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엘리온 4권
지은이 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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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엘리온
1. 블랙 드래곤
   시 레이크Sea lake는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와 대륙 중앙에 위치한다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하여 지질학자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되어 왔다.
논란의 핵심은 시 레이크가 바다냐 호수냐 하는 점이었다.
바다라고 주장하는 측은 시 레이크를 채운 물이 염분이 포함된 바닷물이라는 것과 시 리버를 통해 북해와 남해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해협이라 하였고, 호수라고 주장하는 측은 시 레이크의 물이 바닷물보다 염분의 농도가 낮고 시 리버 또한 대륙의 여타 강처럼 구불구불 이어져 있으며 강폭이 평균 10킬로미터에 불과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수천 년 전부터 시작된 논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지질학자들이 바다냐 호수냐를 두고 논쟁을 했다면 위정자들은 시 레이크를 차지할 목적으로 전쟁을 했다.
시 레이크는 선박을 이용하면 대륙 어디든 갈 수 있어 군사적으로 중요할 뿐 아니라 풍부한 수산 자원으로 인해 누구든 탐을 낼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시 레이크를 두고 가장 격렬한 전쟁이 벌어졌던 시기는 3백 년 전 카이사르 제국 건국 때였다.
‘트라이던트 워’에서 승리를 거둔 렉산더 카이사르 황제는 시 레이크에 욕심을 둔 듯 호수 북서쪽 히밍레바에 수도를 정하고 해군을 증강했다. 그리고 제위 30년, 75세의 노구를 이끌고 수백 척의 전함을 시 레이크에 띄웠다.
카이사르 제국 해군의 첫 제물은 시 레이크 동쪽에 위치한 중소 왕국들이었다. 카이사르 대제는 디오나 신성 제국이 아닌 중소 왕국들을 먼저 공격한 것이었다. 헬라일 왕국이 점령되고, 이어 사르딘 왕국, 챠크 왕국까지 무너지자 디오나 신성 제국 황실은 다급해졌다.
시 레이크 호수 동편 중소 왕국들이 무너지면 그다음은 그들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디오나 신성 제국은 해군을 출병시켜 카이사르 제국군을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트라이던트 워’에 이은 ‘시 레이크 워’라고 불리는 전쟁은 그렇게 막이 올랐다.
시 레이크 전역에서 수많은 전투가 치러졌고, 수만 명의 병사들이 수장됐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전쟁은 의외의 사건으로 2년 만에 끝이 났다. 슈더빌 왕국을 공격하던 카이사르 대제가 노환으로 쓰러진 것이다.
최고의 권력자인 황제가 쓰러지자 카이사르 제국 황실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암투로 혼란에 휩싸였다.
결국 국내 문제로 인해 전쟁을 지속할 수 없게 됐고, 정벌했던 왕국은 물론이고 시 레이크에서조차 병력을 철수하게 된다. 2년 동안 이어졌던 전쟁은 명목상 디오나 신성 제국의 승리로 끝이 난 것이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거쳐 치러진 전쟁이었지만 ‘시 레이크 워’는 대륙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곳은 카이사르 제국의 공격을 받았던 중소 왕국들이었다.
전쟁을 치르면서도 연합국 창설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던 10개 왕국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쿠란 왕국의 수도 라자에서 세렌느 연방이라는 연합국가를 탄생시켰다.
10개 왕국이 그렇듯 빠르게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전쟁 후 이어질 협상 때문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시 레이크 소유권을 두 제국에 헌납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그들을 뭉치게 하였고, 역사적인 합의에 이르렀다.
‘라자 합의’라고 불리는 그 합의로 인해 대륙은 디오나 신성 제국, 카이사르 제국, 세렌느 연방의 3국 체제가 됐고, 각국의 대표는 시 레이크 중앙에 위치한 코어 아일랜드Core island에 모여 협의를 시작했다.
그 협의 결과 시 레이크에 대한 소유권이 정해졌는데, 포이돈 군도 남쪽은 디오나 신성 제국의 영해로, 북쪽은 다시 동서로 나누어 동쪽은 세렌느 연방 영해로, 서쪽은 카이사르 제국 영해로 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협상이 끝난 게 아니었다.
그 협상의 가장 큰 쟁점은 시 레이크 중앙에 위치한 포이돈 군도였다. 1천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포이돈 군도는 군사적으로 최고의 요충지였기에 누구나 탐을 낼 수밖에 없었다.
무려 6개월 동안 협의를 했지만 격론만 오갔을 뿐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3국은 코어 아일랜드를 중심으로 동서 20킬로미터 남북 80킬로미터를 어떤 국가의 소유도 아닌 공동 구역으로 남기기로 하고 협의를 끝냈다.
오늘날 포이돈 군도가 자유 지역으로 남은 이유가 바로 3국 협의의 결과였다.
도센Dosen.
룬가르드 산에서 북동쪽으로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조선업의 도시이면서 카이사르 제국 최대 항구도시다.
룬가르드 산을 떠난 아이런 일행이 도센에 도착한 것은 8월 말이었다.
그들은 가장 먼저 시장을 찾았다. 크라베이더 영지로 가는 동안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서였다.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요?”
아이런은 뒤를 따르고 있는 루이스를 향해 물었다.
시장 안쪽은 발을 디디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였다.
“도센항은 시 레이크 주변 3대 항구의 한 곳이면서 카이사르 제국 해군기지가 있는 곳입니다. 주둔하고 있는 해군까지 합치면 인구는 40만 명이 넘습니다. 게다가 오늘은 시장이 서는 날이고요.”
“말투가 영…….”
아이런은 루이스를 빤히 보았다.
일루전 아일랜드를 떠나면서 루이스의 말투가 갑자기 공대로 바뀐 것이다. 전처럼 편하게 하라고 몇 번이고 말했지만 루이스는 듣지 않았다.
“거슬리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나홀 저분들처럼 편하게 대해 주시면 됩니다.”
루이스는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게 쉽게 돼요?”
“원래 좀 뻔뻔한 성격이라고 알고 있는데, 아닙니까?”
“아무튼 난 불편해.”
아이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홀을 보았다.
“배를 수리할 목재를 구해야 합니다.”
“수리할 곳이 많아?”
“절반 정도는 갈아야 합니다.”
“수리 비용도 만만치 않겠네?”
“5천 골드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배는 얼마 주고 구입했는데?”
“1만 골드 줬습니다.”
“사기당한 거 아냐?”
“직접 보면 그런 소리가 나오지 않을 겁니다, 도련님. 군터 이놈이 전직 목순데 보물이랍니다.”
“보물?”
아이런의 시선이 군터에게 옮겨 갔다.
“선저와 뼈대를 비롯한 주요 부위는 새 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깨끗합니다. 그 정도 배를 1만 골드 주고 샀다는 건 공짜나 다름없습니다.”
“정말?”
“절 믿으십시오, 도련님.”
“갑자기 궁금해지네. 너희들은 준비할 거 없어?”
아이런은 이푸파와 아크리안을 돌아보았다.
“묻어가는 주제에 준비는 무슨. 우린 포크와 나이프만 준비해 주면 돼.”
이푸파가 고개를 젓자 아크리안은 침묵으로 동의했다.
“그럼 1만 골드짜리 배가 어떤지 보러 갈까?”
“제가 모시겠습니다.”
푸른 오크로 불리는 캐논이 앞으로 나섰다.
“나홀은?”
“저는 군터와 함께 나무를 사서 돌아가겠습니다. 나무는 화물선으로 싣고 갈 겁니다. 말도 그 배에 싣고 가겠습니다.”
나홀은 뒤편에 있는 말을 가리켰다.
“알았어. 각자 할 일을 끝내고 배로 오도록 해.”
아이런은 몸을 돌렸다.
시장을 떠난 아이런 일행은 도센항 동쪽에 있는 선착장으로 향했다. 3킬로미터가량 걸어가자 시야가 확 트이며 수평선이 나타났다.
아이런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눅눅한 바람에 실려 온 바다 냄새가 온몸을 적시는 듯했다.
그는 시선을 끌어당겨 선착장을 보았다. 선착장에는 크고 작은 어선 수십 척이 정박해 있었다.
그중 큰 배 1척이 눈에 들어왔다. 전체가 검은색인 그 배는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눈에 띄었다. 선착장에서 가장 큰 배라는 사실 때문은 아니었다. 마치 초침이 돌아가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처럼 위험한 기운이 배에서 감지됐다.
“혹시 저놈은 아니겠지?”
아이런은 캐논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캐논은 자랑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했다.
“배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고 산 거야?”
“카이사르 해군에서 사용하던 전함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퇴역해 해체를 기다리고 있던 배라서 싸게 판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영주님이 사 오라고 하셨던 배가 저 녀석입니다.”
“아버지가?”
“네.”
“흠!”
아이런은 얼굴을 찌푸렸다.
잠시 배를 쳐다보던 아이런은 남궁우문을 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어때요?”
－배를 감싸고 있는 기운을 말하는 거냐?
“네.”
－귀기鬼氣다.
배를 살피던 남궁우문이 대답했다.
“귀기라고요?”
－마음이 포근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느냐?
“터지기 직전의 포탄을 보고 있는 것 같은데요?”
－첫 느낌은 그랬겠지만, 지금은 고향에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걸.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이런은 고개를 갸웃했다.
사부의 말처럼 위험한 느낌은 잠깐뿐이었다. 이내 그런 기분은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익숙한 기운이네요?”
아이런은 빙그레 웃었다.
－날 처음 만났을 때 그 기분이란 말이렷다.
“그래요, 사부.”
－귀혼마왕지체鬼魂魔王之體를 타고나서 그런 거다.
“그럼 저 배가 유령선이란 말이에요?”
－그건 가 보면 알겠지.
“유령선 맞습니다, 마스터.”
대답은 루이스 입에서 흘러나왔다.
“저 배를 알아?”
이제는 말을 놓기로 한 듯 아이런은 자연스럽게 하대를 했다.
“배 이름은 템피스트Tempest고 별명은 블랙 드래곤입니다.”
“폭풍우라…… 이름은 죽이네.”
“3백 년 전에 건조된 뱁니다.”
“지금 3백 년이라고 했어?”
아이런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비단 아이런뿐만이 아니었다. 남궁우문은 물론이고 배를 구입한 당사자의 1명인 캐논 또한 놀란 얼굴로 루이스를 보았다.
배의 수명은 길어야 30년 내외고, 마법이 걸렸거나 하는 특별한 경우에는 50년 정도로 늘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3백 년 전에 건조된 배라니.
루이스 말이 선뜻 믿기지가 않았다.
“사실은 저도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놈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50년 전이었답니다. 폭풍우가 심하게 치던 날 유령처럼 한센항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한센항은 어디지?”
“이곳에서 북쪽으로 1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항구도십니다. 지금은 조선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3백 년 전 ‘시 레이크 워’ 시기에는 그곳에서도 상당수의 전함이 건조됐습니다.”
“계속해.”
“배의 상태는 비교적 양호했는데 텅 비어 있었답니다.”
“아무도 타지 않은 배가 한센항으로 밀려왔다고?”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