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초대''''카르델리아의 왕궁은 다른 유럽 왕실의 궁전들처럼 고풍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순백의 미를 자랑하는 성이었다. 1500년 중반에 알프레드 8세가 건축하여 지은 뒤, 두 차례의 대전을 거치면서 일부 성벽이 파손된 적도 있었지만 그 후의 보수공사와 증축공사로 인해 그곳은 다른 현대의 편리한 기능을 담아 다시 새롭게 태어났다. 중앙의 돔을 중심으로 양쪽에 우뚝 솟은 첨탑과 궁전의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회랑. 그리고 800미터가 넘는 회랑의 벽에 조각되어 있는 아름다운 신화가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잡아끌고 있었다. 그러나 현 국왕이 머물고 있는 곳이라 이곳은 외부인의 관광이 금지되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외국인들은 저마다 아쉬움을 토하며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공주님.”'드바이유 남작부인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신이 모시고 있는 상전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거기에 답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그래도 그녀의 발걸음은 힘차게 이어지고 있었다. '“저기 계시는군.”'공주가 머물고 있는 왕궁의 동쪽 침궁에 자리 잡은 정원으로 눈길을 돌리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볕을 잘 들게 하려고 일부러 얕은 담을 조성한 그곳은 현 국왕인 조지3세가 자신의 딸을 위해 만들어놓은 곳이었다. 막내 딸 마리메이어 공주가 성인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조경설계사를 불러 만들게 한 이곳은 사시사철 아름다운 장미의 향을 맡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하고 많은 꽃 중에서 장미를 심어놓게 한 이유는 이 정원을 설계할 때 조지3세가 자신의 딸로 하여금 원하는 꽃을 심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곳은 장미정원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공주의 허락 없이는 그 어느 누구도 발길조차 내디딜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주무시고 계시잖아?”'드바이유는 공주가 자고 있는 것을 보더니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공주가 잠든 곳이 하필이면 정원의 제일 깊숙한 안쪽, 벚나무 아래였기 때문에 못마땅했다. 행여나 남들이 지나가다가 보게 되면 어쩌시려고 저러실까. 게다가 이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주무시다니……또 주근깨가 돋아도 전 몰라요. 그녀는 역정을 내다시피 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공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의 속내는 전혀 모르는 체 쿨쿨 잠만 자고 있는 공주가 오늘따라 아주 미웠다. 그녀는 들고 있던 종이를 다시 내려다보다가 또 한 차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근데 그 놈은 대체 어디 있기에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평소, 공주의 곁을 지키며 온갖 잡일을 도맡아하던 시종, 자크. 그가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드바이유는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공주님이 주무신다고 곁을 비웠단 말이지? 당장 시종장에게 말해서 해고시켜야지.’'그러다가 문득 이상한 게 눈에 들어왔다. 바람 한 점 없는 곳에서 유독 벚나무의 가지가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코에 얹어놓은 조그마한 안경을 살포시 치켜세운 뒤에 그곳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사람 키의 다섯 배가 넘는 거대한 벚나무. 일본을 방문하면서 그 꽃에 반한 마리 공주가 당장에 직수입하라고 명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곳의 노리노미아 공주가 호의의 표시로 그것을 공짜로 내주는 바람에 사절단들이 그것을 메고 오느라 아주 진땀을 흘리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공주는 전혀 개의치 않아하는 표정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