 파밍도 하고, 또 적당히 돌아다니는 [거수] 때려잡아서 마석을 더 불리는건데! 크아아악!”
[우선 40만 개로는 당연히 농업 담당 기체인 ‘라돈’을 완전하게 만들 순 없습니다. 필요한 기능만 추려야 하는데, 어떤 작물을 심을 목적이 중요합니다. 거기에 맞춰서 ‘니드호그’도 농업 플랜트를 그 작물에 맞춰서 만들게 될 테니 말이죠.]
“보자. 목적부터 좁혀서 보자. 우선 항생제랑 진통제?”
[항생제라면 일단 ‘히드라’의 공정 설비 업그레이드로 해결 가능합니다. 더불어 관련 약품 제작으로 더 확대할 수 있으니 이쪽은 필수입니다. 진통제의 경우 우선 구하기 쉬운 원료인 버드나무를 정제하는 쪽이 좋을 테니 수목원이 필요하겠군요. 다만 버드나무는 자라는 데 시간이 걸리니 가져와서 옮겨 심는 걸 권장합니다.]
“으음... 그렇군.”
옮겨 심는 거야 [지크프리트 아머]가 사실상 중장비니깐.
기왕에 [수목원] 꾸린다면 또 도움이 될 나무들을 몇 개 더 가져오는 게 좋을 거 같았다.
그렇게 열심히 우리 깡통들과 토의하면서 40만 개로 모두 다할 수 없지만 우선순위도 정한다.
“맞다. 지금 할 건 아니지만 식량 재배도 생각하긴 해야 하는데... 쌀은 역시 무린가?”
[무리는 아니지만 여러모로 코스트가 문제죠.]
“그럼 감자는? 영화에서 보니깐 막 혼자 생존하기 위해서 감자 재배하던데.”
그 화성에서 한 남자가 낙오되어 살아남는 영화에서 본 거 같다.
본 계기는 채팅방에서 추천 받은 영화로.
우주 SF인가 싶어서 뭔가 했지만 막상 보니깐 우리 채팅방 주제에 알맞은 영화였던 것.
그거 보고 나니 감자에 대한 무한한 찬양이 나와서.
나중에 생존하게 되면 꼭 감자 재배해야지, 라고 생각했었다.
[감자도 나쁘지 않지만 생존용 작물로써는 고구마가 더 낫습니다.]
“고구마?”
[예. 우선 전분작물들 중에서 가장 물을 적게 요구하고, 껍질째 생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 스트레스 많은 아포칼립스 생활은 노화와 질병에 노출되기 쉽기에 감자에 비해 항산화물질이 많아서 고구마가 더 생존에 유리합니다. 또한 식이섬유도 많아서 변비 예방에도 좋으며 전분이 천천히 당으로 변하기 때문에 당뇨, 비만 환자에게도 유리하죠.]
“어, 어어. 그래? 달달해서 오히려 고구마쪽이 더 해로운 줄 알았는데?”
[또한 고구마 줄기 또한 식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고로 감자보다는 고구마 쪽이 생존에 더 유리한 식품입니다.]
“그야말로 갓구마네.”
[물론 인구부양력은 쌀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나중에 지상에서 농업을 하시게 되면 쌀로 넘어가시는 게 좋습니다. 어디까지나 제한적인 자원을 가진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더 유리한 것뿐이니 말이죠. 또 칼로리라던가 다각적으로 생각해보면 감자라던가 밀도 좋은 식량입니다.]
“좋은 공부가 되었어.”
부가적인 지식 공부도 하게 되면서 나는 [지하 플랜트] 계획을 확립했다.
우선 ‘라돈’의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