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Chapter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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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6
Chapter 13
“일어나, 클로딘.”
자신을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에 클로딘은 으음, 하고 나직한 신음성과 함께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목소리의 주인이 카일이라는 것은 이미 알아차렸지만, 눈을 뜨면 이 따스한 온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그녀는 일부러 몸을 한 번 뒤척이며 카일의 품속으로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진짜 잠꾸러기라니까.”
카일이 입꼬리를 한껏 올리며 웃었다. 제 품에 안겨 있는 클로딘이 마치 아기 고양이처럼 느껴졌다.
“더 자고 싶어?”
“…….”
클로딘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코끝에서 새근거리는 숨소리만이 간헐적으로 들려올 따름이었다.
‘앞으로 10분은 더 이러고 있어야 하나?’
그녀와 함께 야영한 적이 여러 번이었기에 그는 그녀의 잠버릇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잘 못 뜨는 편이라는 사실도.
‘그래도 이렇게 나한테 안긴 채로 편안하게 자는 걸 보니까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데.’
클로딘이 그만큼 날 신뢰한다는 의미일 테니까.
그때 조용한 노크 소리와 함께 하녀 한 명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카일을 향해 아침 인사를 올리려다 말고 멈칫했다.
“쉿.”
카일이 검지를 입술에 대며 조용히 할 것을 지시한 탓이었다. 이어서 카일은 나가 보라는 손짓을 했고, 하녀는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클로딘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카일은 그녀의 머리칼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며 가벼운 장난을 쳤다. 계속 이러고 있으면 한두 시간은 훌쩍 지나가 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도 오늘 할 일을 생각하면 슬슬 일어나긴 해야지.’
이 정도면 충분히 기다려 주기도 했으니까.
카일은 그녀의 귓가에 대고 입바람을 가볍게 후우, 불었다. 그러자 클로딘이 으음, 하면서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이미 일어나 있었네.”
“…….”
“이제 일어나자. 오늘 하루도 알차게 보내야지.”
“……네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한 클로딘이 그제야 눈꺼풀을 서서히 밀어 올렸다. 이어서 두 사람은 상체를 일으켰다.
클로딘은 입을 가린 채 하품한 다음, 손으로 눈두덩을 문질렀다.
“좋은 아침이에요, 전하.”
“좋은 아침이야, 클로딘.”
클로딘은 카일을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연인과 함께 맞이하는 아침이 이토록 행복할 수가 있다는 깨달음이 그녀의 가슴 속을 따뜻하게 채워 주었다.
“이제 부끄러워하진 않네.”
“부끄러움보다 행복감이 더 커서요.”
“나도 그래.”
카일이 그녀를 따라 입술을 부드럽게 휘며 웃었다. 그러면서 그는 클로딘의 말랑한 볼에 입술을 가볍게 갖다 대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아니면 저 앵두처럼 탐스러운 입술을 탐해도 좋고.
‘이미 가벼운 키스도 해 봤으니까.’
“클로딘. 오늘도 날씨가 좋지 않아?”
카일은 곧바로 실행에 옮기기로 하고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클로딘은 곧바로 창밖을 향해 눈길을 던졌고, 가벼운 탄성을 자아냈다.
“그렇네요, 전…….”
쪽.
카일의 입술이 그녀의 볼에 기습을 가했고, 클로딘이 어깨를 한 번 흠칫했다. 그러고는 카일을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놀란 토끼처럼 큼지막하게 뜬 눈을 마주한 카일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놀랬잖아요…….”
“그래서, 싫었어? 아님, 좋았어?”
카일이 장난스레 이죽거렸다. 클로딘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즉답했다.
“그야 좋았죠.”
“역시 그럴 거라 생각했어.”
이어서 카일이 그녀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난 언제쯤 네게서 키스를 먼저 받아 보려나?”
“그건…… 글쎄요…….”
클로딘이 말꼬리를 흐리며 카일의 눈길을 슬쩍 피했다. 여전히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모습에 카일은 또다시 볼에 입맞춤하고픈 충동을 느꼈으나 참아 냈다.
이 즐거움을 좀 더 천천히, 오래 누리고 싶었으니까.
* * *
그들은 코니드와 함께 다이닝 룸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전하.”
“응?”
코니드의 부름에 카일은 포크를 내려놓고 시선을 슬쩍 돌렸다.
“아침부터 하녀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그래?”
카일이 되묻자 클로딘 역시 샐러드를 먹다 말고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다.
“뭔데?”
“전하께서 클로딘과 함께 한 침대에서 아침을 맞이하셨다고요”
“……!”
클로딘이 눈을 휘둥그레 떴고.
“아아, 그 얘기였구나.”
카일은 소문의 진원지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아마도 자신을 깨우러 들어온 그 하녀의 입에서부터 퍼지기 시작한 것이리라.
하지만 카일은 아무렴 어떠냐는 쪽이었다. 연인이 된 마당에 한 침대에서 자는 것도 못 하면 말이 되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정작 어젯밤에 클로딘이 함께 자자는 말을 꺼냈을 때만 해도 카일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심장이 쿵쿵거렸지만 말이다.
하룻밤 새에 올챙이 적 일은 떠올리지 못하게 된 그였다.
한편 클로딘은 놀람과 함께 의아함을 느꼈다. 대체 언제 어떻게 그런 소문이 난 거지?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그녀는 카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전하. 솔직히 이렇게나 진도가 빠르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아, 후작. 절대로 후작이 생각하는 그런 일은 없었으니까 안심하라고.”
카일이 손을 내저었고, 클로딘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러자 코니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었나요?”
“그냥 껴안고 잤을 뿐이야.”
“그게 그거 아닌가요?”
“아니라니까. 말 그대로 안은 채로 잤다고.”
“전하. 제 앞에선 솔직하게 얘기하셔도 됩니다.”
클로딘은 두 사람의 대화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카일도 갑갑하다는 듯 제 가슴을 손으로 툭툭 때렸다.
아무래도 자신이 나서야 할 때인 것 같았다.
“정말이에요, 후작님.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정말로?”
“네.”
클로딘이 머리를 주억거렸고, 그제야 코니드가 믿는 기색을 보였다.
“내가 말할 땐 믿어 주지도 않더니만, 쯧.”
카일이 대놓고 불만을 표하자 코니드가 빙그레 웃었다.
“아무튼 서로를 아껴 주며 예쁜 사랑하시길 바라요, 전하. 클로딘 너도 노력하고.”
“그래야지.”
“네, 후작님.”
후작의 잔소리 같은 덕담을 마지막으로 그들은 식사를 재개했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나서 후식으로 시원한 음료가 올라왔다. 카일은 음료를 한 모금 머금고 나서 코니드에게 어젯밤 위벨리안이 보고한 내용을 공유했다.
“쉐도우가 개입할 정도라면 황실과 무언가 결탁한 것은 확실한 듯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래서 오늘부로 공작령 곳곳에 우리 애들 좀 심어 두려고.”
“그렇게라도 해야 자그마한 정보라도 캐낼 수 있을 거예요.”
카일의 발언에 클로딘이 첨언했다. 코니드는 동감한다는 의미로 머리를 한 번 끄덕였다.
“그런데 전하. 황실 쪽의 정보도 캐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맘 같아선 그러고 싶긴 한데, 쉐도우 놈들이 상주하고 있을 테니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게다가 우리 애들 대부분 에르힘에 머무르고 있기도 하고.”
“조만간 이쪽으로 불러들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래야지.”
카일은 홍차를 몇 모금 더 들이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를 본 클로딘 역시 찻잔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후작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며 다이닝 룸을 벗어난 그들은 카일의 방으로 향했다. 카일은 책상 앞에 앉자마자 위벨리안 앞으로 임무를 지시하는 쪽지를 작성한 다음, 전서구를 통해 전달했다.
클로딘은 그의 옆에 서서 일련의 과정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제 신전으로 슬슬 출발해 볼까.”
“네, 전하.”
두 사람은 손을 맞잡은 채 밖으로 향했다.
* * *
“마마. 현재까지 어린아이 총 15명을 납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렇군.”
별궁에 있는 황태후의 방에서 레이시아는 쉐도우의 단장인 탈로스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그 내용이 썩 만족스러웠기에 그녀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마을 분위기는 어떻지?”
이 질문을 던진 이는 옆에 있던 레체프였다.
“정체 모를 납치범의 소행이라며 두려움에 떠는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저희의 존재를 알아챌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예, 폐하.”
레체프의 말에 탈로스가 머리를 더욱 깊이 숙였다.
“아이들의 상태는 어떤가?”
“매우 두려워하고 대부분 울고 있습니다.”
“흐음…….”
답변을 들은 레이시아가 나직한 신음성을 내며 턱을 괴었다. 아이들이 고통스러워한다는 보고를 받았음에도 그녀는 차가운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가둬 놓을 동안에는 최대한 잘 먹이도록. 나중에 다 쓰임이 있으니.”
“예, 마마.”
레이시아가 축객령을 내렸고, 탈로스는 곧바로 방을 나섰다.
“오랜만에 또 공작저에 한번 가 봐야겠어요.”
레체프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자 레이시아의 시선이 그를 한차례 훑어보았다.
“왜요?”
“공녀를 만나러 가는 게냐?”
“그야 당연하죠. 공작은 잘하고 있는지 겸사겸사 확인도 하고요.”
“안 그래도 요즘 공녀의 컨디션이 괜찮은지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잘 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