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이 헬기 속에 비옷과 등산화를 준비해 놓은 까닭에 정우는 빗속을 거침없이 걸어 나갈 수 있었다. 그와 선준은 헬기장에 도착하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인수봉 쪽으로 건너와 다시 아래쪽으로 샅샅이 훑어 내려오고 있었다. 아직 오후 서너 시밖에 되지 않았지만 비가 내리는 까닭에 나무가 거의 없는 바위산도 어둑하였다. '“윤서윤, 윤서윤!”'쉼 없이 큰 소리로 부르는 소리가 그녀에게 가닿기를 바라며 정우는 목이 쉬어라 그녀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산 아래에서 출발해 온 팀들도 거의 맞닿는 곳까지 올라왔는데 그녀를 찾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쯤에 있어야 하는데 그녀가 쉽게 발견되지 않아 정우는 애가 타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 어. 저기, 저거 여자 스카프 아냐? 일부러 매어 놓은 것 같은데.”'선준이 길에서 벗어난 바위 사이에서 뭔가 발견했는지 정우에게 소리를 지르며 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우도 선준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앞서 가던 선준을 제치고 더욱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제발 그녀가 그 곳에 있기를 바라며. '“윤서윤, 윤서윤!”'귓가를 앵앵거리는 소리가 그녀를 귀찮게 했다. 그냥 의식을 놓친 상태가 마음에 들었는지 의식을 불러일으키려는 소리가 귀찮기만 했다. '바위틈새 몸을 끼우고 등을 기대앉은 채 눈을 감고 의식이 거의 없어 보이는 서윤을 발견한 정우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발견했다는 사실과 그녀가 너무 애처로운 모습이라는 점에 눈가가 붉어진 것도 같았다. 정우는 재빨리 비 옷 위에 매고 있던 방수 배낭을 내려 그 속에서 얇지만 포근한 담요와 타월을 꺼냈다. 눈을 뜨지 않는 그녀를 조심스레 흔들어 보았다. '“서윤, 윤서윤, 눈 떠봐 제발. 정신 차려. 윤서윤.”'정우가 그녀의 머리카락과 옷의 물기를 타월로 닦으며 계속 그녀를 불러보았다. 끊임없이 귀찮게 귓속을 파고드는 소리에 그녀의 눈이 찌푸려지며 억지로 떠졌다. 흐릿하게 떠지던 눈꺼풀이 눈앞에 있는 그의 얼굴에 놀라 몇 번 깜빡였다. '어, 어. 사람이 보였다.'“정, 정우 씨?”'분명 정우의 얼굴이었다. 걱정과 사랑이 가득 담겨 있는 그의 눈과 마주치자 서윤의 눈에 눈물이 금방 맺혔다. '“촉, 이제 걱정 하지 마.”'정우는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시 눈을 마주쳤다.'“체력 낭비 되니까 말하지 말고 고개로만 알려 줘, 어디 다쳤어?”'서윤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힘이 다 빠진 손가락을 겨우 움직여 삐끗한 발을 가리켰다. '“삔 것 같아요.”'“좋아. 괜찮아. 이 정도로 의식이 맑으니 삔 건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무사히 구해줄게.”'정말 뭐라고 말해야 할 지 생각할 새도 없이 쉰 목소리에 담겨 마음이 쏟아져 나왔다. '“와줘서 고마워요. 나, 당신이 와주길 기도했어요. 너무 보고 싶었어요. 사랑해요.”'이런 순간이기에 그녀의 사랑한다는 말이 더 감동스럽게 느껴지는 걸까? '정우는 먹먹해진 마음으로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대고 자신도 사랑한다고 속삭이고는 선준에게 그녀를 자신의 등에 업혀 달라는 손짓을 하였다. '“저체온증 무서운 거잖아. 빨리 움직여야겠다. 그리고 조심해. 바위도 미끄러운데 헬기장까지 가깝지도 않으니 업고 움직이려면 장난 아냐.”'선준이 그의 등에 업힌 서윤의 등 뒤로 꼼꼼히 담요를 덮어주며 정우에게 조용히 조심하도록 주의를 환기시켰다. '혹시 서윤이 많이 다친게 아닐까 걱정하느라 심각한 눈빛을 한 정우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선준이 앞장서며 눈짓으로 조용히 출발 신호를 보냈다. '쿡쿡.'웃을 상황은 아니지만 자신과 정우가 가져온 가방들을 챙겨들고 먼저 앞장 선 선준의 입가에 웃음이 고였다.'‘자식, 진짜 긴장했어. 겉보기에 서윤 씨는 지친 기색인 것 이외엔 별 문제 없어 보이는데 정우 자식은 걱정으로 완전 초죽음이잖아. 훗, 운 좋게도 나 완전 대박. 이 놈 두고두고 놀릴 거리 잡았잖아. 자기 여자가 소중한 거 팍팍 티내는 것 보니까 앞으로 두고두고 놀리면 심심하지는 않겠는걸.’ '앞에서 먼저 길을 인도하는 선준의 뒤를 따라 묵묵히 업힌 그녀가 등에서 흘러내리지 않도록 조심스럽지만 힘껏 그녀의 엉덩이와 다리를 받쳤다. 자신의 여자가 느꼈을 순간의 공포나 고통을 주희에게 몇 배가 되도록 갚아주겠다는 생각조차도 지금은 사치였다. 비 때문에 미끄러워져 더욱 위험한 바윗길을 서윤을 업고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정우는 자신의 등에 업힌 그녀를 안전하게 헬기장까지 데려가는 데 집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