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혼자 떠난 신혼여행

“어머나! 신부가 너무 예쁘다!”

“그러게. 성재가 신붓감 하나는 기가 막히게 골랐네!”

와글와글 시끄러운 바깥의 소음을 뚫고 아주머니들의 감탄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혼자가 되어 한숨 돌리고 있던 신부는 다시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앉은 자세를 바로 했다.

차마 신부 대기실 안까지 들어오지 못하고 입구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아마도 신랑 측 지인이실 터였다.

신부는 좀 전에 교육받은 대로 시선을 다소곳하게 내리며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띠었다.

환한 조명 아래에서 반짝이는 레이스로 장식된 풍성한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아름답고 조신한 신부의 모습이었다.

“신부가 대기업에 다닌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 H건설 다닌다고 성재 엄마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더라니까?”

“아우, 성재 엄마는 좋겠다! 자라면서 속 한 번 안 썩인 착한 아들에, 대기업 다니는 참한 며느리까지.”

“그러게 말이야. 무슨 복이 그리 많대?”

한동안 문가에서 수다를 떨던 아주머니들이 웃음소리를 남기며 사라졌다.

목소리가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신부는 다시 몸에 힘을 빼며 긴장을 풀 수 있었다.

“후우!”

내뱉는 숨 사이로 한숨이 저절로 섞여 나왔다.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신랑 측 하객이 많을 거라고 하더니,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벌써 이곳, 신부 대기실을 다녀간 터였다.

동물원의 원숭이가 이런 기분이려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껏 치장을 한 채 자리에 앉아 구경거리가 된 기분이라니….

물론, 결혼을 축하하러 와 주신 분들이니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게 맞겠지만, 면전에서 대놓고 이루어지는 외모 품평과 스펙 비교는 영 적응이 되지가 않았다.

게다가 한 자세로 오래 앉아 있느라 허리도 아프고, 내내 미소를 지으며 팔자에도 없는 참한 척을 하느라 입가가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

“신부님, 힘드시죠? 곧 시작하니까 이제 조금만 더 참으시면 돼요.”

어느새 나타난 신부 도우미가 한숨 소리를 들었는지 슬며시 다가와 친절하게 말을 건넸다.

“힘들어서 이 짓도 두 번은 못 하겠네요.”

민망해진 신부는 도우미에게 실없는 푸념까지 털어놓았다.

“부디 그러셔야죠.”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을 한 신부 도우미는 흐트러지지도 않은 치맛자락을 습관처럼 다시 정리하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도우미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신부는 이내 고개를 정면으로 돌리며 다시 자세를 바로 했다.

그때, 열려있는 문 너머로 날카로운 소음이 들려왔다.

탁탁탁탁!

매끄러운 대리석 바닥을 잰 걸음으로 부딪치는 하이힐 소리였다.

“선아! 오래 기다렸지?”

풍성하게 웨이브 진 긴 머리를 휘날리며 급하게 뛰어 들어온 사람은 친구 혜미였다.

프릴이 가득한 블라우스와 몸에 딱 붙는 스커트를 입은 혜미는 급히 오느라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천천히 오지. 그러다 넘어지면 어쩌려고….”

자리에 앉아있던 신부는 안타까운 얼굴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식 시작될까 봐 마음이 급해서 그랬지. 무슨 화장실에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내내 옆에 있어 주다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친구는 그마저도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여긴 다 좋은데 화장실이 좁은 게 흠이네.”

뒤따라 들어온 현진이 동의하며 말했다.

언발란스한 칼단발에 차분한 베이지색의 정장 바지를 차려입은 현진은 언제나처럼 깔끔하고 이지적인 모습이었다.

“우리 없는 동안 별 일 없었지?”

“응, 괜찮았어.”

수호 기사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 혜미에게 선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신랑 측 하객이 왜 이렇게 많아? 아까 보니까 대형 버스에서 손님들이 줄지어 내리던데?”

바깥쪽을 살피던 현진이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우리 시부모님께서 모임이 많으시대. 아버님 동창회에, 어머님께서는 교회에서 장로를 맡고 계셔서 교회분들도 많이 오실 거라고 했고.”

“그럼 아까 그분들이 교회에서 오신 분들인가 보다. 우리 엄마도 교회에서 어디 가실 때는 그렇게 버스 대절해서 한꺼번에 다니시더라고.”

“그렇구나.”

혜미와 현진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난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은 처음 봐. 하객 수나 예식장 규모도 그렇지만, 홀 안도 너무 멋지고 화려하게 꾸며놨더라! 완전 럭셔리 그 자체야! 성재 씨가 신경 많이 썼나 봐!”

“우리 선이 데려가는데 그럼! 이 정도야 당연하지!”

황홀한 듯 말하는 혜미의 감탄에 현진이 당연하다는 듯 콧대를 높였다.

“그렇지? 게다가 우리 남궁선 오늘 얼마나 예쁘니? 드레스도 너무 고급스럽고, 화장도 완전 찰떡같이 잘 먹었다니까! 맹세하는데, 내가 지금까지 본 신부 중에 제일 예뻐!”

“얘들아, 비행기 그만 태워. 그러다 나 떨어지겠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친구들의 칭송에 민망해진 선이 슬쩍 눈을 흘기며 대꾸했다.

“그나저나, 선아! 결혼했다고 우리 잊으면 안 돼!”

어느새 태도를 바꾼 혜미의 칭얼거림에 선의 얼굴에 웃음이 어렸다.

“무슨 소리야! 우리 진선미의 우정은 영원해야지!”

“그래, 그래야 우리 선이지!”

선의 대답에 만족한 혜미는 종종거리며 다가가 선을 끌어안았다.

두 사람의 장난스러운 모습에 현진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음 지었다.

[잠시 후 이성재, 남궁선 님의 결혼식이 시작될 예정이오니, 내빈 여러분께서는 자리에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껏 점잔을 뺀 사회자의 목소리가 안내 방송으로 흘러나왔다.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시작하려나 봐!”

“우리도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선을 바라보는 친구들의 얼굴엔 긴장과 설렘이 가득했다.

“그래, 먼저 가 있어.”

선도 떨리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남궁선! 결혼 축하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야 돼!”

“응, 고마워!”

“혹시 성재 씨가 속상하게 하는 일 있으면 우리한테 꼭 말하고! 가서 혼내줄 테니까!”

“그래, 알았어!”

“우린 언제나 네 편이라는 거 잊지 마!”

손까지 흔들어가며 마음을 전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어느새 대기실 밖으로 사라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진심어린 축하와 염려를 잊지 않는 친구들 덕분에 선의 얼굴에는 환하게 웃음꽃이 피어났다.

“신부님,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실 게요!”

“네.”

도우미의 안내에 선은 미소 띤 얼굴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 몇 달간 준비했던 결혼식이 드디어 시작되고 있었다.

***

“신부, 입장!”

사회자의 외침과 이어지는 익숙한 피아노 선율.

선은 떨리는 마음으로 첫 걸음을 내딛었다.

눈앞에 펼쳐진 새하얀 버진 로드는 화려한 꽃 장식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천장에는 눈이 부실 만큼 반짝이는 샹들리에 조명이 무서운 중압감을 뿜으며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걸려서 넘어지지 말라고 도우미가 손에 쥐여 준 드레스 자락. 그리고 그 손에 함께 들려있는 부케까지.

선은 어설프게 잡고 있는 무거운 부케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그러쥔 손가락에 있는 힘껏 힘을 주었다.

거추장스러울 만큼 풍성한 웨딩드레스 안에는 숍에서 추천해 준 높은 구두가 신겨져 있었다.

선은 익숙지 않은 차림에 행여나 넘어질세라 조심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하객들의 우렁찬 박수 소리와 함께 수많은 시선이 선을 향했다.

난생 처음 겪는 생경한 경험에 선의 심장은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어떻게 걸음을 걷고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붕 뜬 기분이었다.

그저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아버지의 팔에 모든 것을 의지한 채 천천히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아빠가 옆에 계셔서 다행이야!’

선은 신부 입장할 때 아버지의 에스코트가 하는 순기능을 알게 되었다.

평소 아버지에게서 남편에게로 건네지는 듯한 예식 방식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었던 선이었다.

여성의 인생을 종속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그 방식을 거부하지 않았던 건 아버지께서 신부 입장을 함께 할 생각에 조금 들떠 계신 것 같아서였다.

인생에서 한 번뿐인 아버지로서의 경험을 굳이 빼앗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함께 걷고 있으니, 아버지의 에스코트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새로운 시작을 하는 첫 걸음을 함께 해 주신다는 생각에 감동적이기까지 할 정도였다.

드디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순간이 지나고, 버진 로드의 끝에 다다랐다.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보니 턱시도를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성재가 반듯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이 예식이 끝나고 나면 방금 지나온 길을 저 사람과 함께 나가겠지.’

문득 스치는 생각에 이 결혼식의 의미가 다시 한번 무겁게 다가왔다.

성재가 앞으로 걸어 나와 아버지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팔에 걸쳐져 있던 딸의 손을 다른 손으로 감싸며 다정하게 두드렸다.

그리고는 앞에 서 있는 남자에게 딸의 손을 넘겨주었다.

아쉬움이 진득하게 묻어나는 손길에 선은 고개를 살짝 돌려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아버지의 눈에 언뜻 눈물이 비친 것도 같았다.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에 신랑의 팔을 잡은 선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두 눈에 눈물이 고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쏟아지려던 눈물은 금세 쏙 들어가고 말았다.

단상 앞으로 잘 설 수 있도록 드레스를 정리해 주는 도우미의 부산한 움직임이 생각을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선은 마음을 가다듬고 예식에 집중했다.

***

지루했던 주례사가 끝나고 혼인 서약의 시간이 되었다.

“신랑 이성재 군은 신부 남궁선 양을 아내로 맞아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함께 할 것을 맹세합니까?”

“네!”

흔한 서약의 멘트가 흘러나오고, 또 흔한 신랑의 대답이 이어졌다.

커다란 신랑의 목소리에 하객석에서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 또한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예식은 흔하디흔하게, 뻔한 공식처럼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어진 목소리에 예식은 더 이상 흔하지 않게, 뻔하지 않게 바뀌어 버리고 말았다.

“잠시만요!”

미처 신부의 맹세가 이어지기도 전이었다.

그 목소리가 들린 것은.

예식의 흐름을 깨는 낯선 목소리에 홀 안의 모든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향했다.

선 역시 불길한 기운을 가득 느끼며 신랑과 팔짱을 끼고 있던 팔을 풀고 뒤로 몸을 돌렸다.

한 남자가 버진 로드 위로 번쩍 뛰어올라 신랑 신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등줄기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이게 뭐지?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이야?’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선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비장한 표정과 주저 없는 걸음걸이에서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그러다 선은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낯선 남자에게 향해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어느새 자신을 향해 있었던 것이다.

호기심 어린 그 시선엔 자극적인 삼류 스토리를 기대하기라도 하는 듯 흥미진진함까지 어려 있었다.

그제야 선은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니야! 오해야! 난 저 사람 몰라!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선은 고개를 저으며 속으로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그 소리가 들릴 리 없었고, 그 남자는 보란 듯이 점점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당황과 긴장으로 선의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뭐지?’

그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선은 또 다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남자의 시선이 향한 곳은 자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선은 불안한 마음을 누르며 그 남자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잔뜩 구겨진 성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성재의 두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

당혹스러운 선의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원망의 말을 던진 남자가 성재에게 달려들었다.

말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평생 나만 사랑한다고 했잖아!”

성재의 품에 안긴 그 남자는 서럽게 울음을 쏟아냈다.

그 모습을 지켜 본 사람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허억!”

“저, 저런!”

여기저기서 놀라움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은 그러거나 말거나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선은 황당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하! 하하!”

기가 막히고 숨이 막힐 노릇이었다.

역시나 상황 파악을 마친 하객들이 하나둘 술렁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주변의 소음이 커질수록 선의 혼란도 점점 커져만 갔다.

불안한 선의 시야에 충격으로 입을 가린 엄마와 벌게진 아빠의 얼굴이 들어왔다. 순간 배 속에서부터 분노가 치밀며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선은 지금껏 불편하게 들고 있던 부케를 바닥에 내동댕이쳐 버렸다.

“뭐, 이런 것들이 다 있어!”

황당한 마음을 입 밖으로 내뱉곤 거추장스러운 웨딩드레스 자락을 번쩍 들어 올려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었다.

그렇게 지나왔던 버진 로드를 씩씩하게 되돌아 나왔다.

***

예식장을 뛰쳐나온 선은 무작정 밖으로 향했다.

불편했던 높은 구두는 벗어 던진 지 오래였다.

거추장스러운 웨딩드레스 자락은 짐짝처럼 양팔로 끌어안은 채 미친 듯이 내달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그런 건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맨발의 고통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저 달리고 또 달릴 뿐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어서 여기에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선을 멈추게 한 건 친구 혜미와 현진이었다.

예식장 한쪽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두 사람은 선이 바깥으로 나가자마자 곧장 따라 나와 뒤를 쫓았다.

그리고 결국 선의 팔을 붙잡아 세우는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