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위해서 죽은 오빠가 되기로 한 선은

남장을 하고 간 고등학교에서 만난 기윤



둘의 우정은 깊어만 가고

즐거운 일만 일어날 것 같은 생활이 이어지지만



선은에게 친구이상의 감정을 갖게 된 기윤은

그것을 회피하려 유학을 떠난다. 



그리고 12년후!

선은을 남자로 알고 있는 기윤과

기윤에게 여자라고 고백하지 못한 선은의

아슬아슬 두근두근한 만남이 계속되는데....

-본문 중에서-

이선은! 일어나.”
기윤이 힘차게 선은의 어깨를 흔들었다.
“으흥…… 좀만 더…….”
선은이 이불을 머리 위로 끌어 올리며 뒤척였다.
기윤은 순간 손을 떼었다. 잠에 취해 한껏 잠긴 목소리가 여성의 목소리처럼 들렸는데, 그 신음 소리가 야릇하기까지 했다. 기윤은 불시에 느낀 감정을 몰아내기 위해 고개를 짧게 몇 번 흔들고는 소리를 질러 선은을 깨웠다.
“야! 이선은, 안 일어나! 너 안 오면 김종호 대표가 여기까지 온다고 했다고!”
선은은 그녀의 이름과 종호의 이름에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렸다. 그 와중에도 석무가 잠을 깨우는데 종호의 이름을 들먹일 일이 무얼까 머리를 굴려 보았다. 그러다 제주도에 간 석무가 언제 올라왔을까를 되짚어 보다가 눈을 번쩍 떴다.
“깼냐?”
“……어.”
눈은 번쩍 떠졌지만 아직 정신은 맑아지지 않은 선은이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아무리 피곤했기로서니 어디서 잠이 들었는지를 까먹다니, 천하의 바보가 따로 없었다.
“근데 종호 선배가 왜? 무슨 문제 있대?”
“아니. 너 여기 왔는데 연락이 안 된다면서.”
기윤은 팔짱을 끼고 열린 문 사이에 비딱하게 기대섰다.
“아……. 전화했나?”
가방을 찾아 둘러보다가 선은은 방의 모서리 가운데 놓인 테이블 위에 있는 가방을 발견하고 일어섰다.
“여기서 잔다고 했어. 깨면 연락하란다고 말했어.”
“뭐?”
선은은 휙 고개를 돌려 기윤을 보았다. 아까는 너무 졸려서 이성을 잃은 것이 분명했다. 잠을 잔다는 어감이 이렇게나 이상하게 들리다니.
“피곤해 보여서 자고 가라고 했다니까 화난 거 같더라고.”
“화가 나?”
선은은 핸드폰이 꺼져 있는 것을 보고 전원을 켰다가 배터리가 거의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새로운 배터리로 갈았다.
“직접 그렇다고 말은 안 했지만, 전화상으로도 그게 느껴지더라. 무거운 침묵, 깊은 빡침? 그런 게 전화에서 새어 나오는 거 같더라니까.”
“선배 입장에서야 그렇지.”
선은은 메시지를 보낼까 전화를 할까 고민을 하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어차피 맞을 매라면 자진 납세가 덜 맞는 방법이라는 생각에 종호의 단축 번호를 꾹 눌렀다.
“뭐가? 내가 친구인 거 알잖아. 내가 이걸로 컴플레인을 걸기라도 할까 봐?”
“네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많잖아. 선배 입장에서는 뭐든지 조심하게 좋은 거고.”
맞는 말이고 선은의 행동이 옳았지만, 기윤은 열심히 종호의 변호를 하는 선은이 마땅찮았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거잖아.”
“말꼬리 잡을래?”
[이선은, 너 이 자식! 어디야!]
말하는 동시에 종호의 화난 음성이 핸드폰을 통해서 터져 나왔다. 선은은 핸드폰을 귀에서 살짝 떼고 손을 들어 기윤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손짓을 했다.
“청담동. 이제 갈라고.”
[너 미쳤어? 제정신이야?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계지…….]
“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 종호 선배!”
선은은 튀어나올 것처럼 소리를 쳐 대는 종호를 진정시키려고 계속 그를 부르며 통화 음량을 줄였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종호는 정말 화가 많이 났는지 선은의 말은 듣지도 않고 불같이 화를 냈다.
기윤은 종호에게 절절매는 선은의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정확하게 무엇이라고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멀찍이 떨어져 있는데도 종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화가 난 것은 알겠다. 이해도 했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성질을 부려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오…… 선배 이따 전화할게.”
선은은 종호의 말을 더 듣지 않고 뚝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낮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대표, 성격 참 뭐하다. 같이 일하기 힘들겠어.”
“선배 성격 엄청 좋아. 일하기도 되게 편하고. 오늘은 화날 만했어.”
“그게 뭐가 화날 일이야?”
어이없어 하는 기윤도 이해했다. 기윤의 입장에서야 선은이 남자이니 당연히 종호가 괜히 민감하게 굴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선은은 두 사람 모두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물론 모든 근원은 선은, 그녀였다.
“다 내 잘못이야."

목차

프롤로그

1. 남자라고 불러다오

2. 여장을 하다

3. 혼돈의 일요일

4. 조력자

5. 평온한 일상, 난장판 일상

6. 떠나는 녀석들

7. 뜻밖의 재회

8. 계속되는 거짓말

9. 우리는 친구

10. 녀석은 남자

11. 그들의 이상형

12. 내 마음을 알아주오

13. 오해 아닌 오해

14. 거짓말 아니지?

15. 나는 여자랍니다

16. 그해 마지막 밤

에필로그 #1

에필로그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