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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그런 나에게 맹목적인 신임과 사랑으로 다가오는 여인이 나타났어. 난 그녀의 맹목적인 사랑에 정신없이 빠져 버렸지.”
욱씬.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그의 고백에 왜 이렇게 배신감이 드는 것일까. 싫다. 이런 추악한 감정은 내게 없다 생각했는데 그녀를 믿고 자신을 이야기를 풀어놓는 그에게 이렇게 추잡한 사념이 끼어들다니. 아리는 가슴에 무의식적으로 손을 올리며 그녀는 계속 경청했다.
“그래서요?”
“결혼식 당일 지켜주겠다 맹세를 깨어 버린 채 날 향해 울부짖는 그녀를 버리고 떠났어. 그래서 몸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겠지만.”
“그녀는 어떻게 되었나요?”
지오의 신부가 울부짖는 환청이 그녀의 귓가를 메아리쳤다. 정은은 숨넘어가게 얼른 물어보았다.
“사라져 버렸어.”
적막한 어둠에 잠긴 머나먼 거리에서도 그녀는 그의 절망을 생상하게 느낄 수 있었다. 상심에 젖어든 그의 눈동자가 아련하게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떻게요. 지오.”
그의 슬픔에 숨이 막혀왔다. 정은은 침대에 다리를 내려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외로움이 내려앉은 지오의 어깨를 감싸 다정하게 위로하며 쓰다듬어 주었다.
“그녈 다시 되찾을 거야. 꼭.”
다가가자 확신을 담은 지오의 강렬한 눈동자가 그녀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