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대부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손님들이 관광을 위해 모두 나가자 청소기를 꺼내 왔다. 구석구석 청소기로 밀고 다니던 그는 잠시 멈춰 서서 거실 유리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추워지면 운동하기 힘든데, 미리 할까?”

대부는 청소기를 바닥에 그대로 버려둔 채 밖으로 나갔다. 집 근처에 있는 작은 개울가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걷자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서린에게 자랑할 일이 하나 생겨서 기분 좋아진 대부는 나오길 잘했다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한 시간 정도 느릿느릿 산책로를 걷다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산책로와 집 가는 사이에 있는 도로를 건너려면 50미터쯤 아래로 내려가야만 했다. 저 멀리 횡단보도 신호등이 보였지만 대부는 귀찮다는 생각에 도로 이쪽저쪽을 살펴보고는 오가는 차가 없자 냅다 뛰기 시작했다. 우당탕 쾅! 철푸덕! 순식간에 일이 벌어졌다. 분명히 도로 한쪽에 주차해 놓은 것처럼 서 있던 차량이었는데 대부가 길을 건너자마자 그 차가 다급하게 튀어나오면서 그를 치고 말았다. 대부의 풍채 좋은 몸은 차에 치이는 순간 허수아비처럼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이내 도로 바닥으로 철푸덕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부아아앙! 대부를 친 차는 날카롭게 가속 페달을 밟으면서 그대로 도주했다. 산책하던 사람들이 도로 바닥에 널브러진 채 기절해 있는 대부를 향해 달려왔다. 그들 중 한 사람이 구급차를 불렀고 다른 이가 경찰서에 신고했다. 얼마 되지 않아 응급 상황을 알리는 경광등과 사이렌을 켠 구급차와 경찰차가 동시에 도착했다. 대부는 의식을 잃은 채로 구급차에 태워졌다. 병원 이송이 시급해 보이자 구급차는 사이렌을 울리면서 다급히 출발했다. 경찰들은 산책 나온 사람들을 상대로 사고를 목격했거나 뺑소니 차량을 본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느라 분주했다.

서린은 오전 수업이 끝나자마자 커피숍으로 왔었다. 거리가 사람들로 북적일수록 커피숍에도 숨 고를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끊임없이 손님들이 들어왔다.

“수미 언니는 잠깐 쉬고 있어. 나하고 민주가 하면 되니까.”

커피숍이 너무 바빠서 다빗 오빠의 아내까지 불러야 했다. 수미 언니는 자신의 가게처럼 적극적으로 손님을 받고 설거지통에 쌓인 커피잔들을 씻었다. 수미 언니 여동생 민주는 팔목이 시큰거린다면서도 커피를 뽑고 주스를 쉼 없이 만들어냈다. 서린도 이따금씩 커피를 만들고 설거지를 하긴 했지만 밀려드는 주문을 받기에도 바빴다. 정신없이 밀려들던 사람들이 아주 조금 줄어들자 서린은 제일 먼저 수미 언니부터 쉬게 했다.

“아가씨부터 쉬어. 나랑 민주하고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수미는 보는 것만으로도 안쓰러운 서린을 걱정했다. 게스트하우스에 학교에 커피숍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 보였다. 그런데도 늘 힘이 펄펄 넘치는 사람처럼 밝고 씩씩해 보였다.

“언니는 아이 안 가져? 빨랑 임신해. 아이가 태어나기만 하면 다빗 오빠가 너무 좋아서 언니를 매일 업고 다닐걸? 조카는 내가 대신 업고 다닐게.”

“아이 몰라. 생길 때 되면 생기겠지.”

수미는 여동생 민주가 가져다준 작은 의자에 앉으면서 수줍게 볼을 붉혔다. 서린의 말대로 고아인 남편은 아이를 많이 낳고 싶어 했다. 그건 같은 보육원에서 자란 요셉 씨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같이 보육원에서 살던 친구나 형들은 죄다 외국에 나가 있는데 이 두 남자만 반항적인 질풍노도의 시기를 살아가느라 보육원 원장님 속을 최고로 많이 섞였다고 했다. 다행히 늦게라도 철이 들어서 원장님이 아프신 게 모두 자신들 탓이라면 무척 죄송해하고 있다. 대신 두 남자는 열심히 사는 것으로 보답해야 한다며 공장과 회사를 다니면서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하긴 서린이 아가씨가 저토록 열심히 살면서 두 남자가 잘하는지 도끼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언감생심 일탈을 꿈꿀 수나 있겠어?’

수미는 남편 다빗과 요셉 씨가 성실한 건 모두 서린 덕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 이유가 있기에 서린 일이라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것이었다. 그건 요셉 씨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언니 이거 받아. 계절이 바뀌었는데 옷이 그게 뭐야? 오빠 바람피워요? 혹시 비트코인 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서린은 뭔가를 해주려고 할 때면 부러 엉뚱한 소릴 늘어놓곤 했다. 수미는 서린이 건네 백화점 봉투로 보이는 걸 받아서 안을 열어 봤다.

“어머! 아가씨 이런 거 안 줘도 돼!”

수미는 50만 원권 상품권 네 장이 들어 있는 걸 보고 놀란 눈을 만들었다.

“쇼핑 목록 장바구니에만 잔뜩 넣어 놓고 구경만 하면서 자신이 잘하고 있는 거라고 위로하지 마. 그거 아낀다고 상 줄 사람 없어.”

“매번 고마워, 아가씨.”

“다빗 오빠한텐 비밀로 하고. 내일은 나진이 언니하고 쇼핑이나 해. 여기 이 봉투는 나진이 언니 만나면 줘.”

수미는 서린이 주는 봉투 하나를 더 받았다. 진짜 남매보다 더 정이 깊은 이 어린 아가씨 때문에 눈물이 나려고 했다.

“사장님 저는 뭐 없어요?”

질투가 난 민주가 쪼르르 달려와 서린의 허리를 끌어안고 칭얼댔다.

“저도, 저도요. 저도 우리 언니 같은 거 받고 싶어요!”

서린의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민주가 부둥켜안고 어리광을 부렸다.

“복학해. 그럼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하고 용돈은 줄게. 물론! 너는 커피숍 알바 고정이야.”

“피이. 우리 언니하고 짰죠? 저 복학하게 말 좀 해달라고 언니가 그랬죠?”

“아닌데?”

민주가 수미를 의심하자 서린은 시침 똑 뗀 얼굴로 말했다.

“치이! 수미 언니는 내 친언닌데 왜 사장님하고 더 친해 보이는 거야.”

말은 투덜거렸지만 민주 표정에서 다음 연도엔 복학하겠다는 의지가 읽혔다.

“공부가 더 하고 싶어지면 미래에 대한 계획서만 가져와. 유학을 보내줄 의향도 있으니까. 대신 커피숍 알바는 수미 언니 고정.”

살짝 배가 고파진 서린은 판매용 조각 케이크를 넣어 놓은 유리 진열장 안에서 사과파이 하나를 꺼내 와 포크로 잘라 먹었다.

“손님 주문 도와…… 사장님 손님 오셨어요!”

재료를 넣어 두는 창고 쪽에 앉아서 파이를 먹던 서린은 고개만 삐죽이 내밀어 주문대 너머를 쳐다봤다. 도빈이었다. 그도 그녀를 찾다가 눈이 딱 마주쳤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회사 땡땡이쳤어?”

회사에 있어야 할 시간에 도빈이 커피숍으로 오자 서린은 잔소리를 할 심산으로 주문대 밖으로 나왔다.

“서린아…… 잠깐 나하고 나가자.”

“보시다시피 내가 너무 바빠. 그래서 놀아 주고 싶어도 지금은 안 돼.”

서린은 다시 주문대가 있는 쪽으로 가려고 몸을 돌렸다. 그때 턱하고 그가 서린의 손목을 잡아챘다. 서린은 인상을 팍 찡그리면서 쌀쌀맞게 도빈을 쏘아보았다. 출입문이 열리고 여러 명의 손님들이 들어왔다.

“혼자 놀라고. 바쁜 거 안 보여?”

서린은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다 섞어 화를 냈다. 잡힌 팔을 빼내기 위해 서린은 힘껏 뿌리쳤다. 그런데 잡힌 팔이 그의 손아귀 안에 그대로 있었다. 그가 너무 세게 쥐는 바람에 팔 전체가 쩌릿하게 아파 왔다.

“대부가 사고를 당하셨어. 지금 병원으로 가봐야 해.”

“……뭐?”

커피를 뽑던 민주와 설거지를 시작한 수미 언니가 두 사람 대화에 귀를 쫑긋 세워 두고 듣다가 놀라서 달려 나왔다. 서린은 띠잉 하고 머릿속이 어지러워지자 속마저 토할 것처럼 울렁거렸다. 서린은 파리하게 질린 얼굴로 앞치마에 넣어 둔 핸드폰을 꺼내 대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빈의 말이 사실인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녀의 전화를 받지 않은 적이 없었던 대부가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다. 그제야 대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게 실감 나면서 손이 덜덜 떨리고 다리에서 힘이 쑤욱 빠져나갔다. 서린은 주르륵 미끄러지듯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서린아, 일어나.”

도빈은 심란한 얼굴로 서린을 껴안아 일으켜 세웠다. 일어난 서린은 이미 넋이 나간 상태이면서도 천천히 허리에 맨 앞치마를 풀어 민주에게 건넸다.

“민주야 가게 잘 보고 있어. 혼자서 힘들면 언니한테 계속 나와 달라고 해. 수미 언니? 게스트하우스는 요셉 오빠 부부한테 당분간 맡긴다고 말 좀 해줘.”

“빨리 가봐 아가씨! 여기 일도 게스트하우스도 우리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보다 못한 수미가 소리쳤다. 서린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묵묵히 서 있는 도빈을 빤히 쳐다봤다.

“나 운전 못 할 것 같아. 네 차 좀 얻어 타자. 아, 병원비. 수미 언니 내 가방 좀.”

“그냥 가! 지금 그런 걸 왜 신경 써.”

도빈은 혼마저 나가버린 서린을 걱정하다가 울컥해 버렸다. 차라리 울며불며 대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물어봤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 여자는 자신이 자리를 비우면 발생하게 될 문제부터 처리하고 있었다. 제발 그런 책임감 같은 건 버려도 좋으련만. 도빈은 정신을 놓기 일보 직전인 서린을 껴안다시피 커피숍에서 데리고 나와 대기 시켜 놨던 차에 태웠다.

“흐윽!”

차에 타자마자 서린은 양 손바닥에 얼굴을 묻으면서 울음을 터트렸다. 도빈이 놀랐을 서린의 등을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생명엔 지장 없다니까, 너무 겁먹지 마.”

마음의 준비도 없이 병원에 가서 대부를 보면 더 큰 충격을 받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차마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해주기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흐읍!”

울음을 삼키느라 서린은 숨조차 제대로 내쉬지 못했다. 도빈은 울음도 맘대로 터트리지 못하는 작고 바보 같은 여자의 어깨를 끌어당겨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했다.

“운이 정말 좋아서 머리에 큰 이상은 없다고 해. 깨어나시기만 하면 된다고 의사가 그랬어.”

이야기를 전해 듣는 그녀가 도빈의 팔을 힘껏 움켜쥐자 통증을 일었지만 내버려 뒀다. 그녀는 이에 짓눌린 아랫입술이 툭 터질 때까지 꽉 깨문 채 소리 없는 눈물만 뚝뚝 떨어트렸다.

“어떻게 네가 먼저 알게 된 거야? 왜 나한테 먼저 연락이 오지 않은 걸까?”

서린은 말해 달라며 멍이 들 만큼 움켜쥐고 있다는 걸 모르는 그의 팔을 마구 흔들었다.

“대부 핸드폰에 이름으로 저장된 사람은 나 하나였대. 그래서…… 나한테 제일 먼저 연락이 온 거야. 너한텐 수술 결과를 본 후에 알려 주려고…… 수술은 잘 됐어.”

도빈조차 경찰이 하는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병원으로 달려가자마자 대부를 수술실로 들여보내 놓고 그의 옷과 소지품을 돌려받으면서 핸드폰을 확인해 보았다. 경찰의 말대로 이름으로 전화번호가 저장된 사람은 김도빈 자신 한 명 뿐이었다. 죄다 베로니카, 잔다르크, 요셉, 다빗처럼 세례명이거나 자명 스님으로 저장되어 있었다. 경찰들은 급한 나머지 외국 이름이 아닌 순수한 한글로 저장된 번호로 일단 전화를 걸어 본 것 같았다. 그 사실을 서린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줬다. 차가 병원에 도착했다. 도빈은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리는 서린을 껴안다시피 부축해 중환자실 앞으로 데려갔다. 잔다르크 님이 제일 먼저 보였다.

“서린아! 어떡해. 어떡하니! 이게 다 무슨 일이라니! 흐으흑!”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녀가 다가온 서린을 덥석 끌어안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도빈의 연락을 받고 달려오셨던 작은고모님은 그사이 얼마나 우셨는지 얼굴을 못 알아볼 정도로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상철아! 서린이 왔다! 네 딸 여기 왔으니까, 이제 그만 눈을 뜨고 일어나! 아이고, 상철아 불면 날아갈까 쥐면 터질까 싸고만 돌던 네 딸 왔으니까 어서 눈을 뜨라고!”

이성을 잃은 잔다르크 님은 굳게 닫혀 있는 중환자실 문을 보면서 악에 받친 고함을 질러댔다.

“야, 최상철! 빨리 안 일어나. 잘난 척은 다 하더니, 이렇게 갈 거면 나 면사포나 한번 씌워 주고 가든지. 이 나쁜 자식아! 너 안 일어나면 가만 안 둬!”

잔다르크 님은 정신 줄까지 놓았는지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하면서 대부가 깨어나길 간절히 빌고 있었다. 도빈은 평정심을 잃은 작은고모님과 넋이 나간 서린을 억지로 의자에 앉혔다.

“서린아, 잠깐만 여기 앉아 있어. 보호자가 환자를 확인해야 해서 잠깐 면회를 시켜 준다고 했어.”

종이 인형처럼 의자에 앉혀 주는 대로 털썩 앉은 서린을 놔두고 도빈은 중환자실과 연결된 인터폰을 눌러 보호자가 왔음을 알렸다. 간호사가 잠깐 동안만 면회가 된다며 서린에게 들어오라고 했다. 서린은 귀신에 홀린 것처럼 홀연히 일어나서 간호사를 따라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다. 그래서 누가 누군지 분간을 하지 못하겠다. 눈물이 차올라 자꾸만 앞이 흐려져서 대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서린은 양쪽 손등으로 눈물을 쓱 닦아내고 간호사가 가는 곳으로 쫓아갔다.

“지금은 의식이 없으세요.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어요. 심하게 골절상을 입으셨고, 맥박이 조금 약하세요. 산소 포화도가 너무 낮아서 기도 삽관을 통해 호흡을 하고 계세요. 10분만 계실 수 있으니까 면회 시간 끝나면 바로 나가셔야 합니다.”

간호사가 설명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갔다. 서린은 눈물만 뚝뚝 떨어트리다 다시금 팔뚝으로 얼굴을 박박 닦았다. 눈물 때문에 대부가 잘 보이지가 않아서 서린은 눈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닦았다. 그제야 양팔과 양다리와 가슴에도 온통 붕대를 감아 놓고 알 수 없는 수많은 줄과 기계들에 둘러싸인 대부가 보였다. 머리에까지 하얀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서린은 또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천천히 대부한테로 다가간 서린은 울음소리가 새어 나와서 대부를 속상하게 할까 봐 숨조차 멈춰 두고 대부만 바라봤다.

“대부 죽지 마. 나, 무서우니까…… 죽지 마.”

서린은 대부를 꼬옥 끌어안고 거칠게 숨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그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내가 더 잘할게. 그러니까 나만 두고 가지 마.”

이럴 줄 알았다면 아빠라고 한번 불러 볼걸.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면 아빠라고 한번 불러 줄걸 그랬다. 대부도 은근히 그 말을 기대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모른 척했었다. 그게 너무나 후회가 된다.

“대부는 진짜 내 아빠니까, 그러니까 대부는 내 손 놓으면 안 돼? 나, 무섭단 말이야.”

서린은 울먹이면서 속삭였다. 갑자기 대부의 가슴이 곧 숨이 넘어갈 것처럼 커다랗게 요동치면서 들썩거렸다. 서린은 얽히고설킨 수많은 줄들이 대부의 몸에 휘감겨 있거나 말거나 더욱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아기를 재우듯 나붓나붓 대부의 가슴을 두드렸다.

“딱 한숨만 더 자고 일어나? 내가 기다리니까 너무 오래 자진 말구.”

대부를 끌어안고 잠을 재우는 것처럼 토닥토닥 두드려 주고 있는 서린에게 다가온 간호사가 면회 시간이 끝났다며 나가 달라고 했다. 서린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다가 쪼르르 달려가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인공호흡기까지 한 대부의 얼굴에 정신없이 입술을 맞췄다. 어린 딸이 아빠가 일어날 때까지 뽀뽀로 괴롭히는 것처럼, 서린은 대부 얼굴에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딱 한숨만 더 자고 일어나기다!”

서린은 눈물이 앞을 가려서 출입구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간호사의 도움으로 중환자실을 나온 서린은 재빨리 다가와 부축해 주는 도빈에게 의지해 의자에 앉았다.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잔다르크 님?”

얼굴에 핏기가 없는 서린은 대부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싶어서 의사를 만나려고 했다. 하지만 잔다르크 님은 울다 지쳤는지 벽에 머리를 기대 놓고 몸마저 축 늘어트린 채 말이 없었다.

“나하고 같이 가. 내가 데려다줄게.”

도빈은 작은고모님을 잠시 바라보다가 서린이부터 도와줘야 할 것 같아서 재빨리 그녀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작은고모님? 잠시 다녀올게요.”

“갔다 와. 여기, 여기 있을 거야.”

잔다르크는 소리 없는 눈물만 주르륵 흘리면서 손을 휘적휘적 내저었다. 서린은 하늘을 지배하는 신처럼 언제나 압도적인 위압감을 주던 잔다르크 님이 엉망으로 흐트러진 모습으로 앉아 있자 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함께 의사를 찾아가고 있는 도빈은 전과 달리 자꾸만 한없이 의지하고 싶을 만큼의 든든함을 주고 있었다. 서린을 진료 대기실 의자에 앉혀 둔 도빈은 간호사에게 가서 의사를 만나고 싶다고 말하고 돌아왔다.

“목마르지 않아?”

서린은 머리만 가로저었다. 그러나 도빈은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잠깐만 혼자 있을 수 있지?”

“가지 마! 나 혼자 두지 마, 제발.”

도빈은 편의점에 가서 생수를 사 오려고 했다. 그런데 서린이 깜짝 놀란 얼굴로 그의 팔을 양손으로 꽉 잡은 채 덜덜 떨었다. 도빈은 그녀에게 물을 먹이는 걸 포기하고 조용히 그 옆에 앉았다.

“간호사가 최대한 빨리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해준다고 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알았어. 그런데 도빈아?”

꺼질 듯 힘겹게 앉아 있던 그녀가 처량한 눈빛으로 얼굴을 돌려 도빈을 바라보았다.

“네가 여기, 한국에 있어서 너무 다행이야.”

김도빈이 없었다면 혼자서 버틸 자신이 없었을 것 같았다. 오빠들도 많고 새언니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김도빈이 아니었다. 만날 치고받고 싸웠지만 그래도 자신을 가장 잘 알아주는 그가 지금 곁에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위로가 되고 있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 더는 나빠질 게 없으니까, 너무 겁을 먹지도 말고.”

“응, 그럴게.”

응, 너만 믿을게. 너의 말만 믿을 거야. 지금은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다 믿을 수 있을 것 같거든. 도빈을 바라보던 그녀의 볼 아래로 한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