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애하는 여인을 품으면 죽게 만들 수밖에 없는 비운의 사내.

적령단의 방주인 하반이 백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원은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그와의 첫 대면부터 가슴이 터져 버릴 듯 요동치는 지금까지 그녀의 마음속에 응축된 단 하나의 감정, 그것은 바로 연모였다. 그러나 하반의 몸은 독체(毒體)였기에 그와 연을 맺으면 그녀는 죽게 될 것이 자명했다. 고민 끝에 여원은 그와의 사랑을 지키기로 마음먹고 하반의 조부 진융의 도움으로 그와 동침하게 되는데….

▶잠깐 맛보기

일어나려는 하반의 옷깃을 여원이 다시 붙잡았다.

“약속해 줘요. 그 옷…… 평생 간직하겠다고.”

여원의 태도를 이상하게 느낀 하반이 그녀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왜 그리 말하는 거지? 마치 평생 못 볼 사람처럼.”

“기껏 만든 옷인데 당신이 몰래 버릴까 봐 걱정이 되어서요.”

“그럴 리 있겠느냐?”

그래요. 그럴 리 없겠죠. 당신이란 사람 다 알지는 못해도 그리 경솔하고 그리 마음이 쉽게 변하지 않는 사람이란 것 알아요. 그래서 벌써부터 걱정이 되어요.

“빨리요. 이러다 아침도 못 먹고 해가 지게 생겼어요.”

여원은 그렇게 하반의 등을 떠밀다시피 밖으로 내보냈다. 그가 보이지 않고 나서야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숨이 차오르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온몸에 피가 돌지 않는 듯 손발도 차가웠고 어느새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우려했던 대로 중독 증상이 나타났다. 다시 운기조식을 하기 위해 정좌해서 앉는데 순간 심장에서 뜨거운 것이 솟구치는 듯싶더니 그대로 울컥 토해져 나왔다.

피……! 시커먼 핏덩어리가 바닥에 쏟아졌다. 제 몸에서 나온 그것을 보자 여원은 몸이 덜덜 떨려 왔다. 이대로 죽는 건가 싶었다. 단지 지금은 하반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었다. 여원은 입가에 묻은 피를 재빨리 닦고 바닥에 깔려 있던 붉은 이불을 가져와 그것을 덮었다. 순간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목차

제 8장. 찢겨진 날개

제 9 장. 잃어버리다.

제 10 장. 불꽃은 고요히

제 11 장. 사모할 연(戀)

제 12 장. 독(毒)

제 13 장. 넝쿨과 나무

제 14장. 개전(開戰)

제 15 장. 꽃무릇, 꽃과 잎의 해후

종장(終場)

작가 후기

* 이 전자책은 타출판사에서 출간된 〈꽃무릇〉을 eBook으로 제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