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따스한 초봄의 햇살 아래 눈이 내리고 있었다. '떨어지는 눈을 손바닥으로 받으며 한참을 그렇게 서 있던 소년은, 감았던 눈을 떠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다. 이것은 눈이 아니다. 그저 떨어지는 벚꽃 잎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절대 그들의 아들이 될 수 없다. 한낱 고아일 뿐이다. ''아이의 눈에서 굵은 물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허름한 손뜨개 목도리와 얇은 티셔츠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바지는 소년의 가느다란 발목이 드러날 정도로 몸에 맞지도 않았다. 그러나 고개를 든 아이의 얼굴은 마치 천사와 같은 모습이었다. 진갈색의 고수머리와 역시 같은 색의 눈동자, 유난히 하얀 얼굴이 사람의 눈길을 잡아끄는 소년이었다. ''‘끼익. 끼익.’''소리 없이 한참을 울던 소년의 귓가에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보육원 앞뜰에 흩날리고 있는 벚꽃이 내는 소리는 틀림없이 아니었다. 원생들은 모두 놀이동산으로 견학을 가고 지금은 보육원 내에 아무도 없는 것을 아이는 알고 있었다. ''소매로 눈가를 쓱 문질러 닦은 소년은 여느 보육시설에 비해 제법 넓은 뜰을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네를 타고 있는 아이도, 정글짐이나 시소를 타는 아이도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낮은 단층의 건물의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뒤뜰로 발걸음을 옮기자 귓가에 더욱 명확한 소리가 들려왔다. 거슬리는 금속음과 함께 작지만 누군가의 흐느낌 소리가 아이의 청각을 후벼파고 있었다. 건물의 코너를 돌아 뒤뜰로 발을 내딛는 순간, 소년은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말았다. ''철저히 외로운 아이.'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동식 흔들 그네에 앉아 한 소녀가 울고 있었다. 푹신한 안락의자에 레이스마저 달린 그네는 소녀가 만들어내는 반동으로 인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소녀의 품에 안긴 커다란 인형의 예쁜 옷은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처음 보는 아이였다. 비싸진 않지만 깔끔한 옷을 차려입은 소녀는 한 눈에도 보육원에서 오래 생활한 아이 같아 보이진 않았다. ''소년은 한달음에 소녀에게로 다가갔다. 평소 심하게 낯을 가리는 편인데도, 눈앞의 작은 아이에게는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소녀는 인기척에 놀란 듯 번쩍 고개를 들며, 이슬을 머금은 듯한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누구세요?”''기껏해야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의 얼굴과 목소리에 소년은 가슴이 미어져왔다. 이 아이는 무슨 이유로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이곳에서 얼마나 머물게 될까. 그리고 이곳에서 얼마나 큰 상처를 받게 될 것인가.''소녀의 커다란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니, 곧 이곳을 떠나게 되는 자신의 현실이 갑자기 싫어지는 소년이었다. 그러나 그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아이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안녕! 난 이곳에 사는…… 오빠야.”''잠시 망설이던 소년은 우선 자신의 이름은 밝히지 않기로 하였다. 솔직히 뭐라 이야기해야 할지 스스로도 헷갈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녀는 잠시 맑은 눈으로 그를 응시하더니, 고개를 푹 숙이며 뭐라고 입술을 달짝였다. ''“뭐라구? 잘 안 들려. 훗. 이제 보니 너 부끄럼쟁이구나.”''소년의 놀림에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든 소녀는 주먹을 쥐며 큰 소리를 질렀다.''“아냐! 난 은이라구. 은이!”''“근데, 넌 왜 여기 혼자 있니?”''“엄마 기다리는 거야.”''“뭐?” ''소년은 멍해진 얼굴로 은이라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넌 버려졌어. 엄만 안 와.’''천진한 아이의 표정을 보며, 차마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어 소년은 고개를 숙였다. 질 나쁜 친구들과 불량스러운 짓만 하고 돌아다니던 자신에게 이런 양심도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지금은 봄이야. 목도리는 겨울에 하는 거야.”''소녀의 잘난 척 하는 훈계조의 목소리에 소년의 고개가 번쩍 들려졌다. 고아원에 들어온 뒤로, 잠잘 때와 한여름을 빼고는 목도리를 몸에서 떼어놓아 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어머니가 남긴 유일한 흔적이었기에, 부모님과의 마지막 연결고리만은 끊고 싶지 않았다. ''“유행이야. 임마.”''그의 말에 소녀는 배시시 웃으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의 거친 손을 잡았다. ''“나도 목도리 할래. 나도!”''“안 돼. 이건.”''제대로 빤 적이 없어 더럽다고 말을 하려다, 소년은 입을 다물었다. 대신 그는 때가 묻은 목도리에 은이의 손이 닿지 못하도록 몸을 돌려서 막았다. ''“오빠! 오빠! 그거 나 할래!”''금방이라도 다시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오빠’라 부르며 떼를 쓰는 소녀를 보며 그의 마음이 쉽게도 허물어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