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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생
1권
낯선잠 장편소설
동창생 1권
초여름
누구냐고 묻기에 나는,
‘동창, 중학교 동창이야.’라고 대답했다.
* * *
약 3개월여의 작업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저녁임에도 하늘은 여전히 쨍쨍하기만 한 그런 초여름에 어느덧 가까워져 있었다.
역시 봄이 일하기엔 더없이 좋다며 출근길마다 되뇌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대용량의 도배용 풀이 담긴 고무통에서 쉰내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는 계절을 벌써 맞이하게 된 것이다.
퇴근을 앞두고 팀 내 가장 막내로서 앞장서 무거운 짐들을 다 나르고 풀방 바닥을 정리하고 있자니 허공에 피어오른 작업 먼지들이 낮 볕 속에서 철없이 나풀대는 게 보였다. 눈꺼풀 앞에서 아른거리는 먼지를 털어 내려 한쪽 눈을 질끈 감아 버리자 이마에 맺혔던 굵은 땀방울이 그대로 주르륵 미끄러져 떨어졌다.
“수고 많았다.”
내 앞으로 와 발걸음을 멈춘 남자의 눈동자가 내 눈이 아닌 얼굴의 주변부부터 향했다. 그러고는 투박한 손길로 두어 번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어휴, 이 땀 좀 봐라.”
서로 일하는 팀이 달라 마주치는 일이 드물었는데 이번 작업에서 우연히 같은 팀으로 일을 하게 되어 3개월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팀장인 그는 직접 도배 작업을 하진 않는 터라, 하루 종일 한 공간에 묶여 일했던 현장 사람들과는 다른 이질적인 향기를 풍겼다. 그럼에도 거칠고 마디가 굵은 그의 손은 그가 현장에 꽤 익숙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 주고 있었다.
내내 떠돌던 더운 기운과는 상관없이 얼굴에 열이 올랐다. 다행히 남자는 날 별로 의식하지 않는 듯했지만 난 쉽사리 그와 눈을 마주치질 못했다.
“번번이 이거, 고마워. 막판에 하나 빠지는 바람에 다른 사람 몫까지 하느라 고생이 많았어.”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저야 일 많은 게 반갑죠.”
“이거 봐, 볼수록 요즘 젊은 애들 같지가 않다니까. 우리 이 군은 부모님이 참 뿌듯하시겠어.”
뿌듯해할 부모님 같은 건 이미 오래전부터 없었다. 나는 그냥 적당히 미소로 대꾸했다. 그는 말할 때마다 습관처럼 그 커다랗고 두툼한 손으로 내 어깨를 다독였다.
그 연배의 여느 남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외모였지만 세월이 묻어나는 나지막한 목소리, 무뚝뚝한 얼굴 속 세심한 눈길, 그리고 무심하게 뻗어 오는 사소한 손길 같은 것들이 그가 몹시 따뜻하고 다정한 속내를 가진 남자라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정함이 느껴질 때마다 괜스레 맥박이 바빠지고 행동이 어색해졌다. 그는 그런 내 모습을 그저 사내놈들 특유의 서툴고 무뚝뚝한 사교성 탓이라 여기는 것 같았다.
“아들들이 다 자네만 같으면 부모들은 걱정할 일 하나 없겠어.”
그리고 본인도 모르는 사이 또 둘 사이에 선을 죽 그었다.
그에게 있어 난 그저 곁에서 격려해 주고픈 아들뻘의 젊은 청년일 뿐이다. 나이 많은 베테랑들 위주인 노가다 현장에 뛰어들어 기특하게도 끈기 있게 일을 배우려 하는, 어림짐작하기로 사정이 안되어 보여 볼 때마다 마음이 가고 어른으로서 챙겨 주고픈, 그런 그저 어린 작업자일 뿐인 것이다.
건물 안에 드리워진 햇빛은 계절을 좇아 길어진 오후가 버거운 듯 창턱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버렸다. 현장 마무리도 다 된 터라 나만 정리를 마치고 나가면 이곳에서의 작업은 이제 끝이었다. 이제 한숨 돌리며 수당을 헤아리고 일주일에 단 하루뿐인 휴일을 맞이할 일만 남았다.
결코 닿지 못할 상대를 앞에 두고 외로워지려던 마음도 곧 평정을 찾아갔다. 매번 새로운 작업에 들어갈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장소와 사람들, 그중 내게 자상함을 나누어 준 사람이 지금 눈앞에 있는 팀장만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사실 감정이 샘솟으려 할 때마다 갈무리하는 일에도 이제는 익숙해진 참이었다.
때마침 팀장은 적절한 화제를 등장시키며 자연스레 대화를 끝맺어 주었다.
“참, 애기가 어린이집 다닌댔나?”
* * *
“아빠!”
어린이집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인데 창문에 얼굴을 거의 붙이다시피 대고 있던 녀석이 금세 날 알아보고는 빽 소리를 질렀다. 거의 다 왔다고는 해도 안과 밖의 거리가 있는데 진구의 목소리는 그런 것쯤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로 크고 또렷했다.
통통한 덩치만큼 목소리도 우렁찬 아이는 내가 대꾸할 새도 없이 우당탕탕, 친구들을 밀치고 문밖으로 달려 나왔다.
“어어, 그러면 안 돼. 친구 넘어지잖…… 어억!”
한쪽 무릎을 굽혀 두 팔을 벌리기 무섭게 내게로 돌진해 와서 퍽 소리가 나도록 안기는 아이가 넘어질세라 꽉 끌어안았다. 하루치 노동을 마치고 바로 온 터라 힘이 빠져 약간 비틀대긴 했지만 아직 끄떡없었다. 이제 겨우 다섯 살을 향해 가는 꼬마는 이 어린이집에서 제일 덩치가 큰 개구쟁이였다.
하루 종일 시달렸을 어린이집 선생님이 “진구야, 잘 가.” 하고 핼쑥해진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내게 매달려 키득대기 바쁜 녀석을 대신해 짧은 묵례를 한 뒤 아이를 힘주어 끌어안고서 곧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너 그렇게 인사 대충 하고 그러는 거 아니야.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하고 나와야지.”
“아빠, 아빠! 우리 버스 타?”
“응. 버스 탈 거야. 우리 진구 이번 주도 착하게 말 잘 들었으니까 버스 태워 주는 거야.”
버스 타는 걸 좋아하는 진구가 우와, 하고 눈을 반짝이며 들썩거렸다. 그 바람에 하마터면 아이를 떨어뜨릴 뻔했다. 물론 내가 진구를 떨어뜨릴 일은 절대로 없을 테지만.
하루가 다르게 힘도 점점 세지고 쑥쑥 자라나는 걸 보면 시간이 빠르게만 느껴지는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여전히 나만 보면 신이 나 안기고 매달리는 모습이 또 영락없는 아기 같아 마음이 벅차올랐다. 시끄럽고 활발한 성격이라 남들 눈에야 사고뭉치처럼 보이겠지만 콩깍지가 씌어서인지 내 눈에는 이 녀석의 모든 게 사랑스럽기만 했다.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들 때마다, 그리고 또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일깨워 주는 존재는 그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나는 그것을 진구를 통해 깨달았다.
버스가 도착하자, 내 목을 힘주어 끌어안으며 아이가 말했다.
“아빠 조아.”
사실 그것만으로 이 아이는 내게 평생 치 선물을 다 준 것이다.
유난히 고단했던 낮 동안의 작업, 더위를 잘 못 견디는 내게 닥쳐올 본격적인 여름, 얼마 전 정리해야 했던 낡을 대로 낡은 우리의 중고차, 이번 달부터 오른 월세, 그리고 언제 스스로 목을 조여 올지 모를 과거의 상처. 그리고 나는 평생 내가 원하는 사랑을 얻을 수 없다는 켜켜이 쌓인 먼지와 같은 걱정들이 열어 놓은 버스 창밖으로 나풀거렸다.
차창 밖 가로수마다 싱그럽게 초록이 우거져 가던 그때쯤, 아마 꽁꽁 숨겨 둔 기억 속의 화약 하나가 터질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극히 평화롭던 어느 순간을 노리고 말이다.
* * *
-…우리 작년엔가 하자 건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불려 다니느라 고생했던 그 건물 알지? 그 왜 정원 딸리고. 그 100개 이상 찝어 낸 부부 있었잖아. 그래, 그 부자 동네. 그때 그 건물 바로 근처야. 오면 딱 알아. 거기 외곽에 새로 올리는 건물인데 오늘 또 누가 말도 없이 일을 빠져 가지고 말이야.
일요일 아침부터 전에 몇 번 같이 일했던 적이 있는 팀장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왔다.
현장 작업자가 당일에 예고 없이 빠져 버린다고 해도 다른 동료들로 어떻게 수습을 하면 또 수습이 되는 게 도배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전화까지 돌리는 이유는 하나였다. 팀장의 생각에 그 상태로는 오늘 작업량을 다 마치지 못하리라는 판단이 든 것이 분명했다.
-거참, 요즘 놈들은 아니, 애도 아니고 군대까지 갔다 와서는 그냥 몸 쪼끔 힘들다고 툭하면 대책 없이 잠수나 타 버리고…… 걔가 이게 한두 번이 아니라니까. 내가 웬만하면 나온 사람들한테 일 몰아주려고 했는데 아니 김 반장 내외는 또 오늘 하필 둘 다 일찍 들어가야 한다네? 그래서 오늘 안에 끝내려면 허허…… 이거 참, 모처럼 주말에 쉬는 걸 텐데, 하필 여기 건물주가 오늘 또 보러 나온대잖아. 그래서 그런데, 어떻게 좀 생각이 있어?
생각이고 자시고 할 게 있나. 게다가 다른 지역으로 가는 일도 아니고 마침 지역 내이니 짐을 꾸릴 필요도 없었다. 모처럼 느긋하게 휴일을 맞아 진구와 바닥에서 뒹굴던 나는 고민 없이 일을 수락한 뒤 전화를 끊고서 머릿속으로 일당을 계산해 보고 부스스하게 몸을 일으켰다.
“가지 마.”
좀 전의 통화 소리에 깼는지 눈치 빠른 꼬맹이가 대뜸 팔을 잡아당겨 무방비하게 있던 몸이 다시 이불 속으로 무너졌다. 하룻밤 사이 또 힘이 세진 진구의 통통한 몸이 내가 못 움직이도록 아예 내 몸 위로 벌렁 누워 버렸다.
“야, 이진구. 너 닭강정 좋아하지? 내가 얼른 돈 벌어와서 닭강정 사 줄게.”
“…닭깡정?”
“떡 추가.”
떨어지긴 싫고 달콤한 닭강정과 떡 튀김은 먹고 싶고. 옷자락을 쥐고 고민하는 모양새가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고작 닭강정이랑 동급인가 싶어 서운하기도 했다.
“그럼 금방 오는 거지?”
“당연하지.”
머리를 슥슥 헤집자 벌떡 일어난 진구가 곧 자기 나름의 나갈 채비를 시작했다. 워낙 아기 때부터 할머니 집에 자주 맡겨져 지내다 보니 이제 내가 일이 있을 때 자기는 할머니 집에 간다는 걸 터득한 것이다.
빠르게 씻고 준비를 마친 뒤 아이 옷을 챙겨 나와 보니 자기 나름대로 옷에 모자까지 이미 챙겨 쓴 꼬마가 현관 앞에서 가방을 가지고 낑낑대고 있었다.
자동차, 캐릭터 볼펜, 레고 조각 몇 개, 인형, 클레이 장난감, 공룡. 다 이해가 가는데 내 낡은 회색 후디는 대체 어디다 쓰려고 집어넣는 것일까.
“이거 때문에 안 잠기네. 이것만 빼면 되겠다.”
옆에 쭈그리고 앉아 후디를 가리키며 훈수를 두는데 꼬마는 기어코 구겨 넣다가 영 안 되겠는지 결국엔 다시 가방을 열어 다 쏟아냈다. 그리고 순서를 바꿔 후디부터 시작해서 그 위로 하나하나 집어넣더니 최종적으로는 강아지 인형을 포기했다. 그러고는 간신히 지퍼를 채운 가방을 두드리며 후우, 하고 혼자 숨을 내쉬는 모습이 귀여웠다.
“이제 다 챙긴 거야?”
“응.”
하고 웃는 아이.
씩 마주 웃어 주고 같이 집을 나오는데 괜스레 코끝이 시큰했다.
강아지 인형과 내 후디는 우리 집 꼬마 녀석의 취침 필수품으로, 두 가지 다 진구가 아주 어린 아기 때부터 함께 해 온 물건들이었다. 특히나 저 회색 후디는 다른 곳에 맡겨질 때마다 불안해하던 아이가 늘 꼭 부여잡고 놓질 않던 것이었다. 다 낡아 보풀이 일고 이제는 입는 용도가 아예 불가능해진 지경이지만 그 옷은 아기 때 진구를 업어 재울 때 내가 자주 입었던 것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던 사진 하나가 떠올랐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 사진 속 아빠와 단둘이 찍은 모습은 이제 내 기억 속에만 남아 있었다. 하필이면 유일한 사진이 없어진 탓에 지금은 기억에 의존해서만 아빠를 그려 낼 수가 있다.
진구에게만큼은 그런 존재로 남고 싶지가 않았다. 비록 진짜 아빠는 아니지만 나는 그 곁에서 영원히, 아이가 이제 필요 없다고 말할 때까지 옆에 있어 주겠다고, 속으로 또 한 번 다짐했다.
* * *
답답하게 집 앞을 가리고 있는 낡은 포장마차의 천막을 지나쳐 현관문을 두드렸다.
스물일곱의 아들을 두었다기엔 너무 젊고 그렇다고 다섯 살 난 아들을 두었다기엔 너무 찌든 눈을 한 40대 여자.
“엄마, 저희 왔어요.”
그녀는 나를 스무 살쯤에 낳았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이리저리 전전하기만 하고 한 번도 정착한 적 없는 삶을 살아서인지 그녀는 늘 어딘가 덧없고 산만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런 그녀에게 선뜻 다가온 건 오직 남자들뿐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엄마는 예뻤다. 아마도 나를 가졌던 열아홉 나이 때도 그랬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한없이 헤플 수가 있는 것이다.
방바닥에 술병 하나가 굴러다녔다. 굴러온 방향을 쫓아가 보니 벽을 따라 일렬로 세워진 다른 빈 병들도 보였다. 재떨이에 걸쳐 둔 담배를 집어 들다가 엄마가 멈칫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까닭이었다.
“아휴, 그래. 안 피워, 안 피워. 됐지?”
“……늦어도 여덟 시 전엔 올 테니까 그때까지만 좀 신경 써 주세요.”
아이를 맡기기엔 매우 꺼림칙했지만 달리 맡길 데가 없었다. 마루로 애만 들여보내고 난 밖에 선 그대로 바지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아이 가방과 같이 건넸다.
대뜸 봉투부터 빼 들고 바로 앞에서 열어 돈을 세며 엄마가 주절거렸다.
“애가 엥간히 유난스러워야지. 화장품 죄다 엎어 버리고, 놀이터 나가서는 그냥 애들한테 힘쓰고. 누굴 닮아 그러는지, 아휴. 쟤 보는 게 보통이 아니야.”
“……과자 같은 거만 먹이지 마시고, 신경 좀 써 주세요.”
돌아서는 마음이 영 찜찜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17년 만에야 처음 만날 수 있었던 어머니란 존재는 예상보다도 훨씬 큰 실망이었다.
아직 젊은 건 알고 있었기에 막연히 당연히 다른 누군가와 결혼했거나 같이 사는 모습 정도는 예상 범주 안에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시간이 흐르도록 시답잖은 놈들의 내연녀 노릇이나 하며 여전히 제대로 정착 못 한 삶을 살고 있을 줄은 몰랐다.
자기가 먼저 연락을 해 왔음에도 막상 나와 함께 살게 되자 엄마는 자식이란 존재를 불편해하고 어색해했다. 그리고 그 집에는 드나드는 남자들도 여전히 많았기 때문에 결국 얼마 못 가 따로 살고 싶다는 말을 꺼냈고 엄마는 더 묻는 법도 없이 자취방을 구해 주었다. 거기까지가 해 줄 수 있는 전부라는 양.
희미한 실망감은 있었다. 하지만 만일 누군가 ‘그래서 넌 구체적으로 엄마에게 바라는 게 뭔데?’ 하고 물어 오면 대답할 말이 딱히 없었다.
서로 기대가 없다는 건 서로에게 편한 것이기도 했다.
어영부영 스무 살이 넘어서도 살아가는 시늉만 했다. 이것저것 해 보려는 척, 배우려는 척 시도를 했지만 그 어느 것도 진득하게 붙잡고 있질 못했다.
군대는 내게 어떤 의미에서는 탈출구였다. 복무 기간 내내 찾아오는 이 하나 없이 쓸쓸하게 군 생활을 마쳤다. 당연한 일이지만 전역 날에도 날 마중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앞에서 엄마가 날 기다리고 있는 어색한 상황을 맞닥뜨리는 것보단 훨씬 낫다고 생각하며 나는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렇게 홀로 버스를 타고 익숙한 길을 걸어 도착한 집에도 엄마는 없었다. 자취방은 입대할 때 이미 계약을 다 끝내고 떠났으니 할 수 없이 엄마의 집으로 온 것인데 집은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비어 있을 뿐이었다. 아니, 집에 집주인이 없는 건 맞았지만 사실 집이 아주 빈 건 아니었다.
정리라곤 전혀 되어 있지 않아 화장품이고 얇은 슬립이고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어수선한 방 안에 덩그러니 있는 작은 아기.
낯선 성인 남자를 처음 보면 놀라거나 울 법도 한데 아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어린 아이는 접해 본 적이 없어서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저 아주 작고 한없이 약해 보였다. 그때 진구는 아마도 돌 무렵 정도였을 것이다.
아이가 있는 바닥에 작은 요가 깔린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어른의 외투였다. 대충 아기에게 그런 걸 덮어 재워 놓고 급히 나간 모양이었다. 그건 기저귀를 차고 말도 아직 못하는 아기가 얼마 동안인지도 모를 시간을 혼자 어두컴컴한 방에 있었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돌아서려다가 영 발이 떼어지질 않아 어쩔 수 없이 그 곁에 있기로 했다. 어차피 갈 데도 없는데 뭐. 아기가 여기 있으니 아기의 엄마도 곧 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날은 곧 저물었지만 아기의 엄마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물론 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불현듯 ‘혹시 내 동생인가’ 싶은 생각이 스쳤지만 이내 엄마가 아이라면 질색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임을 떠올렸다.
엄마는 매사 대책을 세워 가며 사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치명적인 실수를 두 번 할 사람도 절대 아니었다. 감정적인 사람이라 꼭 그만큼 겁도 많았기 때문이다. 자기 인생의 중대한 실수 그 자체인 아들을 곁에 두고 보아 온 게 몇 년인데 아무리 군대에 가 잠시 눈앞에 안 보인다고 그새 잊고 같은 실수를 또 하겠는가. 그리고 아기는 볼수록 엄마나 나와는 생김새가 달랐다.
한참을 골똘히 관찰하다 문득 허기를 느꼈다. 아기는 아까부터 손에 쥔 하얀 쌀과자 같은 것을 입에 우물거렸는데 이제는 그것도 질렸는지 옷에 문지르고 바닥에 팽개쳤다. 그때 문득 아기 근처에 뒹굴고 있는 작은 요구르트를 발견했다. 빨대가 꽂힌 채로 굴러다니는 요구르트는 이미 한참 전부터 비어 있는 듯했다.
“잠깐만, 금방 다시 올게.”
나는 집을 나와 편의점으로 향했다. 혼자 두면 안 된다는 생각에 급하게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기는 같은 곳에 가만히 있었다. 아마 내가 아기를 발견하기 전에 이미 돌아다닐 만큼 돌아다녀 지쳐서 앉아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제야 애초에 어질러져 있던 집 안 상태가 아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고 짐작했다.
“자.”
우유를 사 오긴 했지만 혹시 탈이 날까 겁이 나 일단은 아기가 먹고 있던 것과 같은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아 내밀었다. 그리고 그 요구르트를 고분고분 두 손으로 받아 쥐는 아기의 말랑하고 연약한 손의 감촉에 나는 순간 몸이 굳어 버렸다. 이상하게 마음속이 저릿했다.
살짝 겹쳐진 손을 빼지도 못하고서 그대로 아이가 빨대로 요구르트를 빨아 마시게 내버려 뒀다. 작은 몸은 요구르트를 쪽쪽 빨아먹는 호흡을 따라 같이 들썩였고, 목이 말랐던지 요구르트는 금세 바닥이 나 버렸다. 하나가 아니라 한 줄을 사 온 게 다행이었다. 졸려 꾸벅대기 시작하는 아이를 내게 기대게 해 잠을 재웠다.
엄마가 돌아온 건 밤이 깊어진 뒤였다. 술에 취한 상태로 다른 여자 한 명과 같이 왔는데 나에 대해선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둘이 흥분해 나누는 대화를 주워들으며 나는 대략적인 전모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엄마에게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이복언니가 한 명 있었고 열아홉 살 때 엄마가 집을 나온 뒤로 자매는 거의 절연하다시피 사는 중인데, 그 언니의 딸인 조카와는 오히려 나이가 비슷해 여태 연락하며 친하게 지낸 모양이었다. 대충 듣기로는 같이 노래방에서 일도 하고 그랬던 듯한데 조카가 어느 날 갑자기 엄마에게 돈을 빌리더니 노래방 손님과 달아나 버렸다는 것이다.
조카는 유부녀였기 때문에 당장에 그 집으로 엄마가 쳐들어갔는데 집에는 달랑 아이만 남아 있었고 아무리 수소문해 봐도 달아난 조카를 찾을 길은 요원해 보였단다. 그 남편이란 작자마저 이미 진작에 다른 여자와 나가 사느라 전화를 안 받고 ‘그래도 설마 지 자식새끼는 나중에라도 찾으러 오겠지’ 싶어, 이를테면 빚에 대한 볼모 격으로 아이를 데려왔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대책 없이 남의 애를 데려오면 어떡해요?”
“시끄러, 이 새끼야. 오죽했으면 그래. 에이, 썅, 그 드러운 연놈들…… 하, 그래도 지들이 사람이면 갓난쟁이 자식새낀 안 버리겠지.”
하지만 아이를 찾으러 올 기색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엄마는 또 새로운 남자가 생겨 떼인 돈에 대한 관심이 슬슬 멀어져 가고 있었다. 쉽게 분노하고 쉽게 또 사그라들고. 그녀는 돈도 남자도 오래도록 품는 법이 없었다.
‘지들이 사람이면 자식새낀 안 버리겠지.’
나는 다른 것보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너무 우스워 얼굴에 아무 표정도 지어낼 수가 없었다.
얼마 안 지나 엄마가 아이를 보육원에 데려다 놨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애엄마의 친정에서도 또 딴살림을 차린 애아빠 쪽에서도 나 몰라라 하는 판인데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쉽게 수긍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생각이 났다. 보통은 약이나 모으고, 손목이나 내려다보고, 문틈이나 천장을 살피며 수천 가지 자살 방법들을 검색해 보며 보낼 시간에 나는 자꾸 아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문득 손을 바라보았다. 손끝에는 그때 처음으로 느꼈던 통통하고 연약한 작은 손의 감촉이 아직 남아 있었다. 세상을 아직 많이 담아 보지 못한 맑고 까만 눈동자가 여전히 어두컴컴한 방 안에 홀로 있을 것 같단 생각에 미치자 가슴팍이 또 조여드는 듯했다.
불쌍했다가 의구심도 들었다가 어떤 때는 갑자기 솟구치듯이 화가 나기도 했다. 부모가 내팽개친 아이는 다시 버려져도 어쩔 도리가 없나. 그럼 그 아이는 앞으로 몇 번이고 계속 버려지기만 해도, 애초에 부모부터가 버렸으니까 정말 어쩔 수 없다는 건가. 그런 법이라도 있냐고.
화가 난 내 발걸음은 충동적으로 아이가 있는 보육원으로 향했다. 아이는 날 보자마자 방긋방긋 웃었다. 한 달도 안 되는 그사이 좀 큰 듯했다. 걱정과 달리 아직 그늘이 드리워지지 않은 그 해맑은 얼굴에 안도를 느껴 오히려 내가 울고 싶을 정도였다. 마치 올 줄 알았다는 듯이 환히 웃으며 답싹 안기는 작은 몸이 못 견디게 사랑스러웠다.
다시 아이를 데려온 걸 알았을 때 엄마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사실 내 행동이 엄마에게 지난날에 대한 조금의 죄책감이라도 자극하길 바랐던 것도 같다. 하지만 엄마는 무덤덤했다. 역시 예상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실망은 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각오를 하고 아이를 데리고 왔다 해도, 육아는커녕 결혼한 경험도 없는 어린 남자가 홀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쉽지 않았다. 어린이집에 보내고 일 외에 모든 시간을 내가 쏟아붓고 아무리 촘촘히 계획을 짜도 꼭 예기치 않게 어딘가에 맡겨야 할 일들이 생겼다. 그리고 내게는 찾아갈 곳이 한 군데밖에 없었다.
엄마가 내게 보여 준 부모로서의 애정이란 건, 내 계좌에 남겨진 할머니의 돈을 건드리지 않은 것과 애를 맡길 때 단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이다. 하지만 나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지난 기억이 겹쳐 한층 더 씁쓸해진 마음으로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진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난 뒤 천막을 빠져나왔다. 예전엔 온 동네가 떠나가라 울어 재끼던 아기였는데 부쩍 요즘 들어 이별이 수월해졌다. 자라는 것이라면 반갑지만 필요 이상 일찍 철이 들어 버리는 것이라면 좀 많이 안쓰러운 일이었다.
* * *
정오 무렵이 슬슬 가까워지자 선선했던 아침나절과는 판이하게 뜨거운 한낮의 볕에 사람들은 더 빨리 피로감을 느꼈다. 벽지에 영향이 갈까 히터건 에어컨이건 함부로 틀 수도 없는 작업 현장에 이미 수년간 익숙해진 베테랑들은 묵묵히 땀을 닦으며 쿨토시를 찬 팔을 기계처럼 움직였다.
보통 건설 현장의 작업자들은 주로 함바식당을 이용하는데 오늘 온 곳은 개인 소유의 건물이라 그런지 앞에 무슨 식당으로 가면 된다는 소리를 어깨 너머로 전해 들었다.
그 소식은 나에게도 반가운 것이었다. 오늘은 그래도 밥다운 밥을 먹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진구와 통화하는 일이었다. 일할 땐 일에만 집중하자란 마음으로 열심히 움직였지만 결국 내내 진구 생각만 했다. 도배라는 일이 그랬다. 홀로 정해진 공간 내에서 정해진 내 작업량을 스스로 소화하는 작업이다 보니 그 혼자인 공간 속으로 상념들이 침투하는 것은 너무나 쉬웠다.
진구 뭐해요?
말썽 많이 부려요?
가방 주머니에 간식 있어요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