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난 싫어, 요즘 한창 유행하는 나쁜 남자 그런 거. 그래 봤자 여자 울리는 못난 놈들인데……. 그런 못난 남자와는 절대 사랑 같은 거 안 해, 난.

준수한 외모에 잘나가는 건축사사무소 대표 한승우. 천하의 바람둥이인 그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줄을 서 있는데도 어느 순간 차갑기만 한 김윤아에게 눈길이 간다. 이유도 모른 채 승우는 간만에 뛰는 심장을 어쩌지 못해 매일 윤아를 찾는다.

그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그녀가 왜 그를 황량하게 바라보는지도 모른 채…….

‘널 가지면, 오늘의 널 가지게 되면, 내일의 너는 내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겠지? 늘 그러했듯이…….’

“오늘 한 번이면 될 텐데요. 그러면 끝나겠죠? 이 빌어먹을 욕정도…….”

“사랑……하고 싶어, 윤아 씨와.”

“사랑 같은 거 난 몰라요. 그저 솔직하게 욕정이라고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요? 난 그것 때문에 여기 와서 앉아 있는데. 하루면 끝나버릴 그런 사랑 따윈 난 믿지 않으니까.”

2. 작가 소개

빈센트(Vincent)

빈센트 (박혜정)

사랑 이야기가 좋아 사랑 이야기를 읽다가 없는 재주로 사랑이야기를 취미로 삼아 쓰고 있는 평범한 아짐.

평범함 속에서 피어나는 평범한 사랑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글을 쓰고 싶은 글쟁이.

메일 : vin0906@hanmail.net

현재 피우리넷에서 로맨스 소설을 연재하고 있으며, 전자책으로 [가면 뒤의 사랑], [신파], [하룻밤] 등 출간.

3. 차례

# 프롤로그

# 1

# 2

# 3

# 4

# 5

# 6

# 7

# 8

# 에필로그

4. 미리 보기

승우가 노크를 하자 호텔 룸 안에 먼저 도착해 그를 기다리고 있던 윤아가 문을 연다. 그가 여느 때처럼 표정이 없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놓지 않으며 룸 안으로 들어선다.

“저녁식사는 했나요?”

어제의 거친 반말에서 다시 다소곳한 존대로 돌아온 그녀의 어투에 승우는 또 저도 몰래 슬쩍 입가에 미소를 만들었다.

“아직. 룸서비스 시킬까?”

“그럴 줄 알고 미리 주문해놨어요.”

승우를 초대해놓고, 당최 그를 마주 보려고도 하지 않는 윤아를 승우가 성급히 안아버린다. 그녀의 마음처럼 단단하게 굳어진 그녀의 몸을 안는 그의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린다.

“먼저 씻을래요?”

그에게 물어오는 수줍음이 섞이지 않은 담담한 그녀의 음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의 몸을 더욱 세게 끌어안으며 그녀의 목에 제 얼굴을 묻고, 그녀의 체취를 후욱 들이마신다. 봄꽃을 닮은 청량한 비누 냄새와 연한 스킨 냄새와 부드러운 파우더 냄새와 그녀 본래의 체취가 섞여 그의 후각을 자극한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찾는다. 장난처럼 내려앉았다 금세 떨어져 나간 그의 입술을 그녀가 멍하니 바라본다.

“먼저 씻을게요.”

작은 몸을 비틀어 승우의 품에서 빠져나온 윤아가 재빨리 욕실로 들어간다. 혼자 남은 승우는 바보가 되어버린 것 같다. 종착역을 모르는 폭주열차를 탄 기분으로 현실에서 붕 뜬 마음엔 그녀에 대한 갈증만으로 가득하다.

‘널 가지면, 오늘의 널 가지게 되면, 내일의 너는 내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겠지? 늘 그러했듯이…….’

마음이 닿지 않는 이성이란 놈이 설명할 수 없는 갈망을 억누르려 말해본다. 그러나 그의 손은, 그의 몸은, 그의 온 감각들은 그녀를 갖기 위해 아우성친다. 미친 듯이…… 미칠 듯이.

샤워를 마치고 나온 윤아의 모습은 물 머금은 수련처럼 풋풋하고 아름답다. 그녀에게 다가간 승우는 물기가 채 다 마르지 않은 그녀의 긴 머리칼을 한 줌 쥐어 그녀의 체향을 들이켠다. 다행히도 그가 좋아하는 그녀의 체취는 씻겨 내려가지 않고 그녀 안에서 은은하게 퍼져 나온다. 그가 두 손으로 고개 숙인 그녀의 얼굴을 감싸든다. 아까와는 달리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가 그를 슬프게 한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 그가 가장 싫어하는 행위 중 하나.

“도망가고 싶어?”

승우의 손에 얼굴이 잡힌 채 윤아가 고개를 내젓는다.

“오늘 한 번이면 될 텐데요. 그러면 끝나겠죠? 이 빌어먹을 욕정도…….”

화장기 없는 순수한 모습의 윤아가 그녀에겐 결코 어울리지 않을 법한 거친 말을 뇌까린다. 그리고 승우는 처음으로 여자의 말에 상처받고 있는 자신을 깨닫는다.

“씻고 나올게.”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시도하려던 마음을 잠시 접은 채로 그저 꿀꺽 침을 삼키고 만 승우가 말한다. 승우가 샤워를 하는 동안 주문했던 룸서비스가 나오고 윤아는 하얀 가운만을 입은 그 모습 그대로 앉아 그를 기다린다.

「도망가고 싶어?」

그를 만났던 시간들 중 유일하게 그의 진심을 읽을 수 있었던 그 질문을 곱씹던 그녀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쥔다. 찰칵하는 문소리가 들린다. 그가 제 등 뒤로 다가와 있음을 그녀는 느낀다.

“사랑……하고 싶어, 윤아 씨와.”

의자에 앉은 채로 승우에게로 돌린 고개를 그를 향해 치켜들며 윤아가 슬프게 웃는다.

“사랑 같은 거 난 몰라요. 그저 솔직하게 욕정이라고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요? 난 그것 때문에 여기 와서 앉아 있는데. 하루면 끝나버릴 그런 사랑 따윈 난 믿지 않으니까.”

윤아의 슬픈 눈망울에 이끌린 승우가 그와 같이 움직이는 그녀의 시선과 함께 그녀 앞으로 다가간다. 의자에 앉은 그녀를 번쩍 들어 안는다. 그녀의 가늘고 긴 두 다리가 그의 허리에 감긴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찾는다. 따스한 그녀의 입술 위로 그의 뜨거운 입술이 내려앉는다. 촉촉한 그의 혀가 그녀의 아랫입술을 핥는다. 그녀의 윗입술을 입 안에 머금고 빨아댄다. 굳게 닫혀 있던 그녀의 입술이 열린다. 그의 혀를 받아들인다. 그녀의 입 안으로 침입한 그의 혀와 그녀의 혀가 뜨겁게 엉킨다.

세상이 비잉 돈다. 제 몸에 의지한 사랑스런 여자를 지켜주지 못할 것 같아 침대로 다가간 그가 침대 위로 그녀를 살며시 내려놓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키스로 붉게 물든 그녀의 도톰한 입술을 손가락으로 쓰다듬는다. 그의 얼굴이 가득 찬 그녀의 눈빛을 뜨겁게 응시한다.

“두렵다. 오늘이 지나도 당신을 다시 또 찾아갈까 봐.”

진심을 담아 승우가 말한다. 윤아가 팔을 들어 그의 목을 끌어안는다. 그의 입술에 먼저 키스를 한다. 그의 몸에 걸쳐진 가운의 끈을 풀어 그의 가슴을 손으로 애무한다. 그녀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느끼며 그가 신음한다. 자신의 몸에 어정쩡하게 걸쳐진 가운을 벗어 던지고, 그녀의 몸에 둘러진 가운도 벗겨버린 승우가 그녀의 몸 위로 무너진다. 이번만은 사랑이라 말하고 싶은 행위를 그녀와 함께 나누기 시작한다. 한 번의 격렬한 애정 행위가 끝나고 나서도 채 풀어지지 않은 열정으로 샤워를 하며, 룸서비스 된 식어버린 음식을 먹으며, 그리고 서로를 부둥켜안고 잠들었다 깨어난 그 사이사이 승우와 윤아는 서로에게 목말랐던 열정을 쏟아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윤아가 사라진 침대에서 깨어난 승우는 좁은 룸 안에서 그녀의 흔적을 찾다가 탁자 위에 놓인 메모지 한 장과 하얀 봉투를 발견한다.

[내게 허락되었던 당신과의 하루, 잘 보냈습니다.

봉투의 돈은 그 답례입니다. 다음부터 우리 만날 일 없었으면 합니다. 절대로…….]

메모지에 쓰인 흔들림 없는, 단정한 글씨체를 귀신에 홀린 듯 바라보던 승우는 메모지와 함께 남겨진 하얀 봉투 안의 내용물을 확인해본다. 어제 날짜로 발행되어진 백만 원짜리 수표 두 장이 구김 하나 없이 봉투 안에 담겨져 있다가 그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딸려 나온다.

그것을 바라보는 승우는 그저 헛웃음이 난다. 자신을 바보로 만들어버린 김윤아란 여자가 미치도록 미워지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를 무척이나 그리워하는 자신을 혐오하기 시작한다. 그의 공허한 웃음이 텅 빈 호텔 객실 안에 맴돌다가 울음과 같은 이상한 소리로 변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