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장 앞 잔디의 파라솔에 앉아 홍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던 해준은 인기척에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랬더니 거기에 지난번 하얀 우비를 입고 왔었던, 처녀 귀신으로 착각했던 아가씨가 서 있었다.
해준은 읽고 있던 책을 덮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어깨에 걸쳐져 있던 카디건이 의자로 스르르 떨어져 내렸다.
“그때 그…….”
왠지 반가운 마음이 들어 미소부터 나갔다. 따뜻한 미소를 담고서 규나를 바라보자, 규나가 잠깐 망설이는 것 같더니 곧 해준 만큼이나 따사롭게 웃었다.
그녀는 그때와 달리 원피스 차림으로 보온병 같은 걸 가슴 앞으로 꼭 끌어안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깨끗한 시냇물 소리가 들릴 것 같은 그런 얼굴로 웃고 있는 그녀를 보니 해준은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어딘가 낯이 익은 기분도 들고.
그렇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녀가 갑자기 한 손을 살짝 올리더니 어색하게 흔들었다. 그리고 방긋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안녕…….”
“…….”
“……하세요?”
어릴 때와 다른 상황이라 어떤 말투를 써야 할지 고민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반말로 친근하게 가자고 결심했는데 막상 눈앞에서 접하니 여러 가지로 반말을 지를 상황이 아니었다. 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는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고.
“나…… 기억 안 나죠?”
“……?”
“내려왔단 말 듣고 한번 인사 오고 싶었는데, 기억하고 있을지 어떨지 몰라서. 음……, 그러다가 그냥 기왕이면 가 보자, 그럼 갈 때 무슨 선물을 갖고 가야 하지? 고민하다가, 혹시 아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고장이 약초로 유명해서 직접 약을 달여 와 봤는데 몸에 맞을지……, 아니 입맛에 맞을지, 역하거나 쓸 수도 있고…….”
한 번에 여러 가지 목적을 성취하려니 중언부언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인사도 해야 했고, 왜 찾아왔는지 그것도 설명해야 했고, 보온병에 넣어 온 백사 달인 물도 먹여야 했는데 백사라고 하면 안 먹을지도 모르니 둔갑도 시켜야 했고, 그런 여러 가지 목적들이 회오리처럼 섞여서 이래저래 말을 연결시켰더니 저렇게 길고 횡성수설이었다.
아무튼 말을 다 쏟아내고는 웃으며 쳐다보았더니, 해준은 그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누가 봐도 의아해하는 기색으로, 규나가 쏟아낸 말의 반도 못 알아들은 거 같았다.
“그러니까 제 말은, 이거 한번 마셔 봐요. 우리 고장 특산물인데…….”
“……혹시 규나?”
순간 보온병을 내밀던 규나의 동작이 딱 멈췄다.
“…….”
“규나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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