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생일 파티

비밀 수사 23일째. 저녁 시간이었다.

“해준 양, 왔어요?”

매대에 빵들을 진열하던 강 여사가 해준을 반갑게 맞이했다.

“케이크 주문하려고요. 내일 모레 주원이 생일이에요. 내일 밤에 서프라이즈 파티해 줄 거예요.”

“그래요? 문 사장님이 아주 좋아하겠어요.”

“내일 언제쯤 찾으러 올까요?”

“저녁 6시 지나서 편한 시간에 찾으러 오셔요.”

강 여사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갈게요.”

강 여사에게 인사를 하던 해준의 시선이 카운터에 놓여 있는 탁상 달력으로 향했다. 4월 15일과 4월 24일, 빨간색 동그라미가 그려진 날짜가 그녀의 시신에 들어왔다. 무슨 날일까? 해준은 그 날짜가 무슨 의미인지 궁금증을 안고 제과점 밖으로 나왔다.

다음날 해준은 저녁 6시쯤 케이크를 찾으러 갔었다.

“해준 양, 케이크 제가 선물해도 될까요?”

강 여사는 상자에 담은 케이크를 건네며 말했다.

“네? 왜 주시는 건가요?”

강 여사의 제안이 의아했던 해준은 선물을 주는 이유를 물었다.

“선물하는 데 이유가 있나요?”

“……네. 감사합니다.”

강 여사의 간곡한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던 해준은 그 케이크를 가지고 폴라리스로 돌아왔다.

해준은 폴라리스 정원에 야외 테이블을 펼치고 깜짝 생일 파티를 준비했다.

[주원아! 지금 우리 집으로 올래?]

주원은 해준의 문자를 보고 의아해 했다.

[지금 바로? 무슨 일 있어?]

[일단 와 봐.]

“무슨 일일까?”

주원은 궁금해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로를 지나가는 주원은 들떠 있었다. 주원은 막다른 철제문을 열고 나갔다. 정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는 고요했다. 주원은 마주보고 있는 철제문을 노크했다. 그러나 안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주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정원 쪽으로 시선을 두는 순간 흐릿한 촛불 빛이 가까이 비쳐왔다. 주원은 정원으로 올라갔다.

**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주원이 생일 축하합니다.”

해준이 초가 켜진 케이크를 들고 정원에서 다가왔다. 주원은 생각지 못한 뜻밖의 생일 파티에 가슴이 뭉클했다.

“촛불 꺼.”

해준의 얘기에, 주원은 입김을 불어 촛불을 껐다.

“생일은 내일인 걸.”

“오늘밤부터 내일 하루 종일 즐거운 마음으로 지내라고.”

“고마워.”

“내일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두 사람은 케이크를 잘라 각자의 그릇에 옮겨 담았다. 한 입 맛 본 주원이 놀란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케이크 가온 제과점 거니?”

“응. 왜?”

“천사원에서 1달에 1번씩 생일인 아이들 생일 파티를 하고는 했는데 그 때 먹어본 케이크 맛이야. 그 케이크가 강 여사님이 만든 거였구나.”

케이크를 크게 떠서 입에 넣으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주원아, 이거 강 여사님이 선물하신 거야.”

“강 여사님이 선물을? 왜?”

“이유는 얘기 안 하셨어.”

집으로 돌아온 주원은 생일 파티의 여운이 남아 있어 기분이 들떠 있었다.

“비가 오려나.”

주원은 블라인드를 올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에 두툼한 먹장구름이 빠른 속도로 몰려오고 있었다. 곧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 있던 해준은 일어나 앉았다. 해준은 창가로 가 커튼 한 자락을 걷었다.

툭! 툭!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날씨가 그날 같아. 유리가 돌아오지 못했던 날.”

해준은 명치끝이 아려왔다.

“이해준, 아직 안 자네.”

이든은 창가에서 파라다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준의 작업실 방 창문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번쩍, 강력한 번개가 내리쳤고 이어서 요란한 천둥이 울렸다. 툭툭 떨어지던 빗방울들은 곧 장대비로 바뀌었다.

“오늘 날씨가 마치 10년 전 그날 같네. 처음 인형 놀이를 했던 날.”

이든은 천둥, 번개와 장대비가 내리는 날씨 속에서 그때의 악행을 떠올리며 쾌감을 느꼈다.

쾌감을 느끼던 때와 달리 이든은 마음이 불편했다. 이든은 그 날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벌인 것이 후회되었다. 해준을 알게 된 후 여러 변화가 있었다. 진심으로 웃었고, 진심으로 행복했다.

**

비밀 수사 24일째, 가장 연인 20일째.

밤새도록 쏟아지던 장대비는, 이튿날 새벽에 그쳤다. 해준은 바람막이 점퍼와 청바지 차림으로 방에서 나왔다. 해준은 명한의 방을 살그머니 보았다. 명한은 몸을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해준은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해준은 유슬라 3길 쪽 정문으로 나왔다. 그녀는 어머니와 유리의 무덤이 있는 야산을 향해 갔다.

“무사하네.”

해준은 무사히 있는 어머니와 유리의 무덤을 보며 안도했다. 장대비가 내린 후면, 봉분의 흙이 쓸려 내려가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그렇지만 깡통, 페트병 등이 빗물에 흘러와 무덤 주위가 어지럽혀져 있었다.

해준은 점퍼 주머니에서 비닐봉지를 꺼내 쓰레기들을 주워 담았다.

그 시각, 경미와 유리의 무덤으로 향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주원이었다.

“어? 해준이다.”

주원은 무덤으로 가는 외길에 들어서다가 해준을 발견하고 반갑게 말했다. 그는 어젯밤 일도 있고 해서, 어서 빨리 해준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근데 해준이가 여긴 어쩐 일이지?”

주원은 외길을 올라가며 고개를 갸웃했다. 해준은 쓰레기를 치우다가 잠시 허리를 폈다.

“주원아.”

그녀는 외길을 올라오는 주원을 발견했다.

“해준아.”

해준과 주원은 시선이 마주치자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주원아, 생일 축하해.”

“고마워.”

해준의 축하에 주원은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주원아,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야?”

해준이 주원에게 물었다.

“친구 어머니와 친구 동생 무덤이 염려되어서.”

주원이 무덤 쪽을 힐끗 보고 말했다.

‘쭌-, 고마워.’

해준은 주원의 얘기에 감동했다.

“그런데 해준이 넌 여기 어쩐 일이야?”

“유… 나도 희생자 무덤이 괜찮은가 싶어서.”

주원의 물음에, 해준은 입 밖으로 나오려던 ‘유리’를 삼키고, ‘유리’를 희생자라고 표현했다. 유리를 희생자라고 말하자, 해준은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와 목이 멨다.

“치우고 있었구나.”

“응.”

주원이 해준의 손에 들린 에코백을 보고 말하자, 해준이 짧은 답을 했다.

“같이 치우자.”

주원은 해준의 손에 있는 에코백을 자기 손으로 옮겨 걸었다.

“그 친구가 무척 고마워하겠다.”

해준이 간접적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

주원은 해준의 말에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쓰레기를 주었다.

해준은 물티슈를 꺼내 비석과 석상을 닦았다.

“어?”

주원이 무덤과 몇 걸음 떨어진 곳을 치우다가 석상으로 다가갔다.

“왜? 주원아?”

주원은 무릎을 꿇고 석상 밑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해준은 주원의 시선을 따라, 석상 밑을 보았다.

“석상 아래 뭐가 있다.”

해준이 석상 밑을 보며 말했다. 석상 양쪽 다리 사이에 지퍼 백 지퍼 부분이 나와 있었다. 그건 어디선가 흘러와 땅속에 들어간 모양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일부러 땅 속에 묻어놓은 듯했다.

주원은 휴대폰을 꺼내 석상 아래를 사진 찍었다. 해준과 주원은 근처에 있던 큰 돌을 주워 땅을 파기 시작했다. 석상 밑에 묻혀 있던 지퍼 백이 좀 더 드러나자, 두 사람은 각각 점퍼 주머니에서 니트릴 라텍스 일회용 고무장갑을 꺼내 끼었다.

주원이 땅 속에 묻힌 지퍼 백을 조심스럽게 당기며 말했다. 곧 지퍼 백이 땅 속에서 쑤욱 딸려 나왔다. 지퍼 백 안에는 세수 비누 크기만 한 나무함이 들어 있었다. 나무함은 비닐 주머니로 한 번 더 포장되어 있었다. 해준과 주원은 말없이 지퍼 백 안의 나무함을 쳐다보았다. 누군가가 일부러 묻어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뭔가 비밀스러운 것을 담아 놓은 것 같아.”

해준의 말에 주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원은 석상 아래서 나온 나무함이 담긴 지퍼 백을 사진 찍었다. 주원은 조심스럽게 방수 비닐을 뜯은 다음 나무함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라이터처럼 생긴 무언가가 있었다.

‘이건 내 캠코더야!’

해준의 큰 눈이 휘둥그레졌다. 해준은 나무함에 든 물건이 라이터가 아니라 6년 전에 고요산에서 잃어버리고 애타게 찾아온 캠코더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이게 어떻게 여기에 있어?’

해준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고요산에 나와 하이든 말고 또 누군가가 있었어! 목격자가 있었어!’

해준은 머리를 울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문득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49에 맡겨 놨습니다. 찾아가세요.]

해준이 경찰대학 4학년 1학기 방학이 되어 집에 있을 때, 의문의 편지가 온 적이 있었다. ‘이해준 씨’ 앞이라는 글씨만 쓰인 봉투에, 단 한 줄만 쓴 편지가 들어 있었다. 해준은 그 편지를 보관해 두었지만, 49의 의미를 선뜻 떠올리지 못했다.

‘49는 어머니 산소가 있는 야산 번지수였어.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해준은 실소했다.

‘그때 고요산에 있던 사람은 누구일까?’

해준은 큰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캠코더가 돌아온 것도 충격이었고, 목격자가 있었다는 것도 충격이었다.

“이건 그냥 라이터가 아니야. 캠코더야.”

주원이 라이터 모양의 캠코더를 꺼내 살피며 말했다. 해준은 주원의 손에 있는 캠코더를 보았다.

‘저 안에 있는 영상을 주원이가 보면 안 되는데……․ 반드시 내가 저걸 가져가야 해.’

해준은 캠코더가 주원의 손에 있어서 당황했다. 캠코더에는 옹주 산딸기 소년 실종 사건의 비밀과 함께 해준의 비밀도 담겨 있었다.

“주원아, 나도 좀 볼게.”

해준이 일회용 고무장갑을 낀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캠코더를 가져오려는 해준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주원은 캠코더를 원래대로 나무함에 넣어 점퍼 주머니에 넣었다.

“일단 캠코더가 작동하는지 확인해야 해.”

주원의 목소리는 다소 상기되어 있었다.

“여긴 유진이 어머니 무덤이야. 어쩌면 유진이가 남긴 메시지일지도 몰라.”

주원의 의지는 확고했다. 주원은 성큼성큼 야산을 뛰어 내려갔다. 해준은 주원의 뒷모습을 난감하게 보며 그를 뒤따라 갔다.

**

주원은 곧장 리멤버로 들어갔다. 두 사람만의 비상 통로를 이용할 겨를이 없었던 해준은 UC 편의점 안에 있는 비상문으로 주원의 집으로 들어갔다.

숙제를 마칠 때까지는 서로의 집에 드나드는 것을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아야 했기에, 해준은 마음은 바빴지만 바로 들어가지 않고 몇 걸음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해준이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 주원은 거실에서 캠코더를 노트북에 꽂고 있었다. 해준은 주원의 옆에 앉아 그가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캠코더는 인식되지 않았다. 다른 포트에 꽂아 보아도 인식되지 않았다.

“인식이 안 돼. 대체 땅속에 얼마나 있었던 거야?”

주원은 캠코더를 손끝으로 잡고 돌려보며 말했다.

‘인식이 안 된다고. 이를 어쩌면 좋아?’

해준은 애타가 찾았던 캠코더가 작동되지 않자 낙담했다.

“어떡하지? 용산전자상가라도 가서 복원해야 하나?”

“내가 하면 돼. 내가 웬만한 전문가보다 나을 걸?”

해준이 걱정스럽게 말하자, 주원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유진이가 남긴 메시지가 담겨 있을지도 모르는데, 남한테 맡길 수야 없지.”

그래, 남한테 맡길 순 없지. 거기 큰 비밀이 담겨 있는데. 주원의 말에, 해준은 막다른 골목에 도착한 것 같았다. 주원이 캠코더를 내어줄 것 같지 않았다. 설령 캠코더를 가져간다 하더라도 인식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었다. 복원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남한테 맡겨 복원하는 것보다는 주원이 복원하는 것이 더 안전했다.

“잠시만.”

주원은 캠코더를 거실 탁자에 둔 채, 모니터 방으로 들어갔다. 해준은 일회용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캠코더를 잡아, 면밀히 보았다.

‘굴러 떨어진 것 치고는 상태가 양호해.’

‘뜨겁다!’

캠코더를 대자마자 입술이 곧바로 뜨거워졌다.

‘캠코더야, 어떤 비밀을 품고 있는 거니?’

해준은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강력한 열기를 느끼고 있었다. 사람이나 물체에 남아 있는 과거가 선명할수록, 입술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며 더욱 농염한 붉은빛으로 빛났다. 아주 강력한 키스 사이코메트리 영상이 시작되었다.

고글과 야구 모자를 쓴 해준과 전투복 차림의 이든이, 산에서 격하게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해준과 이든이 동시에 흙바닥으로 넘어졌다. 해준이 넘어질 때, 얇은 봄 점퍼가 바위 뾰족한 부분에 걸려 찢어졌다. 해준이 일어나려고 하자 이든이 그녀의 어깨를 잡아 밀쳤다.

해준이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점퍼 주머니의 찢어진 부위로 캠코더가 떨어졌다. 그녀는 손을 뻗어 캠코더를 주우려고 했지만 그만 이든의 신발에 차이며 비탈길로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 해준은 캠코더를 주우려고 비탈길 아래로 달려 가려고 했지만, 이든에게 붙잡힌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손이 캠코더를 향해 다가왔다. 그 손은 캠코더를 움켜쥐었다. 큰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덜덜 떨고 있던 강 여사는 자신의 앞으로 떨어진 캠코더를 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