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목차
Chapter 6
Chapter 7
Chapter 8
Chapter 9
Chapter 10
Chapter 6
신전의 내부는 온통 새하얬다. 대륙 각지의 판테온이 다 이렇긴 하지만, 제도의 판테온은 그 규모나 구조 면에서 더욱 웅장하고 성스러운 느낌이었다.
“자, 이쪽으로 오시지요. 대사제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역으로 나온 고위 사제를 따라 로비를 통과해 회랑에 들어서자, 바깥에선 볼 수 없는 은밀한 후원의 정경이 나타났다. 겨울이라 꽃은 피어나 있지 않지만, 사철 푸른 회양목이 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미로 정원으로 통하는 길목인 듯 보이는 덩굴장미 아치를 유심히 살펴보는데, 잡힌 손에 꽈악 힘이 가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움찔한 바네사는 인상을 찌푸리며 옆을 돌아보았다. 예상대로, 위르겐이 그녀를 빤히 주시하고 있었다. 다분히 한심하게 여기는 듯한 눈빛으로.
그에 어김없이 욱한 바네사는 시비를 걸듯이 따졌다.
“뭐지? 할 말 있어?”
“똑바로 앞을 보고 걸어라. 판테온까지 와서 우스꽝스럽게 넘어지고 싶지 않으면.”
“나라고 넘어지고 싶어서 넘어지는 줄 아나? 마가 낀 것처럼 운이 더럽게 나빠서라고.”
“……그 지경인데 여태 잘도 살아남았군.”
그리 읊조리는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그게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 보던 바네사는 여태 잊고 있던 기억을 퍼뜩 떠올렸다. 위르겐이 그녀의 불운에 관해 ‘저주’ 운운했던 것을.
‘……하도 정신이 없다 보니 잊고 있었어.’
아르노에, 사스키아에, 데클란까지…….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일들이 산더미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앞서 걸어가는 황제와 그의 친위대, 그리고 고위 사제를 흘끗 훔쳐본 바네사는 내친김에 물어보자는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공작, 전에 그대가 내 불운을 두고 저주라고 했던 거 같은데,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좀 설명해 주지 그래?”
“…….”
그런 바네사를 조용히 응시하는 위르겐의 얼굴은 짜증이 날 정도로 무표정했다. 바네사는 지긋지긋함을 억누르면서 재차 질문을 꺼냈다.
“별 뜻 없이 그런 말을 한 건 아닐 거 아니야? 내 이 불운에 관해, 뭔가 알고 있지?”
“곧 도착이군. 입 다물고 조용히 있어라.”
“뭐? 이……!”
망할 자식이, 하고 이어지려던 욕설은 회랑 끝에 나타난 별관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목구멍으로 삼켜졌다. 때마침 흘끗 뒤를 돌아본 황제와 눈이 마주친 바네사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평정을 가장했다.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지만.
“어서 오십시오, 황제 폐하. 사흘 만에 뵙는군요. 그리고 드레이크 공……. 오랜만에 오셨군요. 자주 얼굴을 비쳐 주시면 좋을 텐데요.”
별관의 내부로 들어서자, 인자한 인상의 백발노인이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왔다. 바네사는 그가 입은 남청색 의복을 보고 이 노인이 바로 대사제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판테온의 사제복은 직위에 따라 회색, 하늘색, 파란색, 남청색으로 나뉘며, 그중 남청색을 입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대사제뿐이었다.
“필요할 때가 아니고는 판테온에 방문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용무도 없는데 제집처럼 드나드는 것은 공사다망한 사제들을 피로하게 할 뿐입니다.”
직전에 대사제가 건넨 말에 위르겐이 까칠하게 대답했다. 대사제는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는 듯 익숙한 기색으로 웃고는 입을 열었다.
“그럴 수도 있지만, 드레이크 공의 경우라면 이야기가 다르지요. 뷔스 신께서 아주 강력한 가호를 내리신 ‘권능 사용자’가 아니십니까. 사제들은 언제나 한마음 한뜻으로 드레이크 공을 경외하고 있습니다.”
그게 빈말이 아니라는 것은 대사제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드높은 자를 향한 동경과 경외심.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명료했으니까.
“가호를 받았다 한들, 저 역시 한낱 인간입니다. 아시다시피.”
“그야 그렇지만…….”
여전히 퉁명스러운 위르겐의 반응에 멋쩍게 웃던 대사제의 시선이 문득 바네사에게 닿아 왔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대사제는 “아!” 하고 낮게 탄식하더니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이거 실례 많았습니다. 로엔그린의 왕녀 저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니요, 저야말로…… 대사제님의 존안을 이리 가까이서 배알하게 되어…….”
지극히 영광이니, 어쩌고 하는 말을 더듬더듬 쏟아 내는 바네사는 조금 당황한 상태였다.
가호를 받은 위르겐이나 황제는 그렇다 쳐도,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자신을 대사제가 이렇게나 정중히 대해 줄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대사제는 대륙 곳곳에 있는 판테온의 총책임자로서, 성황의 뜻을 대리한다. 모든 판테온에는 각각 한 명의 대사제가 있으며, 보통 사람은 큰 행사 때가 아니고서는 얼굴조차 보기 힘들다.
그런 대사제가 먼저 스스로를 낮추며 깍듯이 대하자 바네사는 여러모로 혼란스러웠다. 그녀가 기억하는 라빈시아교의 대사제란 어딘지 냉엄하고 엄숙한…… 감히 옆에 다가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존재였으니까.
대사제의 이런 태도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게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데, 바네사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대사제가 말을 꺼냈다.
“왕녀 저하, 판테온의 갑작스러운 호출에 많이 당황스러우실 테지요. 지금부터 그 이유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판테온에서 자신을 호출한 이유…… 역시 불운 때문일까?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해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연히 긴장한 바네사는 마른침을 꼴칵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바네사를 보며 대사제는 의미심장하게 웃더니 말을 이었다.
“사실, 왕녀 저하께 신탁이 내려왔습니다.”
“예……? 신탁? 저에게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어안이 벙벙한 채로 눈을 마구 깜박거렸다.
신탁이라니? 나에게? ……왜?
“그…… 하지만, 저는…….”
바네사 역시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인간의 딸로 당연하게도 라빈시아교에서 세례를 받았지만, 그다지 독실한 신자는 아니었다.
기도도 내키는 때만, 원하는 게 있을 때만 했고 그 내용도 대체로 불미스러운 것들이었다.
본래 신탁이라 함은 인간의 간절한 기도가 신에게 닿았을 때 그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내린다고 들었다.
라빈시아교에서 주장하는 바로는, 기도를 올리는 인간의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해야만 신에게 닿을 수 있다나, 뭐라나…….
바네사에게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녀는 자신이 그동안 무슨 기도를 올렸었는지 되짚어 보았다……. 주로 데클란과 리로이에 관한 것으로, 그 두 놈이 제발 죽어 버리게 해 주세요, 하는 내용의. 아무리 생각해도 기도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그런 독기와 악의로 가득 찬 기도가 신에게 닿았을 리 없지 않은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무시당했을 게 분명한데…….
“저, 혹시 착오가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의문을 제기하자 대사제는 뭐가 웃긴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쩐지 민망해진 바네사가 어색한 미소를 입에 거는데, 대사제의 다정다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탁은 원래 갑작스럽게 내려오곤 합니다. 신탁을 받은 이들 중 대다수가 왕녀 저하와 같은 반응을 보이지요. 왜 신탁이 내린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우시겠지만, 신탁이란 본디 그런 것입니다. 저희 같은 미물이 어찌 감히 신의 뜻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음……. 그렇군요…….”
바네사는 여전히 얼떨떨한 기분으로 대답하며 시선을 이리저리 흩뜨렸다. 도대체 무슨 신탁이 내린 것인지는 몰라도, 자신의 인생에 대단히 극적인 변화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상황이 도무지 현실감이 없기 때문일까.
“자, 그럼 왕녀 저하께서는 저를 따라오시지요. 황제 폐하와 드레이크 공께서는 예배당에서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앞장서는 대사제의 뒤를 바네사는 조용히 따라갔다. 그러다 흘긋 돌아본 자리에, 위르겐이 석상처럼 고요하게 서서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한결같이 생각을 알 수 없는 표정과 눈빛.
바네사는 보란 듯이 그를 무시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짜증과 실망감, 영문 모를 울렁거림을 그저 흘려보내면서.
“저, 그런데…… 어느 신께서 신탁을 내리신 건가요?”
가장 중요한 질문을 깜빡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성전에 막 들어섰을 무렵이었다.
유리로 된 돔 형태의 지붕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아래, 라빈시아교에서 숭배하는 일곱 신의 조각상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왼쪽부터 차례로 프로네아, 룩스, 뷔스, 호라이, 비네아, 모르시나, 솜니우닐이었다.
일곱 신은 이 세계를 지탱하는 존재로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중요하지만, 그중 가장 최고로 꼽자면 역시 프로네아였다.
프로네아는 모든 영혼의 근원으로 세상의 섭리를 유지한다고 전해진다.
태양의 룩스와 광기의 뷔스는 쌍둥이 형제로 사이가 좋지 않고, 생명의 비네아와 죽음의 모르시나는 쌍둥이 자매로 서로를 깊이 아끼고 사랑한다.
시간의 호라이는 꿈과 장난의 솜니우닐이 치고 다니는 자잘한 사고들을 수습하느라 언제나 분주하다고 한다.
이렇듯 일곱 신은 각각 다른 영역을 맡아 관장하면서 세상을 보듬어 왔다……는 것이, 라빈시아교의 교리.
신을 본 적도,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는 바네사로서는 마치 동화와 같은 이야기이지만.
신이 존재한다는 분명한 증거― 가호와 성흔이 있기에, 신의 실존을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왕녀 저하께 신탁을 내리신 신은…….”
짐짓 말을 흐린 대사제가 일곱 조각상 중 하나를 신앙심 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바네사는 그의 시선을 따라 눈길을 옮겼다.
자신에게 신탁을 내린 신은, 바로…….
‘……비네아?’
생명의 신, 비네아.
비네아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보살피며, 또한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그 비네아가 관장하는 생명에 쇠락과 죽음을 가져오는 것이, 죽음의 신 모르시나의 역할.
그렇게 죽은 생명은 모르시나의 힘으로 부패하고 다시 세상의 일부가 되며― 영혼은 비네아에게 거두어져 새 생명을 얻어 부활한다.
생과 사는 그렇게 생명과 죽음, 두 신의 순환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바네사가 어렸을 적부터 지겹도록 들어온, 라빈시아교의 교리 중 하나였다.
‘비네아 신이 왜 나에게 신탁을……?’
신탁을 내린 신의 정체를 알고 나니 더욱더 의문일 수밖에 없었다.
비네아는 순수함, 고결함, 정순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신으로서, 비네아를 섬기는 생명의 신관들도 전부 그런 사람들뿐이라 들었다.
바네사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순수하다거나 고결하다거나 할 수 있는 성품이 전혀 아니었다.
자신의 성격은 좋게 말해 강단이 있고 포기를 모르며 끈질기다는 거였고, 나쁘게 말해 고집이 세고 사나우며 한 번 원한을 품으면 절대 잊지 않는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자신에게 비네아 신이 도대체 무슨 신탁을 내린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혹시 ‘착하게 좀 살아라’라는 내용의 신탁은 아닐까?
뚱하니 생각하는데, 파란 사제복 위에 하얀 허리띠를 두른 사제 한 명이 바네사에게 다가왔다.
흰색은 비네아의 상징이었으므로 이 사제는 틀림없이 생명의 신관일 터였다. 그는 바네사에게 하얀 백합 한 송이를 건네며 말했다.
“신을 영접하시기 전에, 간단한 정화 의식을 거치셔야 합니다. 이 꽃을 받으시고 이쪽으로 오십시오.”
대사제가 부드럽게 재촉하듯 웃었고,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 보인 바네사는 생명의 신관을 따라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다다른 장소는 비네아의 신상 바로 근처였다.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얀 대리석으로 조각된 신상에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것은 신성함 같기도 했고, 위압감 같기도 했으며, 모순적이게도 다정함 같기도 했다.
바네사는 비네아 신상의 두 눈이 자신을 사랑스럽게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미소 때문일 것이다. 모든 생명을 사랑으로 굽어살피듯이, 비네아의 신상은 무척이나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꽃을 심장과 가깝게 든 채로, 가만히, 눈을 감으십시오.”
생명의 신관이 지시했고 바네사는 얌전히 따랐다. 곧이어 정수리에 무엇인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성수가 아닐까 하고 바네사는 생각했다.
콧잔등을 따라 흘러내린 물방울이 입술을 스쳐 턱 끝에 맺혔다. 그 외에는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정화 의식이란 원래 이렇게 허무한 것일까 싶을 정도로.
“됐습니다, 이제 눈을 뜨셔도 됩니다.”
그 말에 따라 바네사는 천천히 눈을 떴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거의 끌어안다시피 하고 있던 백합꽃이 가장 먼저 시야로 들어왔다. 그런데, 하얀 꽃잎이 무슨 이유인지 거무죽죽하게 시들어 있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지?’
놀란 바네사가 눈을 휘둥그레 뜨기도 잠시, 생명의 신관이 백합꽃을 건네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바네사는 얼떨떨하게 눈을 깜박거리면서 꽃을 건네주었다.
바네사의 의문을 읽기라도 한 듯, 생명의 신관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설명해 주었다.
“왕녀 저하의 안에 있던 불순한 기운을 백합꽃이 흡수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갑작스럽게 시든 것이지요.”
“그…… 그렇군요…….”
……불순한 기운이란 게 대체 뭘까? 백합꽃은 무슨 원리로 그걸 흡수한 거고?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으나 일단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시시콜콜 캐묻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상대였으므로.
“마음이 홀가분해진 것 같다거나, 머릿속이 맑아진 느낌이 들지 않으십니까? 정화 의식은 그런 효과가 있지요.”
“음…….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뭐가 달라진 건지 체감할 수 없었지만, 실제로 꽃이 순식간에 시든 것을 보았으니 ‘정화 의식이란 게 진짜로 있구나.’ 하고 납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생명의 신관은 뿌듯한 기색으로 고개를 주억이더니, 시든 꽃과 성수를 한쪽에 치워 두고는 바네사에게 재차 지시했다.
“자, 그럼, 이 관을 쓰고 비네아 님의 신상 앞에 반듯이 서십시오.”
바네사가 순순히 몸을 낮추자, 신관은 그녀의 머리에 포도나무 가지와 잎사귀를 엮어 만든 관을 씌워 주었다.
포도나무와 그 열매는 마찬가지로 비네아의 상징으로, 비네아와 소통할 수 있는 성물로도 알려져 있었다.
“다음으로는 눈을 감으시고…… 두 손을 하나로 모아 잡으십시오.”
바네사는 라빈시아교에서 신에게 기도를 올릴 때 취하는 손 모양을 하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정말로 비네아 신이 나에게 답해 주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신관의 목소리가 잇따라 들려왔다.
“이제 마음속으로 간절히, 비네아 신을 불러 보십시오…….”
간절히……라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바네사는 최선을 다해 비네아 신의 이름을 불렀다.
그렇게 한 일곱 번쯤 불렀을까? 문득, 주변이 기이할 정도로 고요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바네사는 의아함에 인상을 찌푸리며 슬그머니 실눈을 떠 보았다. 바로 그 순간, 온갖 감각이 파도처럼 들이닥쳤다.
“……!”
가장 먼저, 푸른 숲의 정경이 시야로 들어왔다. 아주 오래 산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깊고 어두운 삼림이었다.
잇따라 숲이 담고 있는 갖가지 소리가 청각을 파고든다. 풀벌레 우는 소리, 작은 새의 지저귐, 바람에 잎사귀가 쓸리는 소리…….
마지막으로 후각. 생생한 풀 내음과 흙의 텁텁한 냄새가 코를 훅 찔러 왔다.
‘이게…… 뭐야?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바네사는 당황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지금, 어딘지 모를 숲 한가운데 있었다.
.jpg)
메뉴
로망띠끄
로그인
검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