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속죄. 그 이상의 의미

해수는 쉬는 날이면 늘어지게 항상 늦잠을 잤다. 하지만 오늘따라 일찍 일어나 짐 가방을 싸고 있었다. 엄마에게 내려간다고 약속한 날이었다. 해수는 오랜만에 집에 내려갈 생각에 신바람이 나게 바삐 움직여 준비한 후 집을 나섰다.

지잉~

[미또 : 이따가 좀 만나지.]

해수가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고 있을 때, 휴대전화 진동이 한번 울렸다. 유현에게 문자가 온 것이었는데 한참 졸고 있던 해수는 그의 문자를 보지 못한 채, 관성의 법칙에 따라 긴 머리카락이 춤을 추듯 상하좌우 헤드뱅잉을 하고 있었다.

2시간 뒤.

띵동~

“어머 이게 누구야~ 해수야~ 내일 온다더니 어떻게 된 거야?”

그녀의 엄마가 해수를 보더니 신발도 못 신고 뛰어나와 그녀를 품에 안았다. 해수의 엄마는 가냘픈 몸매에 고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시골 아낙네 같지는 않은 우아하고 청초한 느낌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서로를 품 안에 안고 있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하나 더 있었다.

“내 딸~ 내 딸이 왔네? 어디 갔다 왔어.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춥다 어서 들어와~ 내 새끼~ 우리 해윤이”

해수를 해윤이라 부르는 사람은 해수의 외할머니, 금실이었다. 해수는 쓴웃음을 뒤로 삼키며 금실을 향해 걸어갔고 해맑게 웃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 할머니가 오늘은 비가 오는 것처럼 그러시네?”

“응, 요즘 들어 가끔 저렇게 그러실 때 있어. 원래 하던 대로 자연스럽게 알지?”

“그럼~ 지해윤으로 변신합니다.”

“해윤아~ 이리 와서 밥 먹어 배고프지?”

외할머니의 목소리에 해수가 목소리에 더욱더 힘을 주며 밝게 이야기했다.

“어~엄마 나 배고파요~ 맛있겠다. 엄마가 나 먹으라고 이거 다 해놓은 거야?”

“어 아니야~ 저기 미연이가 다 한 거야~ 해윤아~ 미연이 이쁘지? 근데 얼굴만큼 마음도 되게 이쁘다?”

“어이구~그러셨어? 나보다 저 미연이가 더 이쁜가부네?”

외할머니를 엄마라 부르며 장단을 맞추는 해수의 행동은 이미 한두 번 해 본 느낌이 아니었다. 금실은 진행성 치매를 앓고 있는 터라 점점 현재의 기억을 잊고, 과거에 있었던 시간에 갇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 모든 연극은 그녀를 위한 해수와 미연의 배려였다.

“아니, 아니지~ 내 딸이 더 이쁘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말고.”

밝게 웃으면서 해수의 머리를 쓰다듬는 금실과는 다르게 미연은 밥을 한 숟가락도 뜨지 못한 채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거실로 향했다. 해수는 그런 미연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이긍… 할머니가 한두 해 그러시는 것도 아니고만 엄마도 참. 마음 약해가지고.’

해수는 한껏 배부르게 밥을 먹고 할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금실을 방에 모시고 들어가 주무실 수 있게 도와드렸다. 해수는 금실이 잠이 든 것을 확인한 후에 방에서 나왔다.

“엄마~ 주무신다, 이제.”

“고생했네… 우리 해수.”

“고생은 무슨~ 엄마가 매일 힘들지.”

해수는 미연을 뒤에서 안으며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런 해수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겹쳐 올리는 미연의 표정이 매우 흐뭇했다.

“인사드리러 다녀와야지.”

“응, 갔다 올게, 엄마는 할머니 보고있어.”

“혼자 가도 괜찮겠니?”

“무슨 내가 애도 아니고 괜찮아요.”

지잉~ 지잉~ 지잉~

해수의 전화가 그때 마침 진동이 울렸고 화면에 해수가 저장한 상대방의 이름이 떴다. 그것을 본 미연이 조금 느리게 그 이름을 불렀다.

“…미또?”

“아~ 미또라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있어~”

“이름이 미또야?’

“음… 별명? 하하… 엄마 나 전화 좀 받고 들어갈게.”

머리를 살짝 갸우뚱하게 기울이며 묻는 미연의 말에 해수는 당황하며 말을 대충 둘러대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목소리가 밝군?”

전화를 받자마자 유현의 목소리가 해수의 귓가에 퉁겨져 나왔다. 단단한 목소리에 화가 난 그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왜 목소리가 그런 거죠?”

“왜냐니, 몰라서 묻는 건가?”

“모르니까 묻죠.”

“문자는 왜 확인을 안 하나?”

짧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말을 조합해보니 해수는 유현의 감정 상태를 유추할 수 있었다.

삐, 졌, 다, 해수는 입술을 안으로 말아, 이로 지그시 눌러 새어나가는 웃음소리를 겨우겨우 참아내며 말을 이었다.

“지금 문자 확인 안 했다고 그렇게 잔뜩 골이 난 거예요?”

“골?”

해수는 유현의 목소리를 들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한쪽 눈썹을 올리며 자신에게 되묻는 그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어느새 그 사람의 행동, 특징, 습관까지 알고 있는 자신이 새삼 놀라웠다.

“지금 한쪽 눈썹 막 올리고 그러고 있죠? 무슨 애도 아니고 푸훗.”

“집 앞으로 갈 테니 잠깐 보지.”

“잠깐 보기엔 너무 먼 집에 있는데요?”

해수와 유현의 집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해수가 갑자기 거리가 멀다 말하자, 유현이 의아해하며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제가 오늘 엄마 집에 왔거든요~ 여긴 서울이 아니랍니다, 내일 올라갈 거예요.”

“어디 갈 거면 최소한 나한테 말은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왜 꼭 말해야 해요?”

“당연하지.”

유현은 문자를 보낸 지 한참이 지나도 연락이 없던 해수에게 답답한 마음에 결국 전화를 했다. 그런데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그녀의 밝은 목소리에 단박에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게다가 서울이 아니라는 그녀의 말에 자신만 애타게 그녀를 찾은 건가 싶어 괜히 기분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왜요~ 또 목소리 이렇게 착 깔고 ‘우린 연인이니까~’ 이렇게 느끼하게 또 얘기하려고 했죠?”

“…….”

“유현 씨~”

“지금… 뭐라고 했나?”

해수는 전화기를 넘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가 서운함이 뚝뚝 떨어지다 못해 넘쳐나는 것 같았다. 잔뜩 ‘삐쳐’ 있는 이 남자를 어떻게 달래 줘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해수는 하나의 묘안이 생각났다. 왠지 모르게 이름을 불러 줄 때마다 항상 기뻐하는 것 같은 느낌에 마음이 쓰였던 그녀였다. 그런 해수가 성을 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자, 우는 아이의 입에 사탕을 넣어주었더니 울음을 뚝 그친 것처럼 그는 성났던 마음이 스르륵 내려앉았다.

“유현 씨라고 했는데요? 지금은 사적인… 시간이니까~”

“후…나를 이제 아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마음대로 주무르는군.”

정말 오랜만에 불러 진 따뜻함으로 감싸 안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화를 받던 유현은 자신의 가슴 부근을 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난 시간으로 치면 얼마 되지 않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같은 집에서 생활도 해보기도 했고 사건 사고가 잦았던 나날들도 쌓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오늘도 서로에게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왔다. 유현은 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해수가 무척이나 그리워졌다.

“자기는 맨날 그랬으면서? 헙!”

“자기? 너무 진도가 빠른 것 아닌가?”

“이… 자기는 그 자기가 아니잖아요!”

“앞으로 사적인 시간엔 서로 이름이 아니라 ‘자기’라고 부르도록 하지.”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 편안하게 툭 튀어나왔다. 유현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대번에 그 말을 다른 의미로 되돌려 주었다.

“무…무슨~ 아무튼 나 오늘 바빠요~ 가봐야 할 곳이 있어서 내일 올라가니까, 그렇게 알고 좀 쉬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그래요, 이만 끊을게요~”

해수는 자기라는 말을 하는 그의 음성에 급하게 말을 늘어놓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애틋하게 부르는 그 호칭이 아니었음에도 가슴이 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겨울날 밖에서 통화하느라 얼굴과 손이 빨개질 정도로 차디찼지만, 그녀의 가슴은 점점 뜨겁게 데워지고 있었다.

“이 실장 말대로 큰일이었군, 하….”

전화를 끊고 소파에 앉아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자신의 이마에 한 손을 올려놓은 자세의 유현이 허공을 향해 말을 내뱉었다. 유현은 점점 그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그녀를 더는 밀어내지 않고 있었다.

해수는 거실로 들어가 나갈 채비를 하려 자신의 외투를 찾느라 주변을 둘러보다가 화병에 꽂혀있는 꽃을 보고 미연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 이번에도?”

“어. 맞아….”

“엄마 근데 국화는 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해 놓는 건데… 왜 자꾸 집에 들고 들어와서 예쁘게 꽂아두기까지 하는 거야?”

“아… 그건 항상 이맘때면 여기 어딘가에서 먼저 간 사람을 기리는 마음으로 그 꽃을 강물에 띄었을 어떤 이의 마음이 예뻐서… 그리고 그 꽃이 매번 우리 집 앞으로 흘러와서 있으니… 같이 생각해 주고 싶더라고 작년부터는 붉은 국화도 같이 있기도 하고.”

국화꽃이 발견된 건 5년 전 이맘때부터였다. 미연이 마당을 정리하던 중, 국화꽃 한 다발을 발견했는데 지나치기에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쓰였다. 그리하여 꽃을 함부로 버릴 수도 그대로 둘 수도 없어서 가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다음 해에도 계속 같은 날짜에 도착하는 선물처럼 그 꽃이 집 앞으로 흘러왔다. 이렇듯 유현과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우연히 쌓여 인연이 되고 그 인연이 쌓여 운명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해수는 알지 못했다.

“붉은 국화?”

“응, 그래서 더 못 버리겠더라고 꽃을 띄운 사람의 마음을 알겠어서….”

“왜? 무슨 의미가 있어?”

말을 잇는 미연의 눈에 아련함이 묻어 있었다. 이토록 마음을 쓰는데 이유가 있는 것 같은 미연의 말에 해수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국화의 의미는 알고 있는 것처럼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해 많이 쓰이지, 그런데 붉은색은 그렇지 않거든… 붉은색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꽃말이 있어, 아마도 이미 가버린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 반, 또 사랑하는 마음 반, 이런 거 아닐까 하는?”

“아… 그렇구나, 아무튼 엄마, 나 이제 나갔다 올게.”

“응, 그래~ 해수야 잘 다녀와.”

해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미연의 시선이 붉은 국화에 멈춰 있었다. 어느새 차오른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고운 얼굴과 맞지 않는 항상 그늘이 져 있는 그녀의 얼굴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집에서 조금 걷다 보니 소나무 하나가 그녀를 기다리듯이 서 있었다. 해수가 가까이 가서 그 나무에 있는 두 개의 이름을 매만지며 인사를 건넸다.

“저 왔어요… 조금 늦었네. 이번에는 제날짜에 못 와서 미안해요, 엄마… 아빠.”

해수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친부모를 잃게 되었다. 해수의 엄마 아빠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해수를 안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도중 사고를 당하게 되었고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목숨을 잃었다. 아기였던 해수는 엄마가 어떻게든 보호하려 감싸 안은 덕분에 허리 부근에 상처를 입었지만,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갓난아기인 해수를 안고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는 금실 앞에 미연이 나타났다. 자신이 낸 사고로 해수의 엄마 아빠가 죽게 되었다며 무릎 꿇고 얼굴을 들지 못한 채 계속 울기만 하던 그녀에게 다가간 금실은 미연의 손을 한 손으로 감싸며 말을 했다.

“이미 일어난 일 어쩌겠나… 못 깨어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일어났구먼….”

금실의 말에 얼굴을 천천히 든 미연의 눈에 금실의 품 안에 있는 아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머리가 강하게 울렸다. 미연은 머리를 꽉 붙들고 그 통증을 참아내었다. 사고를 낸 미연도 머리를 부딪치며 기억을 모두 잃은 상태였다. 그녀는 아기인 해수를 보며 기억의 한 조각을 찾아냈다. 자신의 배가 불러 있는 모습이었다.

“괜찮아요? 많이 아파? 사람을 불러야겠어….”

사람을 부르러 일어나는 금실의 손을 미연이 강하게 잡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고이 잡고 머리를 숙이며 말을 이어갔다.

“제가… 누군지 전혀 기억이 안 납니다… 죄송합니다, 흑…흑… 아기는 어떻게…흑…흑….”

“…기억이 안 난다고? 갈 데도 없겠구먼… 기억을 찾을 때까지 만이라도 나와 함께 있는 건 어떨까, 나도 혼자 우리 해수를 키우기가 막막해서… 흑… 흑….”

금실의 눈물 섞인 말에 미연의 흐느낌은 점점 더 커져 나갔다. 그렇게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같은 집에서 살게 되었고, 금실은 그녀에게 미연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자신이 아이를 낳고 키웠다는 기억만 남아있던 미연은 속죄하는 마음으로 더욱더 해수에게 마음을 주고 그녀를 돌보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해수의 외할머니 금실이 이상한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해윤이가 이쁜 아이를 낳았어.”

금실은 미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해윤이라고 불렀다.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던 딸이 비명에 간 뒤에 우울증이라는 무서운 병이 그녀에게 침투했고, 진행성 치매로 발전했다.

미연은 그길로 아이와 금실을 데리고 한적하고 공기 좋은 이곳으로 내려왔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고 그 밑에 그 두 사람의 유해를 고이 모셨다. 소나무는 자신으로 인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두 사람에게 보내는 속죄의 마음이었고, 해수를 굳은 마음으로 변하지 않고 키워내겠다는 의미였다.

“화난 거 아니죠? 엄마, 아빠 보고 싶다, 그래도 나한테 미안해하지는 말아요, 나를 지켜주고 또 할머니랑 키워준 엄마를 곁에 남겨주고 갔잖아, 나 씩씩하게 잘살고 있어요, 이보다 더 어떻게 씩씩하겠어? 하늘에서 지켜봐 줘요.”

해수는 나무를 자신이 뻗을 수 있는 만큼 손을 벌려 안고 한참을 기대어 있었다. 항상 당당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그녀의 가려져 있는 아픔이 드러났다. 매년 이맘때면 얼굴도 모르는 엄마 아빠가 자신을 두고 떠나가는 꿈에 해수는 베갯잇이 젖을 정도로 울고 일어났다. 여린 마음을 가진 또 하나의 해수의 모습이었다.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집에는 금실이 어느새 잠에서 깨어 미연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네 이년, 썩 꺼지지 못해?”

“왜~ 또 이러실까~ 우리 금실 씨~”

“어디서, 사람 죽인 년이 내 집에 같이 있어?”

“…….”

그 모습을 본 해수가 급하게 뛰어 들어와 금실을 향해 소리쳤다.

“엄마! 나 여기 있잖아~ 내가 죽다니 무슨 말이야! 엄마한테 늘 잘해주고 챙겨주고 하는 미연씨잖아.”

해수를 본 금실의 표정이 바뀌며 그녀를 품에 꼭 안고는 연실 등을 쓰다듬었다.

“해윤야~ 어디 갔다 왔어… 내가 꿈을 꿨나 봐 네가 죽는 꿈을, 게다가 너를 죽인 사람이….”

금실은 해수를 해윤이라고 말하면서도 기억이 서로 섞여 힘들어하며 말을 이어갔다. 어느 날은 정신이 맑게 개어 자신의 딸을 죽게 한 미연에게 모질게 굴었다가 또 정신을 놓고 미연에게 한없이 친절하고 잘해주었다. 그런 금실을 무척이나 애틋하게 챙기는 미연에게 해수는 늘 미안했다. 자신에게 그토록 사랑을 많이 주면서 키워준 엄마였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두 사람에게 희생적인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해수는 미연과 금실 사이에 있는 잔혹한 진실은 알지 못했다. 그런 해수를 보며 늘 미연은 마음 구석이 돌로 눌려 있었다.

“엄마… 미안해….”

“괜찮아 해수야, 미안하긴….”

‘아가… 미안한 건, 바로… 나야… 너의 엄마 아빠를 죽게 만든….’

해수의 말에 속으로 이 말을 수백 번도 더 되뇌었던 미연이었다. 해수에게 모든 것을 말하고 사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것이 더욱더 해수를 힘들게 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미연은 이 또한 자신이 안고 가면서 스스로 받는 죗값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시간을 흘렀고, 다음날 해수가 서울로 올라갈 채비를 하자, 금실이 뒤에서 그녀를 붙잡았다.

“어디 가?”

“돈 벌러.”

3살배기 아기가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것처럼 금실은 해수의 한쪽 구석 옷을 붙잡고 물었다.

“안 가면 안 돼? 영영 안 올까 봐… 무서운데.”

해수는 몸을 돌려 금실의 따뜻한 두 손을 자신의 손으로 감싼 뒤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엄마. 나 어디 안 가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밥 잘 먹고 미연 씨 말도 잘 듣고 그렇게 잘 지낼 수 있지? 그래야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얼른 오지.”

“정말 내가 밥 잘 먹고 미연 씨, 말 잘 듣고 있으면 금방 올 거야?”

“그럼, 당연하지.”

“나 미연 씨, 좋아~ 그럼 해윤아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하고 가.”

금실은 해수의 말에 주름진 얼굴이 펴지는 것처럼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편 손을 내밀었다. 그런 그녀의 손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어주는 해수는 눈시울이 자꾸 뜨거워져 눈을 깜박이며 애써 감정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