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나중을 기약할 수 있었지만 이젠 그마저 두려웠다. 더 이상 부부가 아닌 것처럼 되어 버린 현실에 가장 가슴이 아픈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이제 한 침대에 같이 눕는 것조차 두려웠다.'눈물을 삼키며 밖으로 나온 그녀는 욕실 앞에 있는 그의 옷을 챙겨들고 현관 밖으로 나왔다. 먼지를 털고 안으로 들어서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욕실에서 나오는 운과 부딪쳤다.'“보기 흉해.”'핏기가 가신 얼굴이 보였지만 그녀는 모른 척 외면하고 방으로 들어가 옷장을 열어 옷걸이에 옷을 걸었다. 방으로 들어온 그를 피해 욕실로 들어섰다. 물 한 방울 튕기지 않았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된 욕실을 보자 뒷정리를 해준 그에게 고마운 게 아니라 화가 났다.'“이번엔 뭐가 마음에 안 들어?”'휙 고개를 돌리자 팔짱을 낀 채 트렁크 팬티를 입은 모습으로 운이 문에 기대어 서 있었다.'“아무것도.”'“왜? 네가 치워야 하는데 내가 치워서 화가 났니?”'“아니, 깨끗해서 좋아. 두 번 손 가지 않게 해서…….”'말은 그렇게 했지만 입술이 심하게 떨리고 있는 것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이대로 정말 자신들의 결혼생활이 끝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그 역시 점점 자신의 껍질 속으로 숨는 그녀를 볼 때마다 이대로 끝나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멈춘 것처럼 두 사람은 서로를 응시했다.'운 자신은 연경이 없으면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팔짱을 풀며 운은 대화를 시도했다.'“아침에 중요한 재판이 있어.”'사람의 습관은 참으로 무서운 법이었다. 결혼한 지 삼 년째로 접어들면서 결혼해서 지금까지, 아니 연애할 때부터 그는 재판이 있을 때 꼭 말했다.'“같이 자고 싶어.”'“…….”'“안고만 잘게. 알잖아, 나 재판 있을 때 너 안지 않으면 패소한다는 것.”'그랬다. 처음 사건을 맡았을 때부터 늘 그는 그녀의 품에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했다.'“그 정도는 들어줄 수 있잖아.”'운은 소리치고 싶은 것을 힘들게 참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소리를 높여 본 적이 없었다. 참을성 있게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며 이를 악물었다.'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그녀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졌다.'“알았어.”'찰나였지만 그의 눈에 안도감이 어리는 것을 그녀는 분명히 보았다. 원하는 답을 얻었는지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소진했던 힘이 돌아온 것처럼, 조금씩 움직이며 최대한 시간을 들여 주변 정리를 끝낸 그녀는 벽에 몸을 기대었다.'벌써 몇 달을 그와 떨어져 자고 있는지 몰랐다. 그녀가 아이를 원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는 결코 잠자리를 허락지 않았다.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은 알았지만 어떤 유혹에도 넘어오지 않았다.'“난 씨를 제공하는 남자가 아니야!”'차갑게 쏘아 버리는 그의 말에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온몸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설마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지 몰랐다.'둘째 아이가 유산된 뒤부터 점점 매달리는 그녀를 그는 두려워하고 있었다.'“제발…….”'애걸하는 그녀의 매달림을 그는 매정하게 뿌리쳐 버렸다.'“나 아기 갖고 싶어서 너하고 결혼한 것 아니야.”'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였다. 이대로, 정말 이대로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난 널 닮은 아이 낳고 싶어. 너도 처음에는 원했었잖아.”'“그래, 부인하지 않겠어. 하지만 아이와 너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내가 누구를 택할지 잘 알 거야.”'“운아…… 도와줘.”'“싫어. 아이 때문에 말라가는 것 더는 못 봐.”'“나…… 나는 상관없어.”'경악한 듯 바라보던 그의 눈길을 지금도 잊을 수 없었다. 마치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은 것처럼 굳어 있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렸다. 한참을 뚫어지게 바라보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그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결혼해서 처음으로 떨어져 잠든 날이었다.'자신의 껍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은 친정어머니였다. 첫 애를 유산하고 자신보다 더 서럽게 울던 모습을 보며 괜찮을 거라 위로했지만, 걱정이 되는 듯 자신의 손을 꼭 부여잡으며 울음을 삼켰다.'“왜 하필 가장 못난 것을 닮았어!”'아이 낳는 것만큼은 본인을 닮지 않기를 바랐는데…… 세 번째 유산 소식에 어머니는 그만 까무러쳐 버렸다.'“미안하다.”'“엄마가 왜…….”'“불쌍한 내 새끼. 어쩌자고…… 왜 너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구나.”'김 여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연경을 바라보며 한 솥 끓여놓은 미역국을 퍼 주었다. 죄인 같은 얼굴로 운을 바라보던 모습에 왜 그렇게 가슴이 아팠는지, 괜찮다며 제발 자신에게 더 이상 미안하다 말하지 말라며 부탁했는데 어머니는 그렇지 못했다.'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지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정말…… 이대로 아이를 갖지 못하고 죽는 것은 아닌지, 자신과 운에게 정말 아이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프롤로그'1장.'2장.'3장.'4장.'5장.'6장.'7장.'8장.'9장.'10장.'11장.'12장.'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