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툰툰 2주년 (1)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뱉었다. 마음을 가다듬어 고개를 들려 했지만 유난히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을 마주하는 게 낯설게 느껴졌다.

재희는 화장실 거울 앞에서만 몇 분째 서 있는지 모르겠다. 벌써 거울을 보길 수십 번이었지만 고개를 들 때마다 낯선 사람과 대면하는 것처럼 그의 시선 처리는 어색하기만 했다. 떨리기도 했고.

긴장된 마음으로 있던 재희지만 그는 용기 내어 고개를 돌리고 자신이 입은 옷을 살폈다.

상의는 칙칙한 회색 티셔츠 대신 깔끔한 데님 셔츠. 하의는 무릎 늘어난 추리닝 대신 쫙 빠진 슬랙스. 눈에 띄는 옷이 아니라 무난했지만 왠지 화려한 옷을 입은 것만큼 어색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당연했다. 그건 평소의 재희의 스타일이 전혀 아니었으니까. 아무리 보기에 괜찮다고 한들 눈에도 몸에도 익지 않는 옷은 적응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분명 입어 보고 사긴 했어도 막상 상하의 전체를 착용하니 단벌로 입었을 때하고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이렇게 입는 게 괜찮은 건가?”

옷을 두리번거리며 재희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이제 어느 정도 거울에 비치는 자신을 대면하는 건 적응이 됐지만 여전히 이런 스타일은 낯설었다.

똑똑.

“오빠, 다 됐어요?”

한참을 옷을 두리번거리던 재희지만 노크 소리가 들리자 이제 더 이상 시간을 끌 수가 없었다. 돌아선 그는 문을 열기 전 심호흡을 했다. 문손잡이를 잡는 게 유난히도 떨렸다. 문을 열고 마주칠 수아는 무슨 표정을 지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한 번도 이렇게 입은 적이 없어서 더 그랬다.

잠시 머뭇거리던 재희지만 그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아를 생각하자 떨리는 마음을 뒤로하고 벌컥 문을 열었다. 그는 차마 얼굴을 마주칠 용기가 없어 눈을 감은 채로 열었지만 환한 빛에 눈이 부셔 눈을 뜨자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그녀와 마주칠 수 있었다. 왠지 무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어때?”

순간의 침묵이 싫어 재희가 먼저 질문을 꺼냈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수아의 시선은 처음 보는 건 아니었지만 처음 입은 옷 때문인지라 그 시선이 민망하기만 했다.

잠시 수아는 그가 입은 옷을 신중히 살피는지 말없이 재희를 보기만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고개를 들더니 빙긋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잘 어울리는데요? 오빠가 그렇게 입으니까 꼭 다른 사람 보는 것 같아요.”

수아는 웃으며 말하는 것도 모자라 엄지까지 치켜세웠다. 누군가에겐 그 칭찬이 꽤나 뻔한 칭찬일지 몰라도 적어도 재희에게는 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거 칭찬 맞지?”

재희는 일부러 수아에게 미심쩍은 듯 물었지만 그의 입가에 걸려있는 웃음까진 감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감정이 얼굴에 뻔히 드러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이상했지만 수아는 일부러 모른 척해 주었다. 괜히 부푼 마음에 바람 빠지게 하고 싶진 않았다.

“당연히 칭찬이죠.”

그런 의도를 파악할 리 없는 재희는 그녀의 맞장구에 괜스레 입꼬리만 더 올라갔다. 참는 듯 못 참는 듯 움찔거리는 그의 입꼬리가 귀엽게 느껴져서 수아가 피식 웃었다.

“이제 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가는데 한 시간 넘게 걸린다면서요.”

시간을 확인한 수아가 재희에게 넌지시 말했다. 잠시 칭찬에 취해있던 그였지만 시간을 확인하자 서둘러 현관으로 갔다. 생각보다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해버렸다. 더 이상의 늑장을 부릴 시간은 없었다.

“차 막히는 건 아니겠지?”

“낮에는 그렇게까지 막히진 않을 거예요. 보통 한산하니까요.”

“그래?”

“네. 여기 핸드폰하고 지갑이요.”

“아, 고마워.”

정신이 없는 통에 지갑과 핸드폰을 챙기는 걸 깜빡 잊어버릴 뻔했다. 수아 덕분에 챙기긴 했지만 아직은 입은 옷이 마냥 어색해서 그런지 들고 있는 지갑과 핸드폰마저 낯설었다.

“그럼 다녀올게.”

“잠깐만요, 오빠.”

로퍼를 신고 뒤돌아서려던 재희는 수아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자 자신에게 다가온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갑자기 가깝게 다가온 그녀 때문에 그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는데 그런 그의 감정이 어떻든 상관하지 않고 수아는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칼을 매만졌다.

손가락 틈 사이로 재희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빠져나갔다. 그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눈앞에 있는 그녀를 바라보려고 했는데 심장이 진정되지 않았다. 수아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옅은 비누 향이 느껴졌다. 은은했다. 금방이라도 취할 것만 같았다. 향에도 그리고 그녀에게도.

재희는 멍하니 있을 때 왁스를 다 바른 수아는 웃어 보이며 그에게서 한 걸음 떨어지며 말했다.

“인물이 훤하네요.”

아직까지 어안이 벙벙해 정신이 없었지만 수아가 손거울을 비춰 주자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거울을 가만히 응시했다. 확실히 왁스를 바르니 전보단 보기엔 괜찮았다. 스타일에 맞게 깔끔해 단정히 보이기도 했고.

하지만 여전히 밀려오는 어색함은 지울 수가 없었다. 아직까진 다른 사람과 대면하는 기분이었다.

“고마워. 신경 써 줘서.”

“그보다 이럴 시간 없잖아요. 얼른 가야죠.”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하던 재희는 시간을 확인하자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시간을 지체해서 조마조마했는데 또 허비해 버리다니.

“그럼 갔다 올게.”

“네, 조심히 갔다 와요.”

평소와는 조금 다른 어색한 인사여도 재희는 기분 좋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수아는 그런 그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지만 그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웃음을 지우고 무미건조한 얼굴을 하고 방으로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