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51화>
<152화>
<1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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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화>
<156화>
<157화>
<158화>
<159화>
<16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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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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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화>
<175화>
<151화>
인터폰에 비친 건 다름 아닌 친지엔이었다.
황봉준을 제외한 다른 인원들 모두 그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는 상태였고, 백명한이 직접 현관까지 나가 문을 열어 주곤 그를 맞이했다.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집까지 직접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을 텐데 어서 들어오시죠.”
친지엔의 옆엔 그의 경호원들로 보이는 검은 양복의 사내 둘도 함께 있었고, 친지엔은 들어오기 전 그들에게 뭐라 얘기한 뒤 집 안으론 홀로 입성했다.
친지엔이 오자 역시나 그를 가장 반갑게 맞이한 건 문청위였다.
“저 양반은 누구다요, 정 매니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얼굴인 것 같기도 하고…… 아주 그냥 포스가 장난이 아니구마잉.”
친지엔이 문청위, 그리고 정인호와 가볍게 포옹을 하며 인사를 주고 받는 동안 황봉준이 내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와 속삭이듯 물었다.
평소의 당당하던 모습과는 달리 요리조리 눈치만 살피고 있는 그의 모습이 퍽 재밌게 느껴져 나는 작게 웃음을 짓곤 말했다.
“친지엔 씨라고 중국에선 굉장히 유명한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에요. 재력도 엄청 나서 사실상 직업은 취미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죠.”
“아따, 모든 사람들의 로망을 몸소 실천하고 계시는 분이구마잉. 재산이 얼마나 되길래 그런 소리를 한다요?”
“한번 인터넷에 검색해 보세요. 추정 재산이 얼만지 여기저기서 얘기한 기사들이 꽤 있으니까. 아마 찾아보시면 눈이 뒤집힐 정도로 놀라실 겁니다. 중국은 우리나라랑 부자의 기준 자체가 다른 거, 아시죠?”
워낙 땅덩이가 넓은 나라다 보니 중국에서 부자라고 하면 그야말로 스케일이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우리나라의 부자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여하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닌 만큼 친지엔이 자리에 앉은 뒤, 나는 곧장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 친지엔 씨에 대한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오늘 강필진에게 지분 계약서를 전달 받았다는 얘길 들었는데. 사실일까요?”
동시 통역이 가능한 정인호가 옆에서 곧장 내 말을 전달해 주었고, 친지엔은 크게 고갤 끄덕이며 호탕하게 답했다.
“하하, 예. 맞습니다.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가서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었는데, 얘기가 시작되자마자 계약서부터 꺼내더군요. 본인이 가지고 있는 판다 엔터의 지분 전체를 내게 넘기겠다는 내용이었어요. 물론 그 계약서 안엔 거기에 대한 조건이나, 대가 등 그러한 것들은 일절 포함돼 있지 않았었고요.”
이번에도 역시나 친지엔의 말을 정인호가 다시 통역해 주었고, 얘기가 끝나자마자 백명한이 자못 놀란 얼굴을 하고선 물었다.
“그럼 판다 엔터의 지분 전체를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냥 넘긴다는 뜻인가요? 그게 본인의 전재산일 텐데요?”
“예, 계약서 내용은 이미 따로 검토까지 모두 끝낸 상황입니다. 그 계약서는 일체 효력이 발생할 수 있는 거고, 제가 거기에 사인까지 마쳤으니 이제 판다 엔터의 지분 전체는 제게 넘어온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추후에 다시 돌려 달라고 해도 제가 거절하면 이젠 소용없는 일이 돼 버린 거죠.”
“……어떻게 그렇게 무모할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아무런 대가도, 조건도 없이 본인의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걸 통째로 넘길 수가 있는 건지.”
“하하, 글쎄요. 아마도 제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더군요. 본인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 주고 또 그와 동시에 제게 신뢰와 믿음을 보이는 것이죠. 모든 비즈니스는 신뢰가 밑바탕이 되어야만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거라는 걸 아는 사람 같았습니다. 물론 그 방식이 저도 지금껏 겪어 보지 못한 무척이나 대담하면서도 파격적인 식이긴 했지만요?”
친지엔이 이번엔 백명한에게서 내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물론 그가 요구했던 것들이 있어서 거기에 대한 서류는 제가 따로 작성해 주기로 했습니다. 이번 일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을 경우 통합된 회사의 지분을 요구하더군요. 그래서 그러겠노라 했고요.”
“지분은 얼마를 요구하던가요?”
“20프로를 얘기하더군요. 정말로 상장이 됐을 경우를 가정하면 판다 엔터의 지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것들을 가져가게 되는 것이죠. 거기에 대한 확실한 답을 위해 본인 지분을 순순히 다 내놓은 것 같고.”
20프로라.
친지엔의 말대로 회사가 정상적으로 상장이 되고 기업 가치가 펌핑이 됐을 경우를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이익을 가져가는 수치였다.
하긴. 강필진이 누군데 그 정도의 이익도 생각 안 하고 본인의 전재산을 다 걸었을려고.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니까 그만한 리스크도 지려는 것이겠지.
또한 그 모든 일은 본인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가능하게 될 거라는 확신도 있을 거고.
친지엔이 나를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우선 미스터 정이 전해 준 대로 계약서는 검토 후 문제없게 만들어서 전해 줄 생각입니다. 정상적으로 상환이 됐을 경우에만 그 계약 내용을 이해하면 되는 쪽으로요. 그리고 반대의 경우에도 내가 받은 판다 엔터의 지분 전체를 돌려줄 필요가 없는 쪽으로 해야겠죠. 미스터 정의 계획이 그게 맞는 거죠?”
나는 작게 미소를 짓고는 순순히 고갤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그게 바로 이번 일의 핵심이기도 하고요. 모든 일은 강필진이 계획한 대로 정상적으로 진행이 될 겁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요. 정상적으로 엔터 회사들을 순차적으로 인수해 갈 거고, 또 계약 서류와 실제 금액들도 오가게 되겠죠. 끝에 가서 강필진이 모든 사실을 안 뒤엔 이미 우리 쪽에서 모든 작업이 다 끝나 있는 상태가 될 거고요.”
이미 사전에 이들을 불러 모으는 과정에서 나는 내 계획들을 이들에게 은밀히 알렸었다. 그리고 협조 요청을 한 뒤에 이들 모두가 순순히 수락을 해 주어 이 자리에 모이게 된 거였고.
나는 이미 논의와 합의가 다 끝난 사안을 재차 확인하기 위해 백명한을 쳐다보며 물었다.
“대표님, 맞겠죠?”
내가 묻자, 백명한도 비장한 얼굴을 하고선 고갤 주억였다.
“그럼. 이미 그렇게 하기로 다 협의 본 사안이고 결정한 일이니 반드시 그렇게 해야지. 여섯 개의 엔터 회사를 인수할 자금은 모두 다 준비해 둔 상태야. 조금 무리하게 되긴 했지만.”
가만 듣고 있던 문청위가 입을 열곤 내게 물었다.
“잠깐 정리해 보자면 결국 친지엔 씨가 인수하기로 한 회사들은 다 T&U 쪽에서 인수를 한다는 거죠? 거기에 대한 자금도 모두 T&U 쪽에서 대는 거고. 실제 거래만 친지엔 씨가 하는 것처럼 보이면 되는 거겠네요?”
“네, 맞습니다. 실제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건 백명한 대표님이 되겠지만 그를 속이기 위한 별도의 계약서도 마련해 둘 계획입니다. 우리 쪽에서 이미 그의 계획을 알고 있다는 건 꿈에도 생각 못 하고 있을 거고 또 친지엔 씨가 가짜 계약서를 들이밀었을 거라고도 상상조차 하지 못하겠죠. 모든 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굳게 믿게 될 겁니다.”
“그러다 그 엔터 회사들 중 하나라도 말이 새어 나가게 되면요? 그럼 모든 건 다 수포로 돌아가 버리는 걸 텐데.”
이번 문청위의 물음엔 백명한이 입을 열곤 걱정할 거 없다는 듯 말했다.
“아아, 그건 전혀 걱정할 거 없습니다. 이미 각 엔터 회사의 대표들을 은밀히 만나 모두 입단속을 시켜 놓은 상태에요. 아무리 강필진이 날고 긴다지만 제가 이 바닥에서 구른 세월이 있는데, 저를 뛰어넘을 수는 없는 거죠. 다들 저와의 의리를 더 지켜 주기로 했습니다.”
누누이 얘기하지만 백명한은 이 바닥에서 입지적인 인물로 통한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칭송받는다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그가 지난 20년간 쌓아온 결과물들이 이제야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강필진 쪽에서 접촉했던 여섯 개의 엔터 회사들 모두 백명한의 말 한마디에 한순간에 노선을 바꿔 버린 거고.
“물론 그쪽에서 인수하기로 한 비용에 조금을 더 얹어 주기로도 했습니다. 모든 비즈니스는 결국 이익에 의해 움직이는 건데 말만으로는 온전히 믿을 수 없기 때문이죠. 보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 실제 강필진과 협의했던 인수 비용보다 조금 더 높게 협의를 마무리 지은 상태예요.”
정인호의 통역을 들은 친지엔이 조심스레 백명한에게 물었다.
“그럼 T&U에서 그 많은 회사들을 실질적으로 인수를 하게 되는 건가요? 제가 듣기론 이미 한 회사를 인수하는 걸로 상장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거기에 여섯 개의 엔터사를 더 인수하게 되면 규모가 보통 수준이 아니게 될 건데요?”
“네, 물론 그렇습니다. 원래 제가 생각했던 방향은 아니기도 하고 분명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긴 하죠. 그래서 회사를 설립한 이래로 처음으로 투자라는 걸 받기로 했습니다. 현재 상장 진행을 도와주는 VC 기업에서 흔쾌히 나서 주겠다고 하더군요.”
“오오, 그렇다면 아주 수월히 진행될 수 있겠군요. 하하. 그나저나 그렇게 되면 T&U라는 회사가 어마어마해지겠는데요? 청위, 설마 이런 그림까지 다 예상하고 T&U와 계약을 했던 거야? 응?”
흐뭇한 미소로 쳐다보는 친지엔에게 문청위도 미소로 화답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제가 그때도 말씀드렸었잖아요. 전 회사가 아니라 사람을 보고 계약을 한 거라고. 전 여기 있는 정태수 씨를 보고 T&U를 선택한 거예요. 정태수 씨가 몸 담고 있는 곳이라면 그곳의 대표님도 충분히 훌륭한 사람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데, 이런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지게 되네요? 후훗.”
이번 일에 별다른 이익도 없을 친지엔이 이렇게까지 두 팔 벗고 나서 주는 이유는 모두 문청위 때문이었다.
문청위와 아주 오래 전부터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그였기에 문청위의 부탁 하나만으로 흔쾌히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나 또한 그 부분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문청위에게 도움을 청했던 거였고.
아마 강필진은 우리의 이런 은밀한 계획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을 거다.
특히나 친지엔이 우리와 연결돼 자신의 뒤통수를 때릴 거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거고.
지금 그의 계획의 9할은 오로지 친지엔의 손에 달려 있었기에 전적으로 친지엔만을 믿고 의지하고 있는 상황.
친지엔이 직접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한국까지 온 이상 일말의 의심도 가질 수가 없을 터였다.
나는 나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란히 앉아 있는 일행들을 바라보며 숨을 한 번 크게 고르곤 입을 열었다.
“일주일. 일주일 안에 이 모든 계획은 끝이 날 겁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누군가는 지옥을 맛보고 있겠죠.”
<152화>
두 시간 뒤, 백명한의 집을 나온 나와 황봉준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백명한, 문청위, 친지엔 간의 대화가 오가는 동안 내내 눈치만 살피던 황봉준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참고 있던 숨을 길게도 토해 냈다.
“후아, 아따 답답해 뒤지는 줄 알았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뭔 말을 할 수가 있는 분위기여야제. 이제야 좀 살 거 같구만.”
답답한 숨통이 이제야 좀 트인다는 듯 황봉준은 셔츠의 단추까지 풀어헤치고는 나를 쳐다봤다.
“정 실장, 아까 그 말이 참말이다요? 그 중국 사람 뭐시기여, 친지엔? 그 양반이 참말로 삼합회 임원이 맞다요? 진짜, 우리가 아는 그 삼합회?”
황봉준의 차량이 주차돼 있는 곳으로 걸어가며 나는 순순히 고갤 끄덕였다.
“네, 아까 들으신 그대로예요. 보셨잖아요. 양옆으로 가드까지 동행시킨 거. 그 사람들도 다 삼합회 일원들이라고 하더라고요.”
“웜메…… 그란 줄도 모르고 함부로 입 털 뻔했구마잉. 그라고 무서운 양반인 줄 알았으믄 옷이라도 좀 예의 있게 갖추고 올 걸 그랬네잉. 기 안 죽을라고 솔찬히 티게 입고 왔드만.”
그렇지 않아도 오늘 황봉준의 차림이 왜 이렇게 화려하나 싶었었다.
꼭 마치 하와이나 동남아 쪽으로 여행이라도 가는 사람처럼 꽃이며 이것저것 많이도 박혀 있는 셔츠 차림. 게다가 바지는 또 하얀 백바지를 입었길래 오늘 일정 뒤에 어디 놀러라도 가는 건가 싶었는데.
그게 다 오늘 모이는 멤버들에게 기 안 죽으려고 그랬던 거라니.
참, 황봉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떻게 삼합회 조직의 간부까지 되는 사람이 배우며 영화감독이며 그렇게 양지에서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다요? 우리나라로 치면 조폭들, 그라니께 깍두기들이 TV며 영화며 제작하고 출연하고 그라는 거 아니여. 아무리 중국이 우리나라랑은 전혀 딴판인 세상이라지만 어째 그란 일이 가능하다요?”
처음엔 나도 황봉준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들을 했었기에 대답 대신 작게 웃음을 지었다.
그러곤 눈썹을 한번 으쓱해 보이곤 답했다.
“방금 황 사장님 말에 답이 있네요. 중국은 여기랑은 전혀 딴판인 세상이니까 그런 것도 가능하겠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뭐 모든 게 다 다른 곳이니까. 그런 게 허용되는 분위기가 있지 않았을까요? 역사적으로.”
“역사요? 아니 뭔 여기에 역사 얘기까지 나온다요? 삼합회 얘기하는디.”
“저도 들은 얘긴데 예전엔 삼합회가 중국의 엔터 시장을 꽉 잡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삼합회 일원들 중에 영화나 드라마 등에 출연하는 인물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친지엔 씨였던 거죠. 외모, 연기 모든 게 다 받쳐 주는 상황에서 삼합회의 자본으로 엔터 시장이 굴러가다 보니 모든 제작까지 다 밀어줬을 거고. 그야말로 승승장구 아니었을까요?”
“워메…… 그것이 참말이요? 그럼 우리나라로 치면 조폭이 만든 영화에 조폭이 주인공으로 출연했다가 아주 대박이 나서 아예 전향한 케이스인 것이네? 왐마, 진짜 딴 세상도 그런 딴 세상이 없구마잉…….”
정인호로부터 들은 삼합회에 대한 얘기들은 많았지만, 굳이 지금 그런 얘기들을 들려줄 필욘 없을 것 같아 나는 미소만 지은 채 황봉준의 차량 앞으로 다가갔다.
황봉준이 차 키를 꺼내 차량 잠금을 해제하곤 내게 물었다.
“어디로 가요, 정 실장? 아까 T&U 대표 양반 집에서 못한 얘기들이 많아서 내가 정 실장 가는 곳까지 데려다주면서 이런저런 얘기나 좀 나눌라고 하는디. 집으로 가는가?”
오늘은 주말이었기에 따로 출근은 하지 않는 날이었다.
그래서 백명한의 집으로 모인 것이었고.
그렇다고 해서 매니저인 내가 편하게 집에서 쉴 수만은 있겠는가.
라비앙 컴백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당연히 오늘도 연습실로 향해야지.
나는 조수석 문을 열며 고갤 내저었다.
“아뇨, 회사에 가야 할 일이 있어서 T&U로 갈 예정인데. 그럼 거기까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아따, 부탁은 무슨. 여기서 강남까지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린디. 타쇼, 내가 편하게 모셔다 드릴라니께.”
사실 황봉준이 무슨 얘길 하려고 하는 건지는 듣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
아까 백명한의 집에 있을 때부터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을 텐데.
여지껏 참고 있었던 것만으로도 용하다 싶었다.
“후우, 안 그래도 아까 그 집에 있을 때부터 내가 속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니께. 다들 자기들끼리만 얘기하고 내 입장은 아무도 대변을 안 해 주니께 내 속이 속이었겠는가? 돌아가는 상황 얘기만 들으믄 나는 말짱 황이 되는 분위기인 것 같은디.”
아니나 다를까 운전석에 타자마자 그 얘기부터 꺼내 오는 황봉준이었다.
순식간에 시동을 켜고 안전벨트까지 메고선 악셀을 밟으며 황봉준이 말을 이어 갔다.
“상황 보니께 강필진 뒤통수를 제대로 칠라고 하는 것 같은디. 강필진이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을 그 친지엔이란 양반한테 다 넘긴다고 했다믄서? 계약서까지 다 준 상황이고. 그라믄 나중에 강필진이 진짜로 빈털터리가 되믄 어째 되는 것이란가? 강필진이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이 그 판다 엔터 지분밖에 없는디, 그거를 홀라당 다 벳겨 먹으면 나는 그놈 아한테 한 푼도 회수를 못 하는 상황 아니냐고. 응?”
“음, 벳겨 먹는다는 표현보다 좀 더 나은 표현은 없을까요? 벳겨 먹는다는 건 어째 안 그래도 없는 사람을 사기쳐서 등 처먹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듯해서.”
“아따, 지금 그런 것이 중요하다요?! 벳겨 먹든 후려치든 간에 지금 정 실장뿐만 아니라 백명한 대표의 목적이 강필진을 완전히 밑바닥까지 끌어 내릴라고 하는 것 같은디. 강필진 그놈이 진짜로 땡전 한 푼 없는 신세가 돼 버리면 나나 다른 사채업 사장들은 죄다 난리나는 상황이랑께? 아, 정 실장도 그 상황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알 거 아니요. 내가 수도 없이 얘기했었으니께. 안 그라요?”
“어어, 앞에, 앞에. 차 나와요, 황 사장님. 조심.”
흥분한 나머지 앞은 안 보고 자꾸만 내 쪽만 쳐다보며 침을 탈탈 튀기는 황봉준에게 나는 황급히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마터면 오른쪽에서 튀어나온 차량과 부딪칠 뻔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